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경찰 '고령자 운전 제한 검토' 발표…갑론을박 재점화

이민재 / 2019-07-22 15:38:43
정부, 대통령 직속 '고령 운전자 안전대책 협의회' 발족
경찰, "'고령 운전자 조건부 면허' 시행 검토할 것"
"고령층 생활 어렵다" vs "시민 안전 가장 중요"

정부가 '고령자 운전 제한'에 가속 페달을 밟는다. 경찰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 사망사고 비율은 2016년 17.7%에서 지난해 22.3%로 치솟았다. 이에 경찰청은 올해부터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면허갱신과 적성검사 기간을 기존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했으며 고령 운전자 교통안전교육을 신설해 이를 반드시 이수해야만 면허 취득 또는 갱신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10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경찰청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고령자 교통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장윤숙 사무처장을 위원장으로 대한노인회, 대한의사협회 등 21개 기관이 참여하는 고령운전자안전대책협의회를 발족했다. 지난 15일엔 민갑룡 경찰청장이 '고령 운전자 조건부 면허' 시행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고령운전자 안전대책 협의회 발족식'이 열렸다. 사진은 발족식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는 모습 [뉴시스]


당장 고령자 운전 제한이 불러올 '나비 효과'를 우려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동권 침해라는 주장부터, 고령 운송업 종사자들의 경우 생계가 걱정된다는 의견도 등장했다. 반대편에선 고령자의 미숙한 운전이 시민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명이 걸린 사안이니 다소 희생이 있더라도 고령자 운전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령자 운전 제한을 둘러싼 갑론을박을 들여다봤다.

고령 택시 기사는 운전대 놔야 하나

고령 운전 제한은 '불편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당장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주로 고령 택시 기사 등 운송업에 종사하는 고령층이 타격을 받는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국 개인택시 기사 평균연령은 62.2세다. 경찰청이 면허갱신 기간 단축 및 교육 의무화 등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75세 이상 택시 기사는 전국적으로 6409명(전체의 4%)에 달한다. 고령 운전이 제한되면 이들은 생계가 걸려 있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개인택시연합회 측은 지난 17일 와의 통화에서 고령자 운전을 제한하기 전에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개인택시연합회 관계자는 "고령자들의 운전을 제한하기 전에 대책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금을 보장해 주는 등 노후 안정 기반을 마련한다면 고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령 택시 기사들의 생계를 고려할 때 섣부른 제한은 안 된다는 것이다.

농촌, 대중교통 열악…자동차 없으면 발 묶여

고령 운전 제한은 농어촌 지역에 치명적이다. 통계청이 4월 17일 발표한 '2018년 농림어업조사 결과'를 보면 70세 이상 농가 인구는 전국적으로 74만5000명에 달한다. 이는 전체 농가 인구 231만5000명 중 33.2%를 차지하는 비율이다. 고령 운전 제한되면 농촌 거주 인구 3명 중 1명은 운전대를 잡기 어려워진다.

'대중교통 이용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교통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심 지역과 달리 버스 한번 타려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마을이 적지 않다. 전라남도 영암에서 농업에 종사 중인 A 씨는 "자동차 운전을 못 하게 되면 생활이 어려워진다"며 "하루 서너 번 다니는 버스 시간에 모든 것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할머니들은 머리 한번 하려면 6시 반에 첫차를 타고 나가서 9시까지 미용실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가 2시간 파마하고, 1시에 차 시간에 맞춰 돌아와야 한다"고 답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생명'…안전권 최우선 해야

그런데도 적지 않은 시민들은 고령자 운전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령자 생활의 편의 및 이동권보다는 시민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서울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B(27) 씨는 "시민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노인의 이동권은 중요한 가치이지만 시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안전권을 우위에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의 다른 직장인 C(25) 씨는 "시야를 넓혀보면 고령 운전자 자신의 안전 문제이기도 하다"며 "슬프지만, 고령층의 이동권이 제한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고령층이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상태에서 운전하다 사고를 내면 자신도 부상을 당하거나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령 운전 제한을 단순한 이동권 침해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자신을 취업준비생이라고 밝힌 D(27) 씨는 "어린아이가 운전을 못 하게 하는 것을 이동권 침해라고 보지 않는다. 마찬가지다"라고 밝혔다. 신체 능력이 부족해 운전할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일 뿐이니 권리 침해의 관점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면 어떨까요?"…시민들이 내놓은 다양한 대안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의견엔 교집합이 있었다. 대부분 생명과 직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고령자 운전 제한의 필요성은 인정했다. 다만 치밀한 대안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령 택시 기사들의 생존권과 결부되어 있는데도 개인택시연합회는 "전반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내놨고 전남 영암에서 농업에 종사 중인 농업인 A 씨도 "나이가 들면 순발력과 판단력이 떨어져 사고 위험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라며 공감했다.

다양한 대안들이 나왔다. A 씨는 "지역 상황에 맞는 카셰어링 시스템 등을 재정비하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나만 해도 읍내로 나갈 일이 있을 땐 일 보려는 노인분들 태워 드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인터뷰에 응한 B 씨는 "고령 운전자가 운전을 제한받게 되면 약간의 혜택을 주는 방법은 어떤가"라며 "버스비를 30% 감면해줄 수도 있고 현금이나 쿠폰으로 교통비를 지급하는 등 대안이 떠오른다"고 답했다. 직장인 C 씨 역시 "고령 인구를 위한 카풀, 대중교통 이용 방법 개선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라며 고령 인구의 삶의 질에 대해 신경 써야 한다고 답했다.

경찰청은 본격적으로 고령 운전자 제한에 대해 검토할 예정이다. 지난 17일 〈UPI뉴스〉와 통화한 경찰청 관계자는 "해외사례나 전문 연구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 맞는 방안을 찾을 예정"이라고 답했다. 그는 "첨단 안전장치를 부착을 조건으로 한다던가, 시야가 제한되는 야간에만 운전을 제한한다던가, 속도가 높은 고속도로 운전만 제한한다던가 하는 대안들에 대해 고민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향후 고령 운송업 종사자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시행을 앞둔 단계가 아니라 대안 모색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말하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경찰청은 현재 조건부 면허제도, 수시 적성검사 등 제도개선 연구용역을 발주할 계획이다.


KPI뉴스 / 이민재 기자 lmj@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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