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의 기업 생존법 '뭉치거나' 혹은 '팔거나'

박철응 기자 / 2025-05-02 17:44:40
포스코&현대제철, 美 제철소 공동 투자
'슈퍼 사이클' 전력 분야 활발한 동맹
한진&LS 협약 이면엔 호반 견제 포석?
SK 리밸런싱, 순차입금 2조 축소 분석

세계 경제가 격랑에 휩싸인 가운데 한국 기업들의 동맹 전략이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의 압박에 따른 부담을 나눠 지고 한편으로는 전력과 조선업 등 새로운 기회를 효과적으로 공략하려는 전략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사례들도 나타나고 있다. 위기 돌파를 위해 계열사를 매각해 몸집을 줄이려는 시도도 잇따른다. 

▲ 지난 3월26일(현지시간)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생산된 아이오닉 5 앞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부터), 소니 퍼듀 전 조지아 주지사,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국내 철강 1·2위인 포스코와 현대차그룹 계열사 현대제철의 의기투합이 대표적이다. 중국발 공급 과잉에 더해 미국 관세까지 겹친 복합위기를 뚫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지난달 21일 체결한 협력 양해각서에 따라 현대제철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짓기로 한 전기로 제철소에 포스코가 지분 투자를 하는 형태다. 

 

연간 270만t 생산 규모로 계획된 제철소를 지으려면 58억 달러(약 8조2500억 원)의 투자금이 필요하다. 현대제철은 자금 부담을 덜고 포스코는 25%의 철강 관세를 피할 수 있는 현지 생산거점을 마련할 수 있다. 

 

박성봉 하나증권 연구원은 "상반기 중으로 미국 전기로 관련 현대제철의 최종 투자금액 및 자금 조달 방식이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현대제철의 투자금액이 과도하지 않다고 판명될 경우 불확실성 해소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짚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현대차그룹이 계열사를 통해 자체적인 자동차 강판을 만들면서 포스코가 강판 원료 공급을 중단하는 등 양사가 대립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엄혹한 외부 환경에 맞서기 위해 강한 협력이 필요해진 것으로 보인다. 현대제철은 지난달 24일 1분기 실적설명회에서 포스코와 관련해 "미국 투자 협력에 이어 국내 사업에 있어서도 다양한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AI 수요 등으로 이른바 '슈퍼 사이클'에 진입한 전력 관련 분야에서도 활발한 협력이 일어나고 있다. 

 

LS일렉트릭은 지난 2월 삼성물산 상사 부문과 함께 미국 현지 에너지저장장치(ESS) 프로젝트 추진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공동 출자로 삼성물산 미국 법인이 개발 중인 500㎿(메가와트) 규모 ESS를 완성하려는 것이다. 미국 10만 가구가 연간 사용 가능한 발전 용량이다.

 

같은 달 삼성SDI는 현대차·기아와 로봇 전용 배터리 공동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지난달 열린 국내 최대 배터리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5'에는 현대차·기아가 만든 로봇이 삼성SDI의 배터리를 소개하기도 했다. 삼성SDI는 한화오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함께 잠수함용 2차전지를 개발해 해군의 테스트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 분야에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동맹은 반전 수준이었다. 지난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관련 경쟁 과정에서 소송전을 벌이며 원색적인 비난을 서로 퍼부었으나 이제는 '수출사업 원팀'으로 손을 잡았다. 조선업 호황 속에서도 자국 기업들끼리 각개약진하면서 피해를 볼 수 있고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서도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한진그룹과 LS그룹이 지난달 25일 맺은 업무협약은 항공우주 사업과 도심항공교통(UAM), 전기차 충전소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시너지를 표방했다. 그런데 두 그룹 모두 호반그룹과 불편한 관계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이해관계가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적지 않다. 

 

호반그룹은 LS전선의 경쟁사인 대한전선의 모기업이다. 경찰은 LS전선이 보유한 해저케이블 공장 설계 노하우가 대한전선에 유출됐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LS전선은 사실로 밝혀질 경우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고 대한전선도 혐의가 없다고 판명되면 가능한 민형사상 조치에 나설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호반그룹이 LS 지분을 일부 매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갈등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호반그룹은 단순 투자라고 하지만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계열사 간 합병이나 매각을 통한 슬림화 경향도 눈에 띈다. 지난해부터 이른바 리밸런싱(사업 구조조정)에 적극적인 SK그룹이 대표적이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SK온과 SK엔텀,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의 합병, SK에코플랜트와 SK에어플러스, 에센코어 통합 등을 숨가쁘게 진행해 왔다. SK스페셜티와 SK렌터카 매각에 이어 알짜로 여기지는 반도체 웨이퍼 기업 SK실트론 매각까지 추진하고 있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차입금을 획기적인 수준으로 감축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미래 성장 투자를 위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지난해 말 SK의 별도 순차입금은 약 10조원으로 산출되는데, 올해 1분기 말에는 약 8조 원 수준으로 감소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SK텔레콤도 4133억 원 규모의 카카오 지분 전량을 매각한다고 지난달 25일 공시했다. SK브로드밴드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고 AI 등 투자를 위한 자금 확보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애경그룹이 애경산업 매각을 추진하는 것은 지난해 말 계열사인 제주항공의 참사가 한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지주사인 AK홀딩스는 유동성 위기가 그룹 전반으로 확산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그룹의 모태 기업 매각이라는 결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AK홀딩스는 지난달 30일 공시를 통해 "애경그룹은 그룹 재무구조 개선 및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며, 아직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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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응 /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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