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그래도 되는, 만만한 존재들이 품은 따뜻한 칼"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5-08-08 17:53:49
새 장편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 펴낸 소설가 박지영
위대하지 않으니 자신이야말로 팬클럽이 필요하다는
'그래도 되는' 인물의 자기 돌봄과 '이모'들 이야기
"귀하고 외로운, 다정한 것들에 대한 입덕선언문"

위대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더 필요하잖아요. 팬클럽 같은 게. 그래서 제가 만들었어요, 복미영 팬클럽. _ '그래도 되는 사람' 

 

▲ 고립과 돌봄을 주제로 소설을 써온 박지영은 새로 펴낸 장편에서 자신을 스스로 돌보는 일에 방점을 찍었다. [현대문학]

 

복미영은 스타가 아니다. 위대하지 않기에, 자신을 더욱 북돋을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복미영이 자신을 위한 팬클럽을 홀로 만들고 1호 팬클럽 회원으로 지목한 김지은과, 역시 첫 안티 팬으로 지목당한 '멍든 하늘'. 이들을 고리 삼아 '그래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이모'들의 돌봄 노동까지 조명해 나가는 이야기가 박지영 신작 장편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현대문학)의 얼개다.

소심하고 우유부단하지만 용맹하고 경솔한 복미영. 그녀는 평생 덕질을 하며 살아왔는데 자신의 최애였던 W가 음주 운전에 뺑소니로도 모자라 불법 촬영물과 관련된 메신저 단체 방 멤버였다는 것까지 밝혀져 망연자실했다. 복미영은 어쩜 매번 그렇게 쓰레기들만 좋아하느냐는 조롱까지 받게 되자, 급기야 이제부터는 내가 내 팬이 되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복미영은 생각했다. 만들자, 복미영 팬클럽. 내가 복미영의 팬이 되어주자. 까짓것, 팬질 경력만 40년이 넘었다. 그동안 안 해본 팬질이 없었다. 나 까짓것의 팬이라고 못할 게 없었다. 나 까짓것에서 나만 빼면 까짓것이 된다는 것도 좋았다. 까짓것, 나도 팬클럽 하나 가져보자.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움츠러든 어깨가 활짝 펴지는 기분이었다. _ '복미영 팬클럽의 탄생'

복미영은 동네 북클럽 '열린 엔딩 닫기' 모임에서 멤버들이 자신의 열린 삶의 결말을 닫아보고, 다시 여는 '인생 수선'의 과정을 체험한다. 내내 헛웃음을 베어 물게 하는 특유의 유머와 풍자적 문체가 읽는 맛을 돋운다. 폭염에 지친 이들이 접근하기에 맞춤한데, 일단 붙들게 되면 만만찮은 사유에 동참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다독이게 되는 흥미로운 장편이다.

-블랙유머를 넘어서는 문체가 흥미롭다.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처음부터 그러했다. 일단 즐겁게 전달하고 싶다. 어떤 비극에 대한 이야기든지 너무 무겁지 않게 접근할 때 조금 쉽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상처를 공유하면서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런 방식을 선호하게 된 것 같다. 시트콤이나 코미디를 굉장히 좋아하고, 예술가들은 궁극적으로는 코미디언이 아닐까 생각한다." 


-복미영이라는 인물을 탄생시킨 배경은?
"제 소설에 대해서는 만족을 못 하지만, 부족하고 비틀린 존재들이어도 제 소설 속 인물들을 사랑하는 데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는 걸 떠올렸다. 그렇다면 정말 소설의 인물을 한 번 열심히 덕질 해보자, 그렇게 만든 인물이 복미영이다. 소설에서 덕질을 하고 싶어 하는 인물은 누구나 보기에 괜찮거나 무언가를 이루었거나 충분히 존경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결함도 많고 부족하고 어떤 면에서는 좀 우스꽝스럽기도 한 그런 대상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일상에서 조금 더 나은 길로 가기 위해 분투하는, 그런 인물을 덕질해보고 싶었다."

56세 복미영. 그녀는 돌보던 엄마와 언니를 마흔 무렵에 떠나보낸 후 혼자 남았고, 이후 사촌오빠 딸 집에 입주 '이모'로 들어갔다가, '식세기(식기세척기) 이모'와 '청소기 이모'에 밀려 버림을 받는 듯하자, 그 집을 나왔다. 복미영이 쓰레기 덕질에 진력이 나서 자신을 돌아보는 팬클럽을 결성하기까지, '은수 이모'를 버리기 위해 동네 북살롱에 참여해 복미영을 교두보로 삼는 김지은을 만나 안티팬을 향한 역조공 여정에 나서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북클럽에서 '관념적 아티스트 밈'이 유행하는 가운데 복미영은 자신을 '버리기 아티스트'로 규정한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제때 제대로 빨리 버리는 것도 소중하게 간직했던 자기 마음에 대한 예의고 배려'라고 역설하는 북클럽 멤버 분홍 씨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복미영은 알고 있었다. '버리는 것, 잘 버리는 것이 때로는 잘 간직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 '특히 소중히 간직했던 것일수록 제때 잘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한때의 진심에 대한 예의'라는 것도.

자신의 안티팬을 만나기 위해 사라진 '부곡 하와이'로 김지은과 함께 떠나는 복미영은 '진짜 버리기 아티스트라면 그 아이가 스스로를 해치는 혐오를 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자신이 만들려는 따뜻한 칼을 제련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김지은은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는 말이 만들어내는 칼과, 그것을 거부하는 대신 그것을 가슴에 꽂아두고 따뜻하게 달구려는 복미영의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만만한 복미영은 '그래도 되는 사람'인가.
"처음에 김지은은 자신이 만만하게 어려운 부탁을 해도 되고 자신의 짐을 그냥 지워도 되는, 자신의 선함을 표출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 그 짐을 받아들이고 베풀어 줄 수 있는 사람, 그렇게 해도 특별히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복미영을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어떤 한 사람에게 함부로 내가 갖고 싶지 않은 것을 버려도 되는 사람이란, 얼마나 삶에서 맷집을 키우고 일상을 단단하게 꾸려온 사람인지, 어떤 식으로건 누군가의 무엇이 될 수 있는 사람인지 깨닫는다."

-가슴에 꽂힌 칼을 따뜻하게 달구는 마음이라니.
"처음부터 쓰고 싶었던 건 칼을 맞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너무 힘들어서 소설 속에서라도 칼로 찌르거나 맞는 이야기는 못 썼다. 단 하나, 따뜻한 칼이라면 쓸 수 있겠다 싶어서 그 마음을 생각했다. 가슴에 칼을 꽂아두고 따뜻하게 달구려는 마음은 누군가 자신을 칼로 찌를 때 그것을 빼지 않고, 칼을 찌르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 칼을 빼면 피가 나오니 장기가 손상된 채로 계속해서 걸어가는 그런 마음이었으면 했다. 따뜻한 칼은 찌르는 사람의 따뜻함이 아니라, 그 칼을 받은 사람의 온기로 감싼 것이다. 자신의 온도를 그 칼에 전도시키는 그런 따뜻함이다."

이 '칼'이란  '버리기 아티스트' 복미영이 버리고 싶은 '수치심, 모멸감, 울분, 억울함, 빈정 상함, 원망, 그런 지저분한 감정의 단어들'의 메타포일 터이다. 외부의 무심한 칼질에 내면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지 않고 그 칼마저 자신의 온도로 따뜻하게 만드는, '그래도 되는 사람'의 숭고한 경지가 복미영 팬클럽 세상이다.

이번 장편의 핵심 키워드는 '돌봄'이거니와, 자신을 돌보는 '팬클럽'과 더불어 현실적인 '이모'들의 존재를 톺아보는 서사 비중이 크다. 이모에게 엄마를 돌보는 도움을 받을 때는 당연했는데, 파킨슨병에 걸린 그 '이모'까지 두 사람을 떠맡게 될 상황에 처한 '헤매기 아티스트' 김지은. 죄책감 없이 이모를 버리려 하는 그녀도 '노인을 위한 나라도 없는데 그 안에 이모를 위한 나라가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 박지영은 "보상을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위대하다"면서 "그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현대문학]

 

-'이모'들은 사각지대에 놓인 한국사회 돌봄 노동의 상징일까.
"가족 같은 이모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름으로써 응당 자신에게 어떤 서비스를 해야 되는, 서비스를 받아도 마땅하다는 식으로 친숙하고 가까운 척하지만 사실 그것은 자신에게 돌아올 것에 대한 짐을 지워주는 호칭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 주변에서 많이 보이는, 여성의 노동이라서 더 소외되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 조금 더 조명을 해보고 싶었다. "

열두 명의 성모(성난 이모)들이 '12성모단'이라 불리는 유랑극단을 꾸려 떠난다. 복미영과 김지은이 부곡 하와이로 안티팬을 만나러 가는 여정도 길 위에서 끝난다. '사이다처럼 개운한 꽉 닫힌 결말'을 맺어야 다시 열 수 있는 법, 열기 위해 닫고 닫기 위해 여는 인생 수선의 길이 복미영을 탄생시킨 '열린 엔딩 북클럽'의 원칙이다.

박지영은 '이달의 이웃비' '고독사 워크숍' 등을 펴내며 '고립'과 '돌봄'이라는 주제를 천착해왔거니와 이번 소설에서는 '돌봄'에 방점을 찍었다. 올 가을에는 10년 전에 써놓은 '고립'에 관한 장편을 손보아 내놓을 예정이다. '단기 계약직' 소설가라고 자신을 낮추는 박지영은 "전에는 그냥 허둥지둥 헤매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그 과정을 조금 즐기면서 쓴다"고 말했다. '헤매기 아티스트' 박지영의 '입덕 선언문'.

부디 지금부터 내가 나의 팬을 위해 준비한 작고 다정한 역조공 이벤트를 받아주길 바라. 그리고 나 역시 당신의 팬이 될 수 있도록 당장 너의 팬클럽을 만들어라. …내 소설이 낮아 귀하고 외로워 다정한 것들에 대한 입덕 선언문으로 읽히길 바라며. _'작가의 말'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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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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