[박형란의 토닥토닥] 너무 요란한 패션이라고요?…'자기정체성' 실험 중입니다

UPI뉴스 / 2019-10-24 16:51:51

▲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에 따르면 청소년기는 '자기 정체성을 찾는 시간'이기 때문에 10대들은 화장을 하는 등 외모에 많은 관심을 둔다. [셔터스톡]

알록달록 색색으로 물든 숲이 아름답다. 박물관이나 고궁 등 학생들이 모인 견학현장도 울긋불긋한 가을 숲과 닮아 있다. 개성적인 차림을 한 그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어린 여학생들이 짙게 화장하고 한껏 멋을 낸 모습을 볼 수 있다.

최근 각 학교마다 용의복장에 대한 규제가 대폭 자유화되었다. 학생이 자기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주고자 제한을 거의 없앴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합의로 용의 복장 규정이 예전에 비해 단속할 항목이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래서인지 요즘 중학생만 되어도 너나 할 것 없이 화장을 공들여 하고 다닌다. 두터운 아이라인은 물론 마스카라까지 하고 볼에 빨간 물을 들인 것처럼 색조를 입혀 나타난다. 보기에 어색해서 곁에 다가가 물어본다.

"얘, 너희 학교에서 화장을 자유화했어?"/ "네."
"아이라인, 마스카라까지?"/ "네, 아무도 뭐라 안 해요."
"아침에 화장하는데 시간 많이 걸리진 않니?" / "괜찮아요. 금방 하는 걸요?"
"화장품 사는 데 돈이 많이 들지 않아?" / "별로요. OOO 같은 데서 사요. 후훗."

교사들은 오히려 용의복장지도를 안하게 되니까 한결 후련하다고도 한다. 피차 외모를 꾸미는 일 가지고 상관하지 않으니까 공부나 다른 생활지도에 집중한다고 한다. 과거에 염색 금지, 색조화장 금지 등 날마다 치열하게 학생들과 힘겨루기하면서 지도했던 일이 아득히 여겨질 정도다. 학교의 생활지도풍속도가 많이 달라졌다.

그 동안 용의 복장지도를 했던 이유는 외모를 보고 학생의 생활이나 학습태도를 규정했기 때문이다. 학생의 외적인 모습에서 모범생이냐 아니냐를 판단했다. 주객이 전도되어 수업시간에 생활지도부 선생님들이 용의복장지도를 한다고 들어오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학생이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을 당연히 여긴다. 밀레니엄 세대는 부모와 성장환경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려서부터 서랍 가득히 머리 삔과 머리띠, 악세서리 등을 모아두고 멋 부리다 중학교 입학 때부터 교복을 입고 규정에 적응하라면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체구는 어른처럼 자란 청소년 자녀가 지나치게 화장하고 요란한 복장을 하니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다. 부모세대는 '자기연출'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하다. 교복을 입고 여행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교복이 유일한 외출복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 부모세대는 자녀들에게 곧잘 핀잔을 듣게 마련이다. 특히 눈썰미가 예리한 자녀를 둔 집은 더하다.

"아빠, 제발 웃옷을 바지에 넣어 입지 마세요. 아저씨 같잖아요?" / "나, 아저씬데?"
"그냥 아저씨 말고 이.상.한 아저씨 같다고요. 꼰대 같은.", "그리고 아빠 바지 기장이 왜 그렇게 길어요? 복숭아뼈가 살짝 보일락 말락 그렇게 입어요."
"그리고 그 양말. 맙소사! 그거 스포츠 양말이잖아요? 양복바지에 그 양말이 뭐예요?"

이제 자녀가 화장을 하던지 교복을 줄여 입던지 당당하게 자기를 표현하는 모습에 딱히 야단칠 만한 근거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자녀가 두텁게 색조화장을 하고 어색한 눈썹을 달고 등교할 때 마냥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까. 성장기 자녀의 피부에 해가 되는 성분이 화장품에 들어있는 점도 눈여겨 볼 일이다. 아들이 삭발을 하거나 삼색으로 염색한다고 해서 고민하는 부모도 있다.

청소년들이 외모에 신경 쓰는 이유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들은 외모를 다양하게 꾸며보면서 실험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정상적인 발달 단계이다.

청소년은 어느 시대나 탐험가요, 실험가였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주시한다고 여긴다. 교복 세대인 부모들도 자랄 때 자기 나름대로 멋 부리느라 애쓴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당시에도 펑크룩과 로큰롤 음악에 심취한 청소년들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자녀도 열 살이 넘어가면 자유로운 헤어스타일이나 다양한 음악, 종교, 금기시된 담배 등에 호기심을 갖게 된다. 다이어트에 열심이거나 염색이나 귀걸이, 피어싱 등에 관심을 보인다. 문신하며 자기표현을 적극적으로 한다. 금지할수록 더 하고픈 게 십대 자녀들의 심리이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의 말에 의하면 청소년들의 탐구는 대부분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는 임시적인 시도'이다. 연구에 의하면 많은 청소년들은 부모가 민주적으로 대해주기를 원한다고 한다. 즉 그들은 부모가 충고와 조언을 하면서 한계를 정해 주되, 독립적인 선택을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면 대개 특별한 문제가 없이 지나간다.

용의복장규제가 철저했을 때도 멋 내는 학생들은 교복을 두 개씩 갖고 다니면서 단속할 때만 살짝 허용된 정식교복을 입었다. 당시 교사들은 화장하고 온 학생에게 클린싱 크림을 주며 지우라고 했다. 하지만 한 두 시간 후면 다시 화장하곤 하는 그 심리를 이해했다. 이해하면서도 학생들에게 어떤 한계를 정해 주려고 그렇게 지도했다.

가정에서 부모가 단정한 차림을 강요해도 자녀는 자기가 하고픈 행동을 기어이 할 것이다.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녀의 행동을 이해해 본다. 노랗게 머리를 염색하던 학생도 한두 해가 지나면 시들해진다. 사회적으로 자기에게 어울리는 차림새를 익혀간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청년들은 우리나라 청년들이 매우 멋쟁이이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런데 거리에 다니는 젊은이들의 차림과 꾸밈새가 거의 똑같아 개성이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한다. 자녀가 요란하게 꾸미는 일을 염려하기보다 개성과 신분에 맞게 멋을 부리는지 이야기해보는 게 좋을 듯하다.

간혹 외국에서 살다 온 학생들과 대화해보면 의외로 외국의 젊은이들은 요란하게 치장하거나 노출을 심하게 하거나 화장을 짙게 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친구도 있지만 일부라고 한다. 학교생활을 하거나 공부에 전념하는 이들은 자신의 일에 집중하느라 튀는 치장을 안 한다고 한다. 축제나 파티에 갈 때는 예외이겠지만 대체로 수수하다고 한다.

자녀가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이유는 자기가 본래 하고픈 일들이 제대로 안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생활에 목표가 없을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 지가 막막한 공허함의 표시일 수도 있다. 용의복장의 차원을 넘어 자녀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대화할 주제를 생각해 보는 게 더 본질적인지도 모른다.

 

▲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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