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전력②] 전기는 있는데 못 보낸다…'1000조 용인 반도체'의 전력 공백

유충현 기자 / 2026-02-25 17:22:43
삼성전자·SK하이닉스 클러스터, 전기 없어서 못 돌릴 판
생산지에는 전력 남아도는데…제도 한계에 송전 어려워
"클러스터 이전 고민" 한 마디로 점화한 전력 공급 논란

나라 어딘가에서 인공지능(AI) 시대에 필요한 만큼 전기를 만들 수는 있다. 그런데 정작 사용할 곳에 전기를 보내는 일은 갈수록 어렵다. 동해안 발전소들이 생산하고도 보내지 못하는 전력이 7GW다. 서해안까지 합치면 10.2GW가 송전선 부족으로 송전되지 못한다. 오래 전에 구축된 '송전 거버넌스'에만 의존하면서 생겨나는 문제다. 

 

용인에 건설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단적인 사례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무려 1000조 원에 가까운 돈을 투자해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 중이다. 하지만 정작 생산설비를 돌리기 위해 필요한 전력을 공급받지 못할 위기다.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 [뉴시스]

 

지난해 12월 대통령실 보고회에서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국가산단 필요 전력 9GW 중 3GW가 미확보 상태라고 밝혔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도 일반산단 6GW 중 3GW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했다. 필요 전력 총 15GW 중 6GW가 공백이다. 

 

'전력을 끌어오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간단치 않다. 2003년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로 전국에서 송전탑 설치를 둘러싼 갈등이 전국에서 고착화했다. 수도권 수요를 위해 비수도권에 송전탑을 세우는 구조에 대한 누적된 반감이다. 충청·강원 등 각지의 지역주민이 '전력 식민지'라는 강도 높은 표현을 동원해가며 반발한다.

 

여기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인 불씨까지 더해졌다. 지난해 12월 김성환 기후부 장관이 "반도체 클러스터를 전기 많은 곳으로 옮겨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발언하면서 이전 논의에 불을 붙였다. 지역구 정치인들이 곧바로 반응했다. 여당의 호남 지역구 정치인들이 '새만금 이전론'을 꺼냈고, 야당에서도 'TK(대구·경북) 분산론'이 나왔다. 

 

클러스터 수혜를 기대하던 용인시는 강하게 반발했다. 지역경제와 땅값 상승이 걸린 문제다.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은 지난달 현장 일정에서 "반도체는 대한민국의 미래이자 국가전략산업"이라며 "정치적 목적으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지방으로 이전하자는 주장은 경쟁력을 악화시키고 경제를 흔드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달아오르던 이전 논란은 일단 표면적으로 잦아든 모양새다. 그러나 수면 아래에는 '새만금 이전론', 'TK 분산론', '용인 사수론'의 불씨가 여전하다. 논란이 잠시 소강 국면에 놓였을 뿐이지, 지방선거 이후 언제든 갈등이 다시 점화할 수 있다.

 

▲ 용인 원삼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 [뉴시스]

 

용인 산단 사례는 낡은 '송전망 거버넌스'가 갖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이중 인허가 구조다. 전력 계획 승인 권한은 중앙정부에 있고, 인허가 권한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중앙정부가 발전·송전 사업을 승인해도 실제 땅에 철탑을 세우려면 지자체의 개발행위허가·도로점용허가 등 인허가가 별도로 필요하다. 지자체는 인허가를 거부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다. 

 

중앙정부는 지자체에 인허가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 일례로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2003년 착공해 2012년 준공 예정이었는데 150개월 지연돼 지난해 말에야 겨우 완공됐다. 현재도 전국 송전선로 31곳 중 26곳이 건설 지연 상태다. 

 

그 결과 발전소를 지어놓고도 송전선이 없어서 전기를 보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동해안 지역에서만 최대 7GW, 서해안 3.2GW 등 총 10.2GW가 발전 제약 상태다. 여름철 서울시 최대 전력수요와 맞먹는 규모의 전기가 허공에 날아가는 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력망특별법(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지난해 2월 국회를 통과했다. 지자체장이 60일 이내 주민 의견을 수렴해야 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협의를 마친 것으로 간주하는 조항이 핵심이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지자체의 인허가 '지연'을 막을 수 있을 뿐이지 '거부'를 강제로 뒤집진 못 한다.

 

전문가들은 현행 시스템의 현실적인 보완책 중 하나로 전력이 필요한 곳에 직접 발전소를 짓는 '온사이트(On-site)' 방식에 주목한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해 8월 발간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 리스크 진단' 보고서에서 클러스터 내 가스터빈·ESS·연료전지 등을 통합한 '분산 발전체계 구축'을 개선 과제로 언급한 바 있다.

 

한국전력전경영연구원 역시 관련 보고서에서 "온사이트 전원은 단순한 비상용 설비를 넘어 핵심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전력망 확충과 함께 분산형 전원과의 역할 분담을 제도적으로 명확히 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KPI뉴스 /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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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충현 /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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