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손으로 캐릭터 그리곤 “이 개구리 원숭이는 모그야!”
프로작가들 '모그스타즈' 합류, 현대백화점서 전시회도 열어
| ▲ 넵튠이 모그 인형을 들고 있다. [Sims Green SayArt(세이아트)] |
"모그(Mog) 입은 가로로 길쭉해요. 먹기 싫은 시금치 반찬을 엄마가 매일 줘서 입속에 시금치를 몰래 감췄어요. 모그는 외계인이죠. 사람이 되고 싶은 외계인 모그는 진주색 행성을 찾아 여기저기 우주를 여행해요."
하지만 캐릭터의 원작자인 꼬마작가 ‘넵튠’이 들려준 얘기의 결말은 슬프다. 공룡처럼 인간이 모두 사라져야 모그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모그는 넵튠(박건우·7세)의 장난감 방에서 태어났다. 어느날 꼬마 건우는 장난감 방에서 “엄마 어서 와, 여기는 건우의 백화점. 난 사장님이야. 백화점 사장님 !”이라며 엄마를 채근했다. 늦둥이 아이의 이야기에 엄마는 아이와 함께 백화점 간판을 함께 그리기로 했다. …… 아이가 직접 이름까지 붙인 모그 그리고 아이의 우주 이야기. 엄마는 그날 아이에게 “나는 옆에서 언제나 빛나는 별이 돼서 너를 비출게”라며 ‘모그 스타즈’를 만들었다. 최근 모그와 관련해 여러 전시를 이어오고 있는 7살 꼬마 작가, 넵튠 박건우 군의 작업실을 지난 10일 찾았다.
건우는 자신을 넵튠(Neptune·해왕성)이라고 소개했다. 왜 모그라고 이름을 지었느냐고 묻자 “모그니까 모그죠”라며 눈을 부릅뜬다. 넵튠도 그렇고 모그도 당연한 이름인데 왜 묻느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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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마 작가 넵튠의 어린시절 [부모 제공] |
아이는 기저귀를 찰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낙서려니 여겼지만, 점차 아이가 그려내는 무한대의 상상력은 엄마와 아빠를 놀라게 했다. ‘우주 행성과 항성들 사이에 뜬 무지개', '기분이 좋아 덩실덩실 춤을 추는 오징어’ 등 건우의 그림은 어른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넵튠은 ‘빨주노초파남보’로 구성된 무지개 7색을 모두 쓴다. 이유도 간단하다. “색이 모두 이뻐서 고를 수가 없어요. 무지개색은 모두 예뻐요. 저는 엄마가 예쁘다고 하면 그게 좋아요. 이쁜 건 슬픈 것을 사라지게 해요.” 넵튠에게 칭찬받았을 때 들은 ‘예쁜 것’은 무지개색과 통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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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넵튠은 지난 4월 현대백화점에서 열린 공동전시회 'Hero'에 참여했다. [부모 제공] |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건우는 지난 4월 현대백화점에서 ‘낙타에서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로(Hero)’란 주제로 열린 공동 전시회에 참가했다. 출품한 작품들은 ‘모그’와 관련한 인형, 피규어 그리고 그동안 그린 여러 주제의 그림들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여러 작가와 협업했다. 꼬마작가의 그럴싸한 이야기를 들은 주변 작가들이 ‘모그스타즈’에 합류한 것이다. 하지만 난감한 일도 벌어졌다. “이건 모그가 아니야. 모그는 다리가 길다구….” 건우는 프로작가들에게 여러 지적을 내놓으며 따졌다. 화들짝 놀란 작가들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번거롭지만 꼬마작가의 요구에 맞춰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아이와 함께한 작업 자체가 즐거웠고 유쾌한 추억이 됐어요”라고 작가들은 회상했다.
엄마는 “많은 이에게 아이의 마음이 담긴 모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냥 무시하고 지날 수 있었겠지만,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모그를 실체화해 준 여러 작가님에게 감사할 따름이죠”라고 했다. 이렇게 아이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 이들이 바로 ‘모그스타즈(MogStar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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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그 스타즈'에 참여한 김태기 문경준 서준교 작가 (좌부터) [Sims Green SayArt(세이아트)] |
힘을 보탠 ‘모그스타즈’ 작가들은 이미 업계에 이름을 알린 프로들이다. 테마파크, 설치미술, 트릭아트로 국내외 유명 전시 기획·제작·연출을 담당한 ‘디자인정글’ 대표인 우혜영 작가. 우 작가는 대형 피규어 제작을 담당했다. ‘357파인아트’ 대표이자 피규어 아티스트인 김태기 작가. 그는 소형 피큐어를 만들었다. 사치갤러리에서 미디어아트를 선보이며 주목받았고 SM리더필름을 총괄했던 미디어그룹 ‘칼로스’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문경진 작가는 스토리 영상에 힘을 보탰다. 2021년 국립과학관 인공지능과 예술특별전 가상다온을 연출, 전주국제영화제 단편 부분에 초청된 감독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서준교 작가도 영상 제작에 힘을 보탰다. 엄마는 모그의 캐릭터 인형제작을 맡았다.
주목할 점은 이들 모두가 자기 비용으로 작품들을 만들며 아이와 함께했다는 것이다. 일체의 상업 목적이 배제된 말 그대로 아이의 성장에 바탕을 둔 ‘of the Neptune, by the Neptune, for the Neptune’이었다. 엄마가 모그를 처음 보고 약속했던 빛나는 별이 이젠 ‘모그스타즈’라는 여러 개의 별로 넵튠을 비추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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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마 작가 넵튠은 우주를 좋아한다. 작가가 찰흙으로 만든 우주이야기. [부모제공] |
아이는 12년 열애 끝에 부부가 된 엄마 아빠의 늦둥이 아들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던 아이는 사실 태어날 때 심장에 작은 구멍을 가지고 태어났다. 부부는 이런 아이의 하루하루가 심장이 멎을 것만큼이나, 소중했고 시렸다고 한다. 어느 날부터 아이가 그려내는 낙서 같은 그림들을 두 사람이 허투루 대할 수 없는 이유였다. 디자이너인 엄마는 집에 풍족한 그림 재료들을 아낌없이 아이에게 건넸고 아이의 낙서는 점차 자신만의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다. 엄마는 무엇을 가르치거나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 생각대로 쓱쓱 그려내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 엄마는 행복했다. 최근까지도 건우가 ‘우리 엄마는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라고 여긴 이유다. 엄마는 행여 그림을 잘 그리는 엄마의 것을 보고 아이가 흥미를 잃을까 염려했다. 그렇기에 엄마는 그저 아이 옆에서 맞장구쳐 주고 끝없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독일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아빠도 이따금 집에 오면 엄마와 꼭 닮은 건우의 친구였다.
엄마와 아빠는 아이의 기록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무얼 할 거라는 계산은 없었다고 한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그대로 담아두고 싶었다. “아이의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들으면 하루 시름이 다 사라지는 듯했어요. 처음엔 아까워 모으기 시작했지만, 나중엔 꽤 그럴싸한 것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라고 회상했다.
최근엔 외부 활동이 부쩍 늘어 대중의 이목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는 아이의 이런 활동에 대한 외부의 오해나 편견이 없길 바란다. “아이를 데리고 무언가 하려 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를 바라요. 특히 작가님들이요. 작가님들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주며 아이의 성정에 큰 힘이 되어주셨어요. 아이의 활동이 너무 상업적으로 흐르거나 작가님들의 참여가 특별한 목적으로 오해되지 않기 바라는 이유죠.”
넵튠은 타고난 아이일까. 이유야 어떻든 건우는 현재 7살 인생을 작가로 살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건우는 분명 남다른 ‘더듬이’를 가지고 있다. 사물을 특별하게 보고 그것을 다양한 색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나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능력. 이런 특별함은 기존의 교육으로 만들어지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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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넵튠 작가 박건우 군이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부모 제공] |
이런 건우의 특별함은 어디서 왔을까. 사실 누구나 한동안은 ‘내 아이가 천재는 아닐까?’라는 즐거운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개 그런 천재성은 일정 유효기간이 끝나면 금세 사라지는 게 일반적이다. 또 특별한 천재성을 유지하는 아이라도 이른바 ‘학원 뺑뺑이 셔틀’에 내몰려 획일화하면서 보통 아이로 변하는 게 허다하다. 계산된 방식이나 전통적인 교육으론 건우와 같은 ‘더듬이’를 유지하게 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건우의 특별함도 일정 유효기간이 담보된 것인지 훗날 세기의 천재성으로 기억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건우의 성장 스토리의 핵심은 한치 뒤로 물러선 부모의 ‘응원과 호응 혹은 방목’이 만든 유효한 육아일기일지도 모른다. “내 아이가 무엇이 될까”보다는 “내 아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에 방점을 둔 늦둥이 부모의 육아일기.
다시 넵튠의 집을 방문한 날, 7살 꼬마는 집안을 휘젓고 있었다. 자기가 만든 어벤저스 옷과 신발을 착용하고 칼을 손에 쥐고 있었다. 여러 장신구에 대한 설명도 한동안 이어간다. 작업실이라고 문을 연 넵튠의 방에는 여러 작품과 그리다가 만 그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100살이 넘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라고 했다. 또래 아이보다 키와 몸이 작은 건우는 미술 얘기를 할 때만큼은 장군처럼 씩씩하고 목소리도 커진다. 작업실은 한정하진 않는 듯했다. 아이는 이날도 이방 저방 거실을 오가며 작업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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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마 작가는 직접 네이밍을 하고 글자체도 만들었다. [부모 제공] |
최근 아빠는 육아휴직까지 내고 아이의 하루를 챙기며 매니저를 자처하고 있다. 그나마 육아휴직은 봄이면 끝난다고 걱정이다. “그때가 되면 각자 도생해야죠”라며 아빠는 웃지만 주어진 시간만큼만이라도 아이를 더 챙기려는지 눈을 떼지 못했다.
넵튠은 최근 어벤저스를 자주 그린다. 모그를 처음 그린 지 꽤 시간이 지나 관심도 많이 바뀐 탓이다. 엄마와 아빠는 “아이가 언젠가 그림을 그만두고 더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도 있죠. 갑자기 축구를 한다고 할지 알 수는 없죠. 아이가 크는 만큼 저희도 같이 성장하려 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의 행복이죠. 언젠가 저희가 세상에 없을 때 아이가 지금의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하고 떠올리길 바라요. 엄마 아빠의 마지막 선물처럼”이라고 했다.
최근 넵튠이 자주 그리는 어벤저스는 자신을 늘 비춰주는 ‘모그 스타즈’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거실을 오가며 넵튠은 오늘도 즐거운 무지개 빛 춤을 추고 있다. 행복한 오징어처럼.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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