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에스텔 차 "지금, 이 순간 없다면 니르바나(열반)도 없다"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 2024-04-23 11:14:36
에스텔 차 특별초대전 '순환, 지구, 그리고 영원'
서울 방배동 비채아트뮤지엄서 다음달 17일까지

불교나 힌두교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윤회는 '순환'이다. 이런 윤회, 순환을 작품에 녹여내는 작가가 있다. 화가 에스텔 차다. 하지만 그는 정작 무교다. 그렇다고 애써 종교적 영향을 부인하진 않는다. 가족 가운데 불교나 기독교를 품은 이들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작가는 2018년부터 모든 종교의 주요 토픽, '근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그가 집어 든 화두는 '윤회'다. 물론 종교적 신념은 아니지만 '윤회'에서 얻은 영감은 차 작가의 예술세계 정수다.

 

"윤회는 돌고 도는 '순환'에 그 가치가 있지요. 물이 흘러 강과 바다로 나가 구름이 되고 다시 온 땅에 뿌려지는 것, 이런 '순환'은 작품 속 '인연'의 원천입니다."
 

▲ KPI뉴스와 인터뷰하는 작가 에스텔 차. [이상훈 선임기자]

 

작가는 이런 작품의 구체적 실체로 '말'을 주연으로 꼽았다. 어린 시절 지낸 시골 마을에서 마주친 말과의 인연 때문이다. "말은 여타의 동물과 달라요. 이큐가 높아요. 신뢰하지 않으면 절대 자신의 곁을 내주지 않지요. 말은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과 닮았어요."

작가는 "말을 통해 존중과 비언어적인 소통을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이어서 작품 속에 음과 양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아주 괜찮은 존재"라고 했다.

에스텔 차는 '윤회'를 표현하지만, 굴레를 벗는 '해탈'이나 '열반' 같은 초월적 이상향을 추구하진 않는다. "찰나가 이어져 억겁이 되고 순환도 만들죠.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죠." 순간이 없다면 니르바나(열반·Nirvana)도 없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그가 집중하는 현재에 대한 미학적 태도는 명상에서 추구하는 '알아차림의 미학'일 수도 있겠다.

그는 이런 관념이나 생각을 캔버스에 형상화한다. 주연급인 말이 구상인 듯 비구상인 듯 경계를 오가는 듯 그려지는 것은 어쩌면 찰나와 영겁의 혼재를 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 에스텔 차의 작품 '육마도'

 

작품 속 두 마리의 말은 태극처럼 서로를 감싸고 돈다. 두말의 형상은 순환을 상징한다. 긴 시간 순환을 그려냈지만 작가는 "순환의 찰나가 옮겨진 순간"이라며 "순간이야말로 영원"이라고 했다. 갓 삼십대에 접어든 작가가 고도의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미술만이 아니라 철학도 전공했다. 작가는 "자연과 인간의 연결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는 어린시절부터 스케치가 좋았다고 했다. 나름의 소통 방식이었다는 자기 고백이다. "철학적인 이야기는 논문 같은 언어 기술이 필요하지만 그림은 그것과 달라서 좋아요. 그림은 언어적 다이얼로그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죠. 또 그림은 관객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죠. 작가나 관객이나 애써 하나에 갇힐 필요도 없어서 좋아요."

작가는 재주만큼이나 여러 일을 했다. 그래도 본능은 언제나 한곳을 향했다. 여러 일을 하며 하나씩 준비를 했다는 그는 작품 활동도 좋지만 더 크고 다양한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도 했다.

차 작가는 독특한 방식으로 작품에 접근하는 것으로 눈길을 끈다. 최근 치러진 'eee 프로젝트'가 좋은 예다. 그는 '크리스티앙 디올' 옷에 그림을 그려 회화의 평면성과 고정성을 '이동성'으로 치환했다. 거창하지만 '걸어 다니는 미술관'이란 독특한 개념을 그는 내놓았다.

 

 

▲ 에스텔 차, 지구의 어머니(Mother Earth) 시리즈 [비채아트뮤지엄]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작품은 육마도다. 윤회III (육마도, Cyclicality of the Soul Series 3)는 두말이 엉기듯 포옹하듯 원을 그린다. 형상적으론 순환을 상징하지만, 독립적 객체 둘이 하나로 화한다는 것은 모든 우주 속 생명체가 하나로 연결된다는 작가의식을 반영한 듯하다.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됐다는 불교의 '연기(緣起)론'과 맞닿는다.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신과 인간의 조우로 봐도 무방하다. 구상과 비구상의 절묘한 합의를 보여주는 이 작품들은 멀리서 보면 마치 고대 황제의 인장인 듯 하나의 문양처럼 느껴지는 것도 특색이다. 작품이 도장을 찍듯 관객의 뇌리에 새겨지는 이유다.

 

전체 36점의 작품들의 대다수 표면적 등장 오브제는 역시 말이다. 소품인 자화장 시리즈에도 여전히 말은 주인공이다. 작가는 말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듯하다. 소품으로 꾸려진 '자화상 시리즈'엔 말 한 마리와 태양인지 달인지 알 수 없는 원형이 하늘에 박혀있다. 이 오브제는 블루다. 블루는 외로움이고 맑음을 상징한다. 일체의 혼탁한 세상에 순결한 작가 정신을 지향하는 작가의 고독과 지향성을 위해 찍힌 방점으로 읽힌다.

지구의 어머니 시리즈엔 여인의 육체가 드러난다. 여인의 육체지만 일체 성적 유희는 없다. 오히려 여인의 몸은 대지와 하나가 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듯 웅크리며 일체의 번뇌를 잊게 한다.  

 

▲ 에스텔차, 바다를 품은 구름

 

에스텔 차의 작품은 작가의 고변처럼 어떻게 해석해도 무방하다. 불교도라면 억겁의 윤회 속에 니르바나를 추앙하는 몸부림으로, 기독교인이라면 창조주 신을 향한 간절한 구원의 손길로 해석해도 좋다. 또 환경운동가라면 '순환' 속에 더럽힌 지구를 구하기 위한 자신들의 절규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해석은 다양할 수 있으나 작가가 전하는 '지금, 이 순간'은 놓쳐선 안 되는 전시의 관전 포인트다.

이번 전시 무대에 오른 그의 작품들은 여러 면에서 시사점이 크다. 젊은 작가가 던지는 신선한 화두도 그렇지만 긴 인생 여정 자신의 카르마를 하나씩 풀기 위해 캔버스에 던지는 듯한 에스텔 차의 봇짐을 하나씩 풀어보는 재미도 있다.

 

에스텔 차 작가는 미국 보스턴의 SMFA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터프츠대학교에선 철학을 전공했다.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게임디자인을 전공했으며, 한국, 미국, 스위스, 영국, 싱가포르 등에서 이미 10여 회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했다.

현재 에스텔 차 특별초대전 '순환, 지구, 그리고 영원(Cyclicality, Earth, Eternity)''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 비채아트뮤지엄에서 다음달 17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에는 작가의 '윤회(육마도)III' '인연 시리즈' '마음의 계절 시리즈' '바다를 품은 구름' '구름을 품은 바다' 등 36점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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