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정치적 요인 상승분 '30원' 분석
기업 대외채무 1760억달러, 환산손실 눈덩이
포브스 "윤석열, 한국의 GDP 킬러"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환율로 인한 당사의 손익은 더욱 민감해 질 수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포스코가 최근 채권 투자설명서에서 '위험요소'로 내놓은 한 대목이다. 이 회사는 "12월 들어 비상계엄 및 탄핵소추안 표결 등으로 불거진 국내 정치 리스크"를 환율 상승 배경으로 적시했다. 그러면서 달러 등 주요 외화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은 2023년 기준 6542억 원 감소한다고 밝혔다. 이익의 3분의1 가량이 환율에 좌지우지되는 셈인데, 철광석과 석탄 등 원재료가 대부분 수입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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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와 여의도 빌딩들의 모습 [뉴시스] |
지난해 12월 3일 밤 벌어진 전대미문의 황당 계엄 사태는 몇시간만에 종료됐지만 한국 경제에 미치는 피해 규모가 천문학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3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출석해 계엄 선포 이유에 대해 "주권자인 국민에게 호소해 엄정한 감시와 비판을 해달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전시나 사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요건인 계엄을 '호소' 목적으로 저지르고 국민들의 삶에 막대한 짐만 떠안겼다.
포스코 사례에서 보듯 가장 치명적 피해가 환율 상승이다. 지난해 평균 환율은 1320~1390원대였는데 연말 1434원으로 치솟았다. 한때 1470원대까지 급등하기도 했으나 지난 20일(현지시간)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상과 달리 곧바로 고관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최근 그나마 1430원대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탄핵 정국 속에 향후 트럼프 대통령 조치에 따라 언제든 급등할 수 있는 불안한 상황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계엄 사태 이후 환율 상승분 중 30원가량이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계엄이나 총리 탄핵 직후에는 정치적 요인이 50~60원에 이르렀던 것으로 봤다. 경기 상황만 보면 기준금리를 인하할 시기이지만 환율 상승을 이유로 동결했다는 설명이었다. 계엄이 이자 부담을 줄일 기회마저 앗아간 셈이다.
항공업도 환율 상승의 직격탄을 맞는 대표적 업종으로 꼽힌다. 유류비, 항공기 리스료, 정비비, 보험비, 착륙료 등 비용 대부분이 외화로 결제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으로 환율이 10원 오르면 140억 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한국은행 분석대로 계엄 사태 영향이 30원이라면 산술적으로만 420억 원이 직접적 피해다.
고환율은 수출 산업에 긍정적이라는 도식화도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이 급증했고 원자재와 에너지 수입 가격 부담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주요 업종별 협회들과 환율 영향을 기상도로 조사한 결과, 바이오·반도체·배터리·철강·석유화학·정유·디스플레이·섬유패션·식품 등 대부분이 '흐림'으로 나타났다. 조선·자동차·기계산업은 '대체로 맑음'이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는 "고환율 장기화 시 오히려 부품 수입가, 에너지 비용, 해상운임비 상승 등으로 환율 상승의 긍정적 효과가 반감되는 한편, 부품업계 어려움이 가중되고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력 약화로 인한 내수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의 지난해 4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2%가량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7.2% 감소한 2조8222억 원에 그쳤다. 이 회사는 판매보증비 관련 환율 영향을 주된 요인으로 꼽았다. 무상수리 서비스나 리콜 비용 등을 미리 예상해 부채로 반영하는데 환율 상승으로 영업이익을 크게 갉아먹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기업들이 해외에서 자금을 빌려오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에서 부담도 급증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비금융기업의 대외채무액은 2021년 3분기 1389억 달러에서 3년이 지난 지난해 3분기 1761억 달러로 증가했다. 환율이 100원 오르면 17조 원 이상의 부담이 발생한다. 대한항공의 순외화부채는 28억 달러 규모여서 10원만 올라도 280억 원씩 외화평가손실이 생긴다. 현금흐름 피해의 두 배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 결과, 대기업들이 올해 사업계획 수립 시 1300원대 환율을 적용한 경우가 63%에 달했다. 환율에 날벼락을 맞은 격이다.
겉으로 드러난 수치뿐 아니라 심리적 위축 효과도 크다. 지난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이달 전산업 기업심리지수(CBSI)는 전월에 비해 1.4포인트 하락한 85.9였다. 지난해 11월 91.8에서 12월 87.3으로 급락한 이후 계속 추락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100을 웃돌면 경제 전반에 대한 기업 심리가 낙관적, 밑돌면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1%에 그쳐 당초 한국은행 전망치보다 0.4%포인트나 낮았다. 계엄발 악영향이 광범위함을 방증하는 지표다.
해외에서도 우려기 쏟아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한국 경제에 대해 '정치적 충격이 경제적 근심을 더하다'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를 냈다. 앞서 미국의 포브스는 "계엄 사태가 초래한 값비싼 대가는 한국인 5100만 명이 시간을 두고서 분할해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이 한국 GDP 킬러"라는 얘기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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