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내 안의 빛은 어디에서 흘러드는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5-05-30 17:34:39
가족을 성찰한 연작소설 '모경의 빛' 펴낸 소설가 박형숙
항암 겪고 문학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진솔하게 대면한
가족 구성원들을 향한 뒤늦은 애도, 연민, 새로운 깨달음
"따뜻하고 부드럽고 말할 수 없이 연약한, 어떤 환한 빛"

그토록 찬란했던 어느 봄날 속으로 너는 네 안의 어딘가에서 흘러넘치는 빛을 느꼈다. 너를 따뜻하고 환하게 비춰주는 빛, 그 빛은 어디에서 왔나? 네가 상처며 아픔이며 고통의 기원이라고 여겼던 그곳,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_ '너의 기원' 

 

▲ 문학과 인생을 분리시키지 않는 태도로 진솔하게 가족을 돌아본 성찰의 결실을 연작으로 묶어낸 소설가 박형숙.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내 안의 빛은 어디에서 흘러드는가. 항암 과정에서 고통을 감내하며 마주친 가족의 모습, 상처의 근원이자 치유의 힘으로 작동하는 그들의 진실은 어떻게 내게 오는가. 소설가 박형숙이 11년 만에 내놓은 세 번째 소설집 '모경의 빛'(강)은 9편의 연작 형태로 구성된 나와 가족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 문학이라는 것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스승 송기원의 권유대로 '죽기 전에 꼭 쓰고 싶은' 진솔함으로 힘겹게 밀고 나간 연작이다.

첫머리에 내세운 '너의 기원'은 말 그대로 자신이 앞만 보고 달려온 과정을 돌아보며 그 근원을 파고든다. 그는 사춘기를 암흑 속에서 보내고 난 뒤 마음속에서 제일 먼저 엄마를, 다음에는 아버지를, 오빠를, 언니들을 하나씩 살해했다고 돌아본다. 그들을 다시 떠올리며 나아가는 끈질긴 성찰의 끝에서 '빛'을 발견한다.

1남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그가 사춘기에 이르렀을 때 엄마는 갱년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노동 기계'였던 아버지는 그의 진학을 반대하는, 극복해야 할 장애였다. '공부 기계'가 되어 대학에 들어가 운동권에 합류하면서 엄마의 기대를 배신하던 즈음, 뒤늦게 자유를 갈망하던 '모경'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삶의 의지를 놓아버렸다. 그가 소설에서 부르는 엄마의 이름 '모경'(母敬)은 뒤늦은 애도와 존경의 지극한 명명이다.

인해의 스물한 살, 그 암흑의 시절,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러웠다. 분신, 투신, 의문사…… 그 시절에는 죽음이 만연해 있었다. 인해는 집 밖에서 일어나는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자기 곁에서 시나브로 진행되는 죽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모경이 한발 한발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_ '모경'

⁃가족에 대한 늦은 애도와 성찰의 배경은?
"사춘기 때부터 가족에 대해 거리를 두기 시작한 이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게 너무 두터운 장벽이 되어 바깥으로 나오지 못한 것 같다. 항암 치료를 하면서 모든 것을 손에서 놓고 생각을 거듭했을 때, 아무리 의식에서 분리를 시키고 부정을 해도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가족 얘기를 써 나가면서 내면의 장벽도 새롭게 인식을 하게 되고, 가족에 대해서 피상적으로 알던 것 너머의 팩트에도 근접할 수 있었다. 그 팩트는 누구나 똑같이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나의 이미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소설 전체를 조명하는 '빛'이란?
"이 소설을 쓰면서 얻게 된 것을 빛으로 표현했는데, 그 빛은 가족과 나 자신에 대한 긍정이다. 용서와 화해와 후회와 연민이 깃든 복합적인 그 무엇이다. 이러한 빛에 이르게 된 것은 단순히 세월의 힘이라기보다 끈질긴 성찰 덕분일 것이다. 내 안의 벽을 인지하고 지속적으로 던져 온 질문의 힘이기도 하다." 


가족의 질서를 유지하는 주체였던 당찬 엄마 '모경'에 비해 아버지는 '곰' 같은 사람이었다. '오십 원만'과 '열일곱 살의 강'은 피상적으로만 알았던 아버지를 필사적으로 이해하고, 화해하려는 딸의 애틋한 노력이 결실을 이룬 단편들이다. 어린시절 상장을 들고 달려가 아버지에게 '오십 원'만 달라고 했을 때 거절당한 이래 결핍과 상실의 상징으로 그 일화가 깊이 각인돼버렸다. 젊은 날 그는 아버지의 흔적을 지우려 애를 썼다. 점잖은 표현으로 '도장공'이지만 흔히 '뺑끼쟁이'로 폄하되던 아버지는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고 싶은 무심한 '노동 기계'였다.

대학생이 된 뒤 나는 아버지가 마르크스가 예찬한 자랑스러운 노동계급의 일원이라고 생각했다. 두 손에 착취를 끊어낼 열쇠가 쥐어져 있다고.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거라고. 하지만 그 시기는 생각보다 짧았다. 사회주의가 무너지자, 아버지는 내 안에서 그 자리를 잃어버렸다. 애비는 종이었다. 애비는 빨치산이었다. 애비는 개흘레꾼이었다. 애비는 양부였다… 아버지는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내 아버지의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_ '오십 원만'

열다섯 살에 고아가 되어 젊은 형수 밑에서 살았는데 열일곱 살에 잡일로 모아놓은 돈을 그 형수가 모두 가져갔다. 그 돈으로 학교를 보내는 형수의 아이들 대신 노동을 해야 했던 아버지가 세상으로 향한 문을 닫고, 원망하지 않기 위해 침묵을 선택했다고 그는 돌아본다. '열일곱 살의 강'은 아버지가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가게 된 그 시점을 반추하는 연민의 아픔으로 가득하다. 그는 먼저 '오십 원만'을 쓰면서 아버지를 다시 돌아보았지만 뒤돌아보니 분노와 원망이 더 앞선, 실제 아버지에 가 닿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에 연작들을 모아놓고도 선뜻 출판을 결심하지 못했노라고, 소설 속 화자의 입을 빌려 전한다.

⁃어렵게 찾아낸 '아버지의 자리'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원망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감당했다는 생각이다. 아버지의 상황을 이해 못하면서 왜 저렇게밖에 못 사는지 어린 나는 불만을 가졌지만 이해하고 보니 정반대였다. 오히려 아버지는 자기 앞에 놓인 상황을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그냥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아직도 모든 것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이 소설을 쓰면서 발견한 것이다."

-대학시절 농성하던 '명동성당'에 찾아온 오빠를 떠올리며 지난 시절 주인공이야말로 그이였다는 자각은?
"80년대에는 대학생들이 주도하면서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선진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이어진 촛불집회 같은 경우는 주역이 달라지지 않았나. 그 흐름 속에 있는, 가족과 함께 그 현장에 참여한 '오빠'를 말하고 싶었다. 사실 오빠만이 아니라 거대한 대열에 합류한 많은 이들을 상징한 셈이다."

엄마의 젊은 시절을 잘 아는 맏언니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서 '결혼이라는 가파른 계곡으로 뛰어내린' 후 현실의 곤고함에서 '문학'으로 도피한 캐릭터로 묘사된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작가를 키우다시피 했던 그 언니는 소설 속에서 말한다. '사람의 한평생에는 사계절이 다 있는 것 같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그래서 말이야. 한배에서 난 자식이라도 각기 부모의 다른 계절을 경험하게 되지. 나는 엄마의 봄을 기억해 따뜻하고 눈부신 봄. 그런데 네가 기억하는 것은 엄마의 겨울일지도 몰라.'

공부를 잘해서 기대를 모았던 둘째 란이 언니는 은행에 들어가 가족을 산동네에서 탈출하게 만든 주역이었다. 냉정하고 이성적이었던 언니는 형부를 따라 뜻밖에도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어느날인가는 종말론에 빠져 교회에 재산을 바친 뒤 거의 빈털터리가 되었다. '란이 언니와 은행잎 한 장'에서 작가는 언니의 목소리를 전한다. '넌 니가 대로에 서 있다고 생각하니? 착각하지 마, 인생은 구부러진 길 쪽에 있어.'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동네 골목을 활보하며 사고를 치면서 자란 셋째 언니는 '미자 씨의 기나긴 하루'에서 자매들 중 제일 많은 부를 축적하고 돈 쓰는 재미에 살지만 연약한 빛을 숨길 수 없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 언니는 사업가 남편의 비즈니스 자리에 합석해 사모님들에게 한없이 자신을 낮춤으로써 내조한다. 심지어 강도를 만났을 때도 무조건 '잘못했다'고 납작 엎드려, 강도마저 재수없다며 빼앗은 가방을 팽개치고 가버렸다.

 

▲ 박형숙은 "상처로만 여겼던 가족의 모습 속에 빛이 있었다"면서 "그 빛이 자주 아프게 이따금 눈이 부시게, 한 시대를 지나오느라 뒤척이는 내 어깨 위로 내려앉아 온기를 전해주었을 것"이라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각 단편마다 이름이나 인칭을 다양하게 사용한 배경은?
"가족이라는 게 사실은 다층적인 관계이다. 흔히 가족 소설은 단일한 시선으로 인물들이 묘사되곤 하는데, 굳이 연작으로 이들을 조명한 것은 어느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인물이 달리 보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족이란 각기 놓인 위치와 자리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는, 굉장히 다층적인 관계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이름이나 인칭을 단일하게 가져갔으면 어려웠을 그런 것들이 용이하게 표현됐다는 생각이다. "

박형숙은 이 연작소설에는 트라우마 극복의 의미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트라우마 치유의 시발점은 일단 말로 끄집어내는 것, 그럼으로써 현실로 인정하는 것"이라면서 "이 소설은 그런 치유의 여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산업화시대 산동네의 삶, 그곳을 통과한 이들이 지금 각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면서 그들에게서 '빛'을 발견하는 이 연작이 갖는 미덕은 한 가족의 서사를 넘어서는 지점에 있다. 읽는 이들은 내내 자연스럽게 자신의 가족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더불어 발견하게 될 환한 '빛'.

겹겹의 세월 속에 한 번도 제대로 펼쳐 보인 적 없었던 마음의 속살. 따뜻하고 부드럽고 말할 수 없이 연약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빛. 그랬구나. 언제나 그런 마음이었구나._ '시그니엘 빌리지'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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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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