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이 호로자석들아, 멋들 허는 짓거리여!"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3-11-24 17:27:59
돈 문제 조명 장편 '황금종이' 펴낸 소설가 조정래
돈에 얽힌 다양한 사례들 생생하고 신랄하게 진설
인간의 실존과 현실, 본성 욕구 천착 '3기' 여는 작품
"야비하게 돈에 휘말려 있는 인물들 통해 소설적 구원"

소설 장인 조정래(80)가 새 장편 ‘황금종이’(전2권·해냄)를 펴냈다. 국가란 무엇인지 탐구한 ‘천년의 질문’ 이후 4년만에 펴낸 장편이다. 그가 분류하는 기준을 따르자면, 민족의 역사와 현실의 모순과 갈등을 기록했던 1~2기 작품에서 떠나 인간의 실존과 현실, 본성과 욕구를 천착하는 3기를 여는 작품이다.

 

▲팔순에 이르러 새 장편 '황금종이'를 펴낸 소설가 조정래. 그는 이 작품을 끝낸 직후 다시 '마지막' 작품을 향한 준비에 들어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돈이란 대체 무엇인지,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흔드는 ‘살아 있는 신’으로 군림하는 그 돈의 실체를 천착하며 돈에 얽힌 여러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했다. 조정래는 신간 출간을 계기로 주초에 기자들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근년의 생각과 향후 마무리할 작업에 관해 소상히 밝혔다.
 

그는 “인간의 본성과 존재 문제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면서 끝없이 야기되는 비극적인 현실에 대해 평생에 걸쳐서 생각해온 내용을 더 집중적으로 사유해 이번 소설을 썼다”면서 “돈이 인간을 어떻게 구속하고 어떻게 지배하는가, 또 인간은 어떻게 해서 돈에 그렇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를 소설로 쓰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사회주의가 몰락해버린 다음에 자본주의가 세계 유일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돈은 그 힘이 더 막강해졌다”면서 “우리 본능을 훨씬 뛰어넘는 무서운 야수적인 힘을 가지고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소설은 운동권 출신 변호사 이태하와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환멸을 느끼고 귀농한 한지섭을 축으로 삼는다. 운동권 출신 두 인물을 중심에 놓고 대기업 임원과 간부인 이태하의 고교 동창들을 매개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자식들끼리 부모 유산을 두고 송사를 벌이는 경우는 기본이고 돈 때문에 사귀던 애인이 배신하자 살인까지 저지르는 남자, 갑자기 임대료 4배를 인상하는 건물주에게 망치를 휘두르는 식당 주인을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가 진설된다.
 

올곧은 운동권 출신 변호사 이태하는 검찰에서 재벌 비리 수사를 하다 눈밖에 나자 옷을 벗고 나와 변호사로 살아가는 캐릭터. 대기업들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태하는 소소한 건들을 맡아 묵묵히 걸어갈 따름이다. 귀농한 한지섭 선배가 이태하의 유일한 멘토이자 소중한 말벗이다. 조정래는 “한국 현대사가 군부독재의 질곡에 빠져 있을 때 오늘의 민주화를 이룬 것은 운동권 출신들의 공헌이기 때문에, 그들이 여러 가지로 변질이 되고 문제가 많지만 그러한 정신들을 최소한이나마 간직하는 것, 우리의 삶을 우리 스스로가 책임지는 것, 그것이 돈을 이겨내는 인간으로서의 노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두 인물을 만들어 냈다”고 밝혔다.

 


 

-소설 속 사건들은 어디서 착상을 했는가.
“소설을 쓰는 작가는 그가 숨쉬고 살아있는 동안 바라보는 모든 물상이 소설 소재다. 어떤 소재는 당장 생각하는 게 아니라 수십년 되풀이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완벽하다 싶을 때 소설에 착수하게 되는 건데, 돈 문제 같은 것은 가난했던 시절 대학생 때부터 생각한 것이다. 돈이 삶을 괴롭힐 때마다 골백번 생각했던 문제다. 이 소재를 그동안 뒤로 미뤘던 것은 돈에 대해 근본적으로 철저하고 싶었던 욕구가 있었고 더 많은 사례를 모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없이 많이 보아왔던 보편적 삶 속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쓰게 된 것이어서 특별한 착상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결실로 봐야 할 것이다.”
 

-돈을 둘러싼 여러 에피소드가 전개되는데, 특히 가슴 아픈 소재는 어떤것인가.
“암으로 죽어가는 어미가 평생 모아놓은 돈이 든 통장 비밀번호를 자식에게 가르쳐 주지 않고 통장을 이불 밑에 놓아둔채 죽어버린 이야기는 흔하면서도 가슴 아픈 이야기다. 내일 모레 죽을 건데 호스피스 병동에 가서도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 한 번 타보고 싶어하는 그게 서민들의 삶일 것이다. 아들놈은 그 돈을 가지고 로또 하다가 자살해버리는... 잘 모르겠다. 그게 인생인 건가.”
 

군인 출신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다가 아이들을 남겨놓고 집을 떠나온 오순녀. 그녀가 홀로 서울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돈을 모아 연립 한 채와 현금을 넣어둔 통장 하나 들고 호스피스 병동까지 가는데, 이 여성은 그 와중에서도 ‘살 욕심’과 ‘돈 욕심’, 두 가지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친족의 수술 동의가 필요해 연락을 끊고 살았던 아들과 연이 닿았는데, 그 아들은 어미가 죽기도 전에 집을 탐내고 통장의 비밀번호를 알아내려고 기를 쓴다. 오순녀가 죽자 장례식장 복도에서 생전에는 교류도 없었던 아들과 딸이 서로 어미가 남긴 돈을 두고 싸운다. 오순녀 오빠의 천둥 같은 호통. '야, 이 호로 자석들아, 요것이 멋들 허는 짓거리여!' 

 

-소설 속 이태하 한지섭은 한 세대를 상징하는 운동권 인물들이다. 실제 모델이 있는가?
“한 작가의 능력은 그가 얼마나 많은 작품을 썼느냐보다 얼마나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인물을 창조했느냐로 평가된다는 문학론이 있다. 소설은 인물 창조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인물은 흔히 운동권에서 봐 왔던 어느 누구쯤으로 자유롭게 짐작할 수 있겠지만, 특별한 모델은 없다.”
 

▲ 조정래는 "신생 조국 대한민국 역사는 겨우 70년 남짓"이라며 "차츰 개선돼 나가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 속에서 정치를 접고 귀농한 한지섭의 말. ‘운동권 누구나 그랬겠지만, 내가 가장 싫어했던 것이 '즈네들 출세의 수단으로 운동한다'는 말이었소. 보수세력들은 그 말로 운동권을 비판하고 부정했는데, 그 말이 사실인 것을 입증해 주고 현실화시켜 준 것이 운동권 출신들이잖소.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렇게 쉽게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있는 줄 모르고 괜히 운동했네' 하고 말한 자가 극치였소. 그래서 그 부류들은 야당 쪽의 자리가 동나자 허둥지둥 여당 쪽으로 몰려간 것 아니겠소. 운동할 때 자기들이 그렇게 비판하고 매도 해댔던 그 보수 집단 여당으로 말이오. 그래서 운동권 출신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변절을 하기 시작했소.’

 

-특별히 중심 인물을 운동권 출신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는가.
“그들이 운동을 했던 그때의 처녀성을 지니고 단결해서 40~50 명의 국회의원을 만들어냈다면, 그리고 그 순결을 계속 지켜갔다면 그야말로 국민을 위한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태백산맥’을 쓰고 있을 때 치열하게 응원해주고 밀어줬던 그 사람들에게 거는 정치적 기대인데, 현실은 그렇게 안 됐다. 자기 욕심을 차리는 권력욕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변질되어서 그들의 존재가 희미해져버렸고, 지금은 내놓은 처지까지 되어버렸다. 그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항상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교육자도 종교인도 정치인도 그 항심이 없이 이익 앞에서 흔들려 무너져버리는 그것이 인생의 가장 보편적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젊은이들이 제게 사인을 부탁할 때 해주는 말 딱 한 마디가 ‘늘 첫 마음으로’다. 이것은 제가 작가로서 지니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이고, 평생 흔들릴 때마다 저한테 채찍을 가해가면서 지켜온 마음이다.”


이태하의 동창 박현규의 딸은 오래 사귀던 남인호에게 이별을 선언하고 수천억대 자산을 지닌 남자에게 간다. 뒤늦게 자신과 헤어진 이유를 알아챈 남인호가 벌인 참극으로 인해 박현규는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되고 끝내 저 세상으로 떠난다. 이태하는 현규를 두고 ‘돈은 인간의 실존인 동시에 부조리’라는 어느 교수의 정의를 대변하는 경우라고 혼잣말을 한다. 이어지는 소설 속 돈의 초상.
‘인간 사회를 지배해 온 두 개의 권력은 정치와 종교다. 그런데 그 두 가지를 지배하는 권력이 있다. 그것이 돈이다. …모든 종교의 신들은 다 죽었고, 생살여탈권을 가진 돈만이 오로지 살아 있는 신이다.’
 

-집필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는가.
“왼쪽 귀와 오른쪽 눈이 안좋다. 책도 기증하고 내가 죽어서 자손들에게 남겨야 할 것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버릴 것 버리는 생활을 시작한 지 2년 됐다. 떠날 때 구차한 뒷모습 보이지 않게 노력하는 것, 그게 노년의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하루에 200자원고지 35장 정도씩 썼는데 이번에는 욕심을 버리고 하루에 5장씩 쓰려고 했다. 쓰다 보니 가속도가 붙어서 15~20장씩 쓰게 됐고, 예정보다 3개월 먼저 소설을 끝냈다. 40~50대 썼던 속도감이 거의 줄지 않은 셈이다. 육신은 지금 늙어가고 있는데 머리는 아직 명료한 걸 확인하면서 하늘에 감사했다. 다음 작품도 건강만 계속 유지해나가면 쓸 수 있겠다 싶다.
 

▲ 오대산 집필실 소나무숲 앞에 선 조정래. 그는 "육신은 늙었지만 정신은 명료해서 다음 작품도 잘 마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 말미에 이태하도 돈의 미망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대학에 도서관을 지으라고 기부 증서를 쓴 뒤 죽은 노인의 자녀들이 이를 무효라고 소송을 걸었는데, 자신이 맡아서 이기게 되면 아이들 유학비를 거뜬히 챙길 수 있지만 도서관은 물거품이 되고, 수임을 거부해  다른 사람이 맡아도 도장이 찍히지 않은 허점을 발견해 결국 마찬가지일 국면에서 고민한다. 이 대목에서 소설을 끝낸 작가는 이태하의 선택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했다.

 

조정래는 3년 후 도래할 김초혜 시인과의 결혼 60주년 ‘회혼식’과 2030년에 맞이할 등단 60주년 ‘회문식’, 이 두 가지 소원이 있다고 했다. 회문식 때는 이미 준비에 들어간,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마지막 소설을 출간할 예정이다. 다시 태어나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의 말.
 

“저부터라도 탐욕을 지배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데 과연 가능한가 하는 걸 되묻곤 합니다. 이 소설에 수십 가지 돈에 얽힌 사례들을 쓰면서 우리 모양이 얼마나 짐승적인 삶인가, 오히려 짐승에 대한 모욕이 아닌가 할 정도로 야비하게 돈에 휘말려 있는 인물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최소한이나마 소설적 구원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종교가 아무리 강조해도 실패했는데 나 또한 실패할 것이지만, 실패가 두려워서 안 쓸 수는 없다, 쓸 때까지 써보자고 쓴 것이 이 소설입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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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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