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쿠르드 배신 잔혹사, 이번에도?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 2026-03-06 17:00:54
미국·이스라엘-이란전쟁에 쿠르드족 투입 가능성 제기돼
트럼프 "전적으로 찬성할 것"…쿠르드족 지도자들과 통화
쿠르드족, 미국 요구 따라 군사 작전 했다가 거듭 버려져
2019년에는 트럼프가 동맹인 시리아 쿠르드족 토사구팽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에 쿠르드족 무장 세력 투입 가능성이라는 변수가 등장했다.

이라크에 있던 쿠르드족 전사들이 이란으로 들어갔다고 폭스뉴스를 비롯한 외신들이 5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몇 달 전부터 쿠르드족을 지원하는 비밀 공작을 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공습 시작 다음 날인 1일 쿠르드족 지도자들과 통화한 사실을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로이터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쿠르드족의 이란 공격 가능성과 관련해 "훌륭한 일", "전적으로 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르드족 무장 세력이 투입된다면 미국의 이해에 부합하는 지상 작전을 미군을 대리해 전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군 사망자 발생이 부담스러울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쿠르드족 투입은 정치적으로 유용한 카드일 수 있다. 

 

▲ 지난해 3월 20일(현지 시간) 이라크 아크라에서 쿠르드족이 페르시아 태양력의 새해 첫날인 노루즈를 축하하고 있다. [AP/뉴시스]

 

쿠르드족 투입 가능성이 주목받는 것은 이들의 역사 때문이기도 하다. 쿠르드족은 3000만~400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튀르키예,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오랫동안 독립 국가 건설을 추진했지만 거듭 좌절을 맛봤다.

이들의 역사는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에게 배신당한 일로 점철돼 있다. 미국의 배신으로 거론되는 사례는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쿠르드족이 미국의 요구에 부응해 군사 작전을 전개했다가 버림받은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사례로 1972~1975년, 1991년, 2014~2019년 상황이 주로 거론된다.

1972~1975년에 쿠르드족은 이라크에서 자치 정부를 세우기 위해 이라크군과 싸웠다. 배후에는 무기와 자금을 대준 미국이 있었다. 미국이 쿠르드족을 지원한 이유는 이란과 국경 분쟁 중인 이라크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팔레비 왕조가 통치한 이란은 '미국의 헌병'이라 불리던 대표적 친미 국가였고, 이라크는 미국보다 소련과 가까운 사이였다.

1975년 이란과 이라크는 국경 분쟁을 접어두기로 합의했다. 두 나라 모두 쿠르드족의 힘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미국의 쿠르드족 지원은 중단됐다. 이라크는 쿠르드족을 다시 공격했다. 미국은 쿠르드족의 도움 요청을 외면했다. 쿠르드족은 큰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1991년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전년도(1990년)에 쿠웨이트를 점령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공격한 해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 국민들에게 후세인 축출을 위한 봉기를 촉구했다.

이에 호응해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과 남부의 시아파가 후세인 정권에 맞선 무장 투쟁에 돌입했다. 그런데 미국은 이들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았다. 봉기를 부추긴 후 발을 뺀 셈이다. 봉기는 후세인 정권에게 진압됐고 쿠르드족과 시아파는 보복을 당했다.

2014~2019년에도 쿠르드족은 '토사구팽'(兎死狗烹·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다) 당했다. 이 시기에 시리아 내 쿠르드족 민병대는 미군과 동맹을 맺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와 싸우는 데 앞장섰다. 미군 대신 지상전을 대부분 감당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IS 격퇴에 큰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여성 민병대원을 포함한 수만 명의 쿠르드족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도 돌아온 것은 배신이었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은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통화한 후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전격 지시했다. 이는 튀르키예의 쿠르드족 공격을 용인한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그 직후 튀르키예는 눈엣가시로 여기던 쿠르드족을 대대적으로 공격했다. 이로 인해 다수의 어린이를 포함한 많은 쿠르드족이 사망했다.

쿠르드족을 또 저버린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는 미국 내에서 논란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이던 쿠르드족에게 테러 위협 세력, 공산주의 같은 딱지를 붙이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다른 하나는 쿠르드족이 미국과 손잡고 싸운 때와는 거리가 있는 시기에 이뤄진 중동 국가들의 쿠르드족 학살 또는 공격을 미국이 묵인한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사례로는 1988년, 2007년 상황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란-이라크전쟁(1980~1988) 중이던 1988년 후세인 정권은 쿠르드족 거주 지역인 이라크 북부 도시 할라브자에 신경가스를 살포했다. 신경가스는 국제 사회에서 금지된 화학 무기다. 이로 인해 약 5000명이 사망하고 7000명 이상이 심각한 신체 손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할라브자 학살로 불리는 사건이다.

미국은 이 학살을 눈감아줬다. 후세인 정권의 학살을 비난하면, 1978~1979년 이슬람혁명을 계기로 반미 국가로 바뀐 이란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2007년 튀르키예가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지역을 폭격했을 때에도 미국은 눈감아줬다.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이 1991년은 물론 2003년에도 이라크를 공격한 미국 편에 섰음에도, 미국은 튀르키예의 쿠르드족 공격을 묵인했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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