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2025년체제를 향해 흔드는 변혁적 중도의 깃발"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5-08-01 17:46:05
비평서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 펴낸 원로비평가 백낙청
일상의 모든 삶까지 왜곡하는 한반도 분단체제 변혁 위해
좌우 극단과 냉소를 배제한 실용적 '중도'로 나아가는 담론
"수구세력은 뿌리가 깊고 이익 챙기는 데 유연하고 노련"

변혁적 중도주의는 나름으로 엄격한 개념입니다. 그럴듯한 두 낱말을 그냥 연결시킨 거라면 일종의 자가당착일 수 있지요. 그러나 '변혁'은 한반도체제의 변혁이고 '중도'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국내의 온갖 단순논리를 넘어서는 중도세력을 확장하자는 것이기에, 변혁과 중도가 상충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_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 

 

▲ '변혁적 중도'에 관한 글들을 모아 펴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그는 "중도란 단지 좌우 사이의 회색지대가 아니라, 기득권 체제의 반동과 기존 이념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실천적 전략이자 현실적 대안"이라고 말한다. [창비] 

 

1966년 진보적 문예지 '창작과비평'을 창간한 이래, 분단체제 아래 삶을 문학으로 탐색하고 드러내는 흐름을 주도하면서 한국 지성계의 한 축을 담당해온 원로 비평가 백낙청(87) 서울대 명예교수가 비평서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창비)를 펴냈다. 구순을 앞두고 펴낸 이 책은 그가 끈질기게 붙들어온 분단체제의 모순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서사의 흐름을 분석하면서 '2025년체제' 깃발을 흔드는 원로의 충정인 셈이다.

그가 말하는 '변혁'은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궁극으로 허무는 것을 의미하거니와, 좌우 극단과 냉소도 아닌 '중도'의 힘으로 점진적으로 완성하자는 '변혁적 중도'가 핵심이다. 기존에 펴냈던 책에서 재수록한 글들을 포함해 최근 상황을 반영해 새로 집필한 글, 윤석열 파면 이후에 진행된 두 개의 대담과 최근의 칼럼들까지 '때'가 오기까지의 경위를 짚어주는 길고 짧은 발언들을 모았다.

지난 10일 함세웅 신부와 함께 이재명 대통령 초청으로 오찬을 함께 한 백 교수는 "중도 보수 혹은 중도 진보라는 프레임 자체가 낡아서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진보도 보수도 할 수 있는 실용주의적 중도 정당을 지향한다는 이 대통령의 생각은 변혁적 중도 노선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냥 레토릭이 아니라 진짜 효과를 보려면 한반도 분단 체제라는 맥락 속에서 실용주의를 하고 개혁 정책을 펼쳐야 될 것"이라고 책 출간을 계기로 마련된 간담회에서 밝혔다.

-'변혁적 중도'를 압축해서 설명한다면.
"변혁적이라는 수식이 확실히 이해가 안 되는 분들 있는데 저는 그 대목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분단 상태가 지속되면서 한반도에는 남과 북에 일종의 분단체제라는 것이 자리잡았고, 꼭 통일은 아니더라도 평화로운 공존 그리고 점진적인 재통합 과정으로 그 체제를 바꿔놓지 않고는 아무리 개혁을 잘 하려고 해도 성과가 제한적이다. 중도가 분단 체제를 의식하고 함께 바꿔나가지 않으면 성과에도 한계가 있고 언제든지 반전이 일어날 수 있다. 이 분단 체제가 얼마나 위험한 체제인가를 사실 제일 잘 보여준 이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석열 씨가 좀 더 유능했더라면, 또는 북이 많은 사람이 항상 그렇게 말하듯 언제라도 남침을 못해서 안달이 나는 그런 과격한 세력이었다면…" 

백 교수는 무엇이 '변혁적 중도주의'가 아닌지를 열거하는 방식으로 그의 지향점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다. 변혁적 중도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도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스스로 고정된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항목으로 '분단체제에 무관심한 개혁주의' '전쟁에 의존하는 변혁' '북한만의 변혁을 요구하는 노선' '남한만의 독자적 변혁이나 혁명에 치중하는 노선' '변혁을 민족해방으로 단순화하는 노선' 을 꼽는다.

-변혁적 중도의 길이 극우의 부상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극우적 언동, 수구, 보수를 꼭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수구와 보수가 다르다는 것을 지금 많은 국민이 공감하게 되었다고 보는데, 우리나라 수구라는 것은 분단체제 속에서 수십 년간 자기들이 누려오고 굳혀온 기득권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걸 지키기 위해서는 이념은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활용하는 사람들이지, 꼭 극우 이념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까지는 우리 풍토가 극우적인 운동을 하는 게 기득권 지키기에 유리하니까 그걸 해 왔지만, 앞으로 또 다른 이념을 표방하는 것이 자기 이익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서슴없이 그것을 선택할 사람들이다. 수구세력은 뿌리가 깊고 자기 이익 챙기는 데 굉장히 유연하고 노련하다."

-극우세력이 탄핵 국면을 지나 새 대통령이 나오면서 수면 아래로 잠시 가라앉은 듯하지만 근본적 해결은 안 된 것 같다.
"우리나라 극우 세력의 특징은 분단된 남북 현실에서 오는 건데, 가령 독일 극우 정당은 데모를 할 때 나치 깃발은 들고 나오지만 성조기 들고 나오는 일은 없다.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이 없는 나라라면 극단적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극우 정당이다. 투쟁할 때 미국 국기를 들고 나가는 건 참 희귀한 현상이다. 한국이 분단국가이고, 이 분단을 처음 만들 때부터 반공 친미가 기조가 돼서 그럴 것이다. 필요하면 극우도 진보도 할 수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분단체제의 기득권 세력으로서 이해관계가 가장 우선인 사람들이 더 많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지금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은 자기 이익 수호에 굉장히 유능하고 유연한 사람들이라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2025년체제'란?
"87년체제가 그나마 지금의 결실을 만들었다. 더 좋은 체제로 가느냐 더 나쁜 체제로 가느냐 기로에 다다랐고, 거기서 더 나쁜 체제로 가기로 작심한 대통령과 그의 지지 세력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되니까 내란까지 하다가 실패하고 시민들이 승리해서 대통령 임기와 관계없이 새 시대를 열었다. 촛불혁명 이후 2013년체제를 준비하려고 노력했는데, 실패한 이후 한동안 자숙하고 묵언 수행했다. 그러다 세월호 사건 터지는 걸보면서 다음 세상에 대한 구상을 이 책의 '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에 꽤 자세하게 밝혔다. 냉소와 절망과 손쉬운 안주를 끝내 뿌리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주역이 세계가 감탄한 한국의 민주시민들이다. 덕분에 '변혁적 중도의 때'를 염원해온 나의 지론을 '2025년체제'라는 새 표현마저 들먹이며 한껏 내세울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 백낙청 교수는 2025년체제의 과제 중 하나로 젠더 갈등을 꼽으면서 "우리 시대의 큰 문제 중 하나가 못난 사내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라고 썼다. [창비]

 

남자와 여자가 다 같이 잘 살고, 그리고 평등하게 살고 평등하게 대우받는 사회를 만들어야겠죠. 여성운동도 목표를 거기다 두었으면 하고요. 남자들하고 싸워 전투에 하나둘 이긴다고 해서 전쟁을 이기는 건 아니거든요. 내가 일찍이 "우리 시대의 큰 문제 중 하나가 못난 사내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못난 사내라고 그냥 버려두면 되겠어요? 첫째는 못난 사내가 양산되는 기제가 뭔지를 알아서 그 수를 좀 줄여야 할 거고, 또 이미 생산된 못난 남자들에 대해서도 욕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죠. 왜 그런 양산 현상이 벌어지는가 분석해야 하고 어떻게 모두가 더 잘 살 수 있을지 함께 모색해보자는 거지요. _2025년체제, 어떻게 만들 것인가.

-분단체제가 여성 혐오에 기반한 젠더 갈등을 어떻게 심화시켰는가.
"지금 우리 교육수준은 OECD 국가 중에서 상당히 높은데도 남녀 평등지수는 굉장히 낮다. 그렇다고 남자들이 은혜를 받아서 좋다, 이러는 것도 아니다. 분단체제를 빼고는 설명이 잘 안 된다. 북이 사회주의 국가로 출발해서 여성의 사회 진출은 남쪽보다 앞서 있지만 남성들의 통제가 굉장히 강하다. 인간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데 못할 때는 눈에 안 띄는 마비 증상 같은 있는 게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분단체제라는 게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사지 중 하나를 묶어놓든가, 눈에 안 띄더라도 장기의 어느 부분을 심하게 약화시키고 분리 상태로 만든 것과 같다. 일부 진보적이라는 지식인들은 우리가 구미 선진국에 비해서 멀었다고 한심해 하는데, 우리는 분단이라는 족쇄 또는 멍에를 지고 사는 국민인데 이만큼 하는 것만 해도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일이 안 되는 이유를 제대로 파악을 하고 나면 훨씬 더 잘 되리라고 생각한다."

분단 현실 속 한국문학의 지향점을 지속적으로 제시해온 '문학평론가' 백낙청은 작금 한국문학에 대해 낙천적인 소회를 피력했다. 그는 "늙어서 별로 새로 나올 게 없는 사람에게 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참 활동 중인 작가 한강에게 노벨문학상이 주어져서, 나름으로 한국사회를 새롭게 하는 동시에 우리 문학을 좀 더 낫게 만들려고 노력해온 입장에서 더 행복하다"면서 "K문화 K예술 K민주주의 이런 것이 자연스럽게 결합이 되어 가는 느낌을 가졌고, 한강 외에도 많은 좋은 작가들이 있어서 앞으로도 우리 문학의 장래는 상당히 밝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가 제시하는 '탈진실의 시대' 해법.

지금 이 사태는 꼭 윤석열 때문만은 아니라는 거예요. 진실을 이야기만 해주면 민중이 따라오리라 생각했던 것은 서양에서도 부정되고 있어요. 심지어 '탈진실'의 시대라고 하잖아요. …가짜뉴스를 믿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일러주는 식으로 말싸움만 계속해서는 이길 수 없는 세상인 겁니다. 인간을 바꾸는 마음공부와 역사적 실천이 있어야 해요. _ '2025년체제 어떻게 만들 것인가'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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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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