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명씩 사라지는 하청노동자…여전한 '위험의 외주화'

김광호 / 2019-10-18 18:04:37
2016∼2018년 산재로 숨진 하청노동자 1011명…하루에 한명꼴
5개 발전사 안전사고 사상자 98% 협력직원…정규직의 44배
하청노동자들 "해고 무서워 다쳐도 산재조차 받기 힘들다"

# 지난 9월 하순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잇따라 숨졌다. 박종열씨는 9월 20일 현대중공업 해양공장 액화석유가스(LPG) 저장탱크 제작 현장에서 18톤 철판에 목이 끼였다. 경남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해양 납품업체 '건화' 하청업체 소속인 노동자 지모씨는 같은달 26일 선박 제조에 쓰이는 10t짜리 블록에 깔렸다. 한화토탈의 하청업체인 A건설 직원 김모씨는 같은달27일 충남 서산시 한화토탈 대산공장에서 창고 지붕을 고치다 떨어졌다. 크레인 기사 박모씨는 9월 28일 부산 동구 북항 재개발지 내 부산 오페라하우스 공사현장에서 크레인이 넘어져 사고를 당했다.

# 이달 12일에는 경기 평택시의 한 공사 현장에서 승강기 설치 작업을 하던 40대 하청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국내 승강기 시장 점유율 2위 업체인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가 수주한 작업이었다. 지난해 3월 이후 1년 반 동안 티센크루프의 작업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5명이나 된다.

산업 현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매일 한명꼴로 사고로 숨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비정규직 하청업체 직원들은 위험한 환경에 내몰린 채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9일 오전 충남 태안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열린 고(故) 김용균씨의 노제. [뉴시스]


하청노동자 중 37.8% 업무상 재해 경험…산재 사망 가장 취약한 업종은 '건설업'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2016∼2018년 산재로 숨진 하청노동자는 모두 1011명이었다. 2016년 355명, 2017년 344명, 2018년 312명으로 집계됐다. 하루에 한명꼴로 하청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전체 산재 사망자 10명 중 4명은 하청 노동자였다. 2016년과 2017년은 전체 산재 사망 노동자 중 40.2%, 2018년에는 38.8%가 하청노동자로 나타났다.

특히 산재 사망에 가장 취약한 업종은 건설업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하청 산재 사망자 10명 중 7명 이상(75.6%)이 건설업에 종사(236명)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어 제조업(58명), 기타(18명) 순이었다.

또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민주당 최인호 의원이 한국남동발전·한국중부발전·한국서부발전·한국남부발전·한국동서발전 등 5개 발전사로부터 받은 안전사고 발생 현황(2015년∼2019년 8월)에 따르면 전체 사상자 271명 중 협력(하청)직원이 265명(97.7%), 정규직 직원이 6명(2.2%)으로 집계됐다. 죽거나 다친 협력직원이 정규직보다 44배 많은 셈이다.

기관별 사상자 수는 남부발전이 102명(38%)으로 가장 많았고, 남동발전 58명(21%), 중부발전 50명(19%), 서부발전 39명(14%), 동서발전 21명(8%) 순으로 나타났다. 중부발전, 남부발전, 동서발전의 경우 사상자 전원이 협력직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기간 사망자 수는 총 13명으로 모두 협력직원이었다. 고(故) 김용균(당시 24세) 씨 사고가 발생한 서부발전에서 4명(31%), 중부발전 3명(23%), 나머지 3개사에서 각각 2명(15%)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에는 한 중부발전 협력직원이 떨어지는 크레인 와이어 장치에 맞아 사망하는 등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실 제공


'
김용균법' 통과해도 현실은 암울"위험해도 목숨걸고 일한다"

산재와 관련된 통계 수치만 봐도 대기업, 공기업 위주의 원청노동자들에 비해 중소기업 하청노동자들의 산재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일선에서 근무하는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떨까? 과연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근무 환경이 실제로 어떻고,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를 그들에게 직접 들어봤다.

경기 안산 반월공단의 한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27년간 현장 노동자로 근무해 온 김모(57)씨는 UPI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수십번의 크고 작은 산업 재해를 겪었음을 털어놨다.

김씨는 "회사에 노조가 없던 몇년전 공장 팔레트에 무릎을 부딪쳐 연골이 파열됐으나 회사에서 산재 대신 공상으로 처리했다"면서 "그때는 통원치료를 받으며 일했었는데 병원에 입원조차 시켜주지 않는 회사를 보며 분노와 좌절감이 몰려왔었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최근에도 현장에서 그라인더 작업을 하다가 어깨를 다쳤으나 회사에서는 산재 승인을 못받게 하기 위해 온갖 방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산재를 준비중인 김씨는 "회사에서는 산재가 승인되더라도 그 기간만 치료 후 다시 출근하라고 한다"며 "산재 승인을 받으면 치료 중 완치되지 못해도 치료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하니까 노조쪽에 압박을 주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그는 "국회에서 김용균법이 통과됐다고 하는데 현장에 있는 하청노동자들에게는 남의 나라 같은 일"이라며 "여기는 그나마 노조가 생겨 사정이 낫지만 노조가 없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남 창원공단의 어느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이모씨(45)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씨는 "우리 회사는 소규모 사업장이라 노조가 없다"며 "노조가 없어서 근로자들은 사측이 시키는데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동료들 중에 철판 롤링 기계에 손이 끼어 손가락이 절단될 뻔한 아찔한 사고가 있었다"면서 "그러나 사장이 산재를 할꺼면 나가라고 통보해서 결국 공상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나만해도 일하다가 죽을뻔한 위기를 몇 차례 겪었지만 다치거나 죽는 것보다 회사 짤리는 게 무서워서 그만두지 못했다"고 소개한 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우리 같은 하청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라도 계속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울분을 토로했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위험의 외주화금지대책위 주최로 열린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관련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관련 피켓을 들고 있다. [노동건강연대 홈페이지]


노동건강연대
"개정 산안법 보완 입법이 반드시 필요"

고(故) 김용균씨 사망 이후에도 여전히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노동자들의 피해가 끊이지 않자 노동단체와 시민단체가 정부에 관련법 제정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대책위에는 금속노조·노동건강연대·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정의당 노동본부 등 26개 노동·시민·사회·정당이 참여했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 대책위원회'(대책위)는 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월20일부터 열흘 사이에만 4명의 노동자가 처참하게 사망했다"며 "안전조치만 사전에 취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고, 이들은 모두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었다"고 비판했다.

이날 대책위는 정부에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 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중대재해 발생 시 작업중지 지침을 비롯한 노동자 생명안전 제도 보장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 등을 요구했다. 대책위는 향후 위험의 위주화를 근절하기 위해 투쟁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대책위에 참여한 노동건강연대의 이상윤 대표는 UPI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산업 현장의 안전이나 건강 문제는 주로 취약한 계층들에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문제인데 하청노동자들 중 상당수가 이러한 취약 계층들"이라며 "이들은 일하다가 사고를 당해도 회사를 상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도 없고, 무엇보다 생계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본인들이 직접 해결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내년에 시행을 앞둔 '김용균법'을 언급한 뒤 "김용균법은 큰 틀에서 원청이 하청업체에 대해 책임지라는 방향을 제시해줬기 때문에 분명 의미있는 법"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개정 산안법도 하청노동자 안전을 원청이 책임져야 한다는 '경고 메시지' 정도다. 이를 이행하게 만들 (처벌과 같은) 수단은 약하다"면서 "이에 따라 산안법의 불완전한 부분들을 개정할 수 있는 보완 입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법률이나 제도 하나로 노동자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산재사고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전히 우리 주변의 산업 현장에서는 중소기업의 하청 노동자들이 매일같이 위험에 내몰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김용균법' 하나 제정한 것으로 끝내지 말고, 사고를 예방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더욱 정교하고 세밀하게 만드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KPI뉴스 / 김광호 기자 khk@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광호

김광호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