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K스포츠재단, 5공 '일해재단'과 판박이…판결은?

김이현 / 2019-04-27 12:10:40
기업 출연금 놓고 "자발성"vs"강제성" 논쟁
하급심 판단도 엇갈려…포괄적 뇌물죄 가능성
상고심에 '촉각'…"동일한 논리 판단 나와야"


"민간기업의 기부가 뇌물로 오해받게 돼 안타깝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의 뜨거운 감자는 준조세(準租稅)였다. 조세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조세와 같은 성질을 갖는 기부금. 기업이 권력자나 정부의 암묵적 요구에 따라 거액을 출연하는 것을 두고 '자발적 참여'인지 '뇌물'인지 갑론을박이 이어져왔다.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취지를 놓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후변론에서 안타깝다고 되뇐 까닭이다.

국민 입장에서 진짜 안타까운 점은 따로 있다. 국정농단 진상규명과 '똑 닮은' 청문회가 28년 전에도 있었다. 당시 청문회의 공식 명칭은 '5공화국 비리 조사 국회 특별위원회'. 화두는 단연 기업의 재단 출연금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딴 '일해재단'은 미얀마 아웅산 테러 희생자의 유가족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기업들로부터 거액(598억)을 강제모금했다. 일해재단의 수법을 그대로 모방한 듯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데자뷔를 경험한 이유다.


▲ 2016년 12월6


28년 전 청문회 데자뷔…대를 이은 정경유착

그렇게 역사는 반복됐다. 1988년 '일해재단 청문회'에는 삼성, 한화, 현대 등 굴지의 대기업 회장들이 불려나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는 일해재단에 돈을 냈던 그룹 총수의 아들들이 증인석에 섰다. 정경유착의 민낯이 대를 이어 드러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표면적으로는 자발적 형식이지만 내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권력"이라면서 "기업은 울며 겨자 먹기로 동참하면서도 청탁할 수 있는 명분이 되는 기이한 관행이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28년 후에도 입장은 변함없었다. 두 청문회에서 그룹 총수들은 청와대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강제성을 일부 시인했다. 하지만 사업 특혜나 총수 사면 등 대가성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좋은 취지로 기부금을 거뒀을 뿐 강제성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받은 사람은 '경제계의 자발성'을, 준 사람은 '권력에 따른 강요'를 각각 주장한 셈이다.


▲ 일해재단-미르재단 비교 [그래픽=김상선]


"대법원에서 동일한 논리 판단 나와야"

하급심의 판단도 엇갈렸다. 지난 2월 항소심 재판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강요의 피해자"라며 뇌물 혐의의 상당 부분을 무죄로 뒤집고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정경유착"이라며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과 판이했다. 특히 한국스포츠영재센터와 미르·K스포츠재단에 건넨 돈이 모두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와 달리 박 전 대통령 2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경영권 승계 관련 '묵시적 청탁'이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스포츠영재센터에 건넨 돈을 뇌물로 본 것이다. 같은 사안을 놓고 뇌물을 준 사람과 뇌물을 받은 사람의 판결이 다른 것이다. 조지훈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재판 결과가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동일한 논리의 판단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12월21일 오전 인천 송도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기공식에 참석, 발파버튼을 누른 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격려하고 있다. [뉴시스]

 

"뇌물혐의, 유죄로 판단하는 게 합당한 법리적 결론"

삼성은 상고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에 대한 2심 재판부의 판결이 엇갈려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해재단 수사 당시 검찰은 "강제성은 없었다"며 관련자들을 기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1997년 다시 한번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가 진행됐고, 그 결과 이건희 삼성 회장과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 등 기업 총수 8명이 뇌물공여죄로 처벌받았다. 7년여 재임기간에 전 씨는 일해재단 기금 598억 원을 포함해 9500억 원의 돈을 챙겼고, 이 가운데 검찰이 뇌물로 확정한 금액은 2159억5000만 원이었다.

1997년 수사때 적용된 개념이 바로 '포괄적 뇌물죄'다. 당시 기업 총수들이 일해재단에 낸 출연금은 포괄적 뇌물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1997년 대법원은 대통령의 직무에 관한 뇌물죄 적용을 놓고 '개개의 직무행위와 대가적 관계에 있을 필요가 없으며, 그 직무행위가 특정된 것일 필요도 없다'고 판시했다. 결국 대통령에게 넘어간 돈은 직무 연관 여부와 대가성을 일일이 가릴 필요 없이 포괄적 뇌물이라는 취지다. 


이 경우 기업들에게도 '제3자 뇌물교부죄'나 '뇌물공여죄'가 적용될 수 있다. 삼성은 이전부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서 드러나듯 경영권 승계 현안이 존재한 데다 국정농단 특검 수사 결과 합병 전후 국민연금,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곳곳에 청와대 압력이 작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목적으로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묵시적 청탁' 적용 가능성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조지훈 변호사는 "일반공무원이나 중소기업 사장도 아닌 1위 재벌 총수가 임기제 대통령에게 강압에 의해서만 돈을 냈을 리 만무하다"면서 "뇌물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는 게 합당한 법리적 결론"이라고 말했다. 김종휘 민변 변호사는 "1·2심과 같이 재단출연금에 대한 부분이 무죄로 나온다면 권력자가 재단이란 형식을 빌려서 기업에 돈을 걷는 정경유착이 합법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KPI뉴스 / 김이현 기자 k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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