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르 협곡 작은 마을에서 성장, 소설로 글쓰기 시작
40여편 희곡으로 각광받는 '21세기 사뮈엘 베케트'
"내 글 근간은 바다, 장대비, 불빛 새어나는 외딴집"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Jon Olav Fosse·64)가 2023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으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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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 성장기 피오르의 자연과 음악을 무의식에 내재해 그 리듬과 정서로 자신만의 미니멀리즘으로 삶과 죽음 사이를 파고드는 시적인 문장을 구사했다. [노벨문학상 홈페이지] |
욘 포세는 노르웨이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큰 상들을 수상하며 최근 몇 년 간 강력한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돼왔다. 50개국 이상 언어로 작품들이 번역돼 있고, 특히 그의 희곡은 전 세계 무대에서 공연되는 국제적인 각광을 받아왔다. 사뮈엘 베케트와 헤럴드 핀터를 잇는 유럽 현대 연극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노르웨이 입센상을 비롯해 북유럽 극작가 최고 영예인 네스트로이상을 수상했다.
욘 포세는 1959년 노르웨이 서부 해안도시 헤우게순 인근 작은 마을에서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냈다. 1975년 베르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으며 호르달란 문예창작 아카데미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1983년 소설 ‘레드, 블랙’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병 수집가’(1991), ‘아침 그리고 저녁’(2000) 등을 발표했다. 소설과 함께 1994년 희곡 ‘그리고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라’를 발표한 이래 40여 편의 희곡을 선보였다.
욘 포세는 “내 글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스트라네바름(하르당게르표르 동쪽에 위치한 해변)의 소리들”이라며 “가을의 어둠, 좁은 마을길을 걸어내려가는 열두 살 소년, 바람과 피오르 위로 쏟아지는 장대비, 불빛이 새어나오는 어둠 속 외딴집, 어쩌면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는 (……) 이러한 것들”이라고 밝힌 바 있다. 포세는 “나는 줄곧 바다를 바라보며 자랐는데 내 무의식의 감수성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면서 “오랫동안 바다를 보지 못하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21세기 사뮈엘 베케트’로도 불리는 욘 포세는 마침표 없이 쉼표로만 이어지는 문장을 구사하며 반복되는 어휘와 리듬으로 그의 소설을 자유시나 음악처럼 읽히게 만드는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지켜왔다. 그가 나고 성장한 피오르 바닷가 작은 마을의 풍광이 문장에 스며들었고, 일찍이 바이올린과 기타를 병적으로 연주하며 록밴드 활동을 한 경력 또한 자연스럽게 그만의 문장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16세 이후 음악을 그만두고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음악 형식을 글쓰기에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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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에서 포즈를 취한 욘 포세. 그는 소설로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희곡으로 더 각광받았고 시와 에세이, 동화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를 선보였다. [노벨문학상 홈페이지] |
어휘나 문장 구조 또는 수사, 등장인물이나 플롯, 행위 등에서도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는미니멀리즘이 도드라진다. 소박한 수사나 내용의 간결함, 단순하고 짧은 대사는 포세의 작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국내에 번역된 대표작 중 하나인 ‘아침 그리고 저녁’(박경희 옮김·문학동네)은 이러한 포세의 문장 특성을 잘 보여준다. 마침표 없이 쉼표로만 이어지지만 서사를 따라가는 데는 무리가 없다. 서사 자체가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 인물의 탄생과 죽음 사이의 일들을 시처럼 펼쳐내 긴 여운을 남긴다.
“어디로 가는데? 요한네스가 묻는다/ 아니 자네는 아직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구먼, 페테르가 말한다/ 목적지가 없나? 요한네스가 말한다/ 없네, 우리가 가는 곳은 어떤 장소가 아니야 그래서 이름도 없지, 페테르가 말한다/ 위험한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위험하지는 않아, 페테르가 말한다/ 위험하다는 것도 말 아닌가, 우리가 가는 곳에는 말이란 게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아픈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우리가 가는 곳엔 몸이란 게 없다네, 그러니 아플 것도 없지, 페테르가 말한다/ 하지만 영혼은, 영혼은 아프지 않단 말인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너도 나도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좋은가, 그곳은? 요한네스가 묻는다”
요한네스는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어부로 살다가 죽는데, 그 죽음 자체가 모호한 상태로 그려지는 가운데 안개 속을 부유하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가 펼쳐지는 작품이다. 옮긴이 박경희는 “요한네스를 비롯한 욘 포세의 인물들은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자유, 외로움 등 존재하지만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묻는다”면서 “그들은 삶의 진정한 의미와 존재의 불안을 끊임없이 사색하는 멜랑콜리커들”이라고 썼다.
‘멜랑콜리커’는 “잃어버린 것을 애도하기를 멈추지 않으며, 전진하는 대열에서 멈춰 주변을 돌아볼 줄 알고, 정서가 우울하고, 모호하게 말하는, 과잉소비사회와 자본주의에 반하는 인성의 사람으로, 문제의 표면이 아닌 핵심을 파고들며 스스로에게 정직한 사람”이며 “그들은 존재의 이유와 의미를 고민하며, 사후세계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머물 자리가 없는 연인과 그들 사이에 태어난 한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3부작’(Trilogien 홍재웅 옮김·새움)에서는 가난하고 비루한 삶과 죽음을 특유의 문장에 담아 그려 낸다. 초기에 소설을 쓰기는 했지만, 희곡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포세가 다시 소설로 장르를 옮겨 선보인 작품 가운데 하나다. 이 작품으로 2015년 ‘북유럽 이사회 문학상’을 수상했거니와, 북유럽 이사회는 “새롭게 창조해 낸 형식과 시공간을 넘나드는 내용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보여 준 더없이 좋은 본보기”이며 “시적인 특질을 명료하게 담아내고 역사에 대한 의식적이고 유희적인 자세를 더한 산문으로 전시대에 걸쳐 있으면서도 영원한 사랑의 역사가 이야기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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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욘 포세는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벅차고, 다소 무섭기도 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 Tom A. Kolstad 문학동네 제공] |
‘보트하우스’(홍재웅 옮김·새움)는 욘 포세의 초기작으로, 화자인 ‘나’와 어릴 적 친구인 ‘크누텐’, 그리고 ‘크누텐의 아내’ 세 사람의 관계를 그려낸 소설이다. 작중 화자의 불안감을 드러내는 강렬한 도입부는 현대 노르웨이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밖에도 국내에 소개된 욘 포세의 작품으로는 희곡 세 편을 담은 ‘가을날의 꿈 외’(정민영 옮김·지만지드라마), 다섯 살 남자아이의 심리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동화 ‘오누이’(알요사 블라우 그림·아이들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은 공간을 들여다보는 두 작품 ‘이름/ 기타맨’(정민영 옮김·지만지드라) 등이 있다.
앤더스 올슨 스웨덴 아카데미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욘 포세는 불안과 무력감이라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감정을 가장 단순한 일상 용어로 표현한다”면서 “인간의 방향을 상실하게 하는 이러한 능력으로 어떻게 역설적으로 신성에 가까운 더 깊은 경험을 하게 하는지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는 “무덤 반대편에서 전달된 딸의 감동적인 연설로 끝나는, 자살한 소녀에 대한 가슴 아픈 단막극에서 딸은 자신의 결정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근본적으로 파고든다”면서 “포세의 작품은 따뜻함과 유머가 넘치면서도 일상의 불확실성과 불안을 외면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한림원은 “수상을 알리려고 포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시골 지역에서 운전하고 있었다”며 “조심히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더라”라고 전했다. 욘 포세는 수상자 발표 직후 “벅차고, 다소 무섭기도 하다”면서 “이 상은 다른 고려 없이, 다른 무엇보다도 문학이기를 목표로 하는 문학에 주는 상이라고 여긴다"라고 덧붙였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욘 포세 연보
1959년 노르웨이 헤우게순 출생
1983년 첫 장편소설 '레드, 블랙' 출간
1988년 뉘노르스크 문학상 수상
1994년 첫 희곡 그리고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라' 발표
1999년 희곡 기타맨''어느 여름날''가을날의 꿈' 발표. 도블로우그상 수상
2003년 희곡 '라일락' 발표. 노르웨이 예술위원회 명예상, 프랑스 공로 훈장
2005년 희곡 '따스함' '잠' 발표. 브라게상, 세인트 올라브 노르웨이 훈장
2007년 희곡 '나는 바람이다' 중편소설 잠 못드는 사람들' 발표. 스웨덴 한림원 북유럽 문학상 수상
2010년 국제 입센상 수상
2014년 잠 못 드는 사람들''올라브의 꿈' 해질무렵'을 묶은 3부작'출간. 유럽 문학상 수상
2015년 북유럽이사회 문학상 수상
2022년 '새로운 이름. 7부작 VI-VI' 영어판으로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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