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도, 둘째도 ‘혁신’… 원로인 내가 할 일은 한국영화 부흥”

서창완 / 2023-09-12 21:46:06
[인터뷰] 나락 떨어진 대종상 회복 위해 돌아온 이장호 감독
“대종상 쇄신 통해 신뢰도 회복하면 영화인 돌아올 거라 믿어”
“영화 선진국 도약 중 코로나19… 위기지만 극장 영원할 것”
“50년 내 영화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리얼리티’”

12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 새천년기념관에서 열린 대종상영화제(이하 대종상) 미디어데이에서 이장호 감독(대종상 통합위원장)은 연신 ‘변화’와 ‘혁신’ ‘소통’을 외쳤다. 이날 홍보대사 자격으로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유정주 의원(비례대표)은 오죽하면 “마치 국회에 와 있는 것 같다”는 소감을 밝힐 정도였다. 그만큼 대종상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다.

시계를 10년 전으로 돌려보자. 당시만 해도 대종상은 국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상이자, 한국 영화계 축제장이었다. 겉은 화려했지만, 안은 곪아 있던 ‘상처’는 2015년부터 터져 나왔다.

 

1990년 29회 대종상에서 작품상을 받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것을 패러디해 비아냥대듯 ‘추락하는 것은 날개도 없다’는 말이 터져 나올 상의 권위는 떨어졌다. 수상자 대부분은 불참하고 수많은 영화인들이 참석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한때나마 ‘한국의 아카데미영화제’를 꿈꾸던 대종상은 끝 모를 나락으로 추락했다. 

 

▲이장호 감독이 12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새천년관대공연장에서 열린 제59회 대종상영화제 미디어데이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1974년 ‘별들의 고향’으로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이장호 감독은 만감이 교차했다. 나몰라라 할 수도 있었지만 그에게 대종상은 스타 감독의 길을 열어준 시작이었기에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입봉작인 별들의 고향은 관객 46만 명을 불러 모아 당시 한국 영화 사상 최다 관객 기록을 썼다. 추락하는 대종상을 그대로 볼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감독 데뷔 50년(올해로 그는 감독 데뷔 49년을 앞두고 있다)을 앞둔 그는 과감하게 대종상 총괄위원장이라는 직함을 받아들였다.

이날 오후 4시 미디어데이가 끝난 그는 긴장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병폐와 부조리를 묻는 질문에는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그 대안을 ‘비(非)영화인’으로 삼았다. 그는 “비영화인인 김용기 위니아트 대표가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것이 대종상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계기”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그는 자본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시상식으로 쇄신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 원로 영화인으로서 사명감이라고 여긴다. 위기론이 높아지는 한국 영화계를 향해서는 불변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변화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내년이면 영화인생 50년을 맞이하는 그는 자신의 영화인생을 ‘리얼리티’로 정의했다. 그가 내년 말 이승만 전 대통령 일대기 다큐멘터리 영화‘ 하우보만의 약속’ 개봉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음은 이 감독과의 일문일답.

—오늘(12일) 미디어데이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변화와 혁신이다.


“지난 일이지만 영화인으로서 부끄럽고, 가슴 아픈 기억들이 있다. 신뢰를 잃어버리니 대종상은 새로운 상에 밀리게 됐다. 재작년부터 양윤호 감독(대종상 집행위원장) 등이 주축이 돼 대종상을 바로 잡자는 움직임이 생겼다. 3개월 전 조직위원장을 맡게 된 김용기 위니아트컴퍼니 대표가 쇄신과 운영의 투명성을 내세웠다. 올해 쇄신된 모습을 통해 신뢰도를 확보하면 영화인 모두 진지하게 임하는 영화제로 바뀔 수 있다고 본다.”

—총괄위원장으로서 청사진은 무엇인가.
 

“주최 측이 간섭하지 않는 심사위원진을 만들어 신뢰를 회복하는 게 우선이다. 다음으로는 다양한 영화제와 시상식 가운데 그해 나온 영화 중 얼마나 더 옥석을 잘 가려내 특별한 상을 주느냐가 중요하다. ‘대종이 주목한 시선상’을 마련해 조력자들을 위한 상을 주겠다는 것도 다른 영화제와의 차별점이다. 후원회를 조직해 상금을 걷는 등 다양한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1974년 대종상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감회가 남달라 보인다.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대종상영화제는 말썽도 없었고, 공정한 심사 과정을 거쳤다. 신인상 등을 수상하면 감독들도 영광으로 생각했고, 다음 작품을 만들 때도 상에 보답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후 감독상도 제작자들이 나서서 좌지우지하게 되면서 문제가 커져 아쉽다.” 

 

▲이장호 감독이 12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새천년관대공연장에서 U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최근의 한국 영화 산업을 어떻게 진단하나.


“봉준호‧박찬욱‧류승완 등 독특한 영상 감각과 연출력을 보여준 새로운 세대에 힘입어 영화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있을 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산업이 움츠러들었다. 그 과정에서 감독들이 재빠르게 변신했다. 청년 관객들의 감각과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다보니 폭력, 범죄, 빠른 전개의 영화 등이 굉장히 많아졌다. 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극장은 영원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예술은 먹고사는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의무다. 위기를 돌파할 천재가 나올 거라고 기대한다. 영상과 연출에 대한 식견이 높은 감독들이 새로운 형식의 극장 영화를 성공시키기를 바란다.”

전 세계 모두 영화계 위기론이 강하지만 그나마 아시아에서 한국이 선전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온 게 지금도 아쉽다. 하지만 이를 뚫는 힘도 결국 한국이 찾아야 한다. 미국 할리우드가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고 뚫고 나가는 쪽이지 않나. 오히려 고지식해 보이는 우리 쪽에서 클래식 영화의 의미를 되살릴 천재적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까.”

—한 때 후학 양성을 위해 헌신했다. 미래 감독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제가 학교(전주대 영상콘텐츠학부)를 떠나면서 학생들에게 꿈을 물었더니 영화감독이 아니더라. 유튜버가 희망이라는 대답이 대다수였다. 사회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영화를 하려는 사람은 굉장히 외롭게 시작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젊은 감독 중에 새로운 감각과 가능성은 있는데, 대중성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 대중성은 꼭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게 아니라 여러 얼굴을 갖고 있다. 변화도 좋지만 거기에 종속되는 영화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변화를 선도해야 한다.”

변하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다면 무엇일까.
 

“사랑, 아름다움처럼 영원한 것들이 있다. 대중들이 꾸준히 좋아하는 것들이다. 이런 가치를 새로운 시각에서 봐야 한다. 옛날 영화 같다는 소리를 들으면 관객을 놓친다.”

한동안 작품 활동이 뜸했다.
 

“아무래도 이제 나이가 좀 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극장에 관객들이 오지 않게 되면서 투자가 줄다 보니 이전 세대인 저희가 제일 먼저 희생당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동안 예산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관객들한테 관심을 끌 수 있는 영화가 무엇일지 고민을 많이 했다. 현재는 이승만 건국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은퇴할 나이가 지났는데도 영화 활동을 이어나가는 비결이 뭔가.
 

“욕망이다.”

영화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내년 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그는 현재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소재로 다큐멘터리 영화 ‘하보우만의 약속’ 제작 준비중이다. 영화 제목은 ‘하보우만’은 애국가(愛國歌) 가사의 후렴(後斂)인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에서 따 왔다.)”

대종상 총괄위원장으로서 각오 한 말씀 부탁드린다.
 

“잠시라도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 주최자들이 회의하고 반성하고 쓴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것 같다.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려고 한다.”

십자가(그는 독실한 개신교인이다)를 짊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원로가 할 일이 그런 게 아닌가. 과거의 공로로 먹고 살지 않나. 이런 일을 맡아야 후배도 따르고, 후배와 소통해야만 나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KPI뉴스 / 서창완 기자 seogiza@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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