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구여순 선생 후손들의 특별한 의령 나들이

손임규 기자 / 2025-07-28 16:01:02
의령군, 구여순 지사 유족 건국훈장 전수식 개최
93세 맏딸 "부, 동정금 보내온 의령사람 못 잊어"

"사람들은 아버지를 '사라진 사람' '위험한 사람'이라 불렀고, 우리는 그 이름을 입 밖에 내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이제는 독립운동가 구여순 이름을 당당히 부를 수 있기에 오늘 아버지의 훈장을 가슴에 품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 오태완 군수가 7월 18일 구여순 지사의 건국훈장을 딸 구철희 여사에게 전달하고 있다. [의령군 제공]

 

경남 의령지역 독립운동가 일정(一丁) 구여순(1896~1946) 선생의 장녀 구철희(93) 씨가 의령군민에게 보내는 '나는 독립군의 딸입니다'라는 제목의 편지 내용이다. 

 

의령군에는 이번 달 18일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독립운동가 구여순 선생의 맏딸을 포함한 14명의 후손이 의병박물관을 방문했다. 구철희 씨가 생전에 고향 의령에서 군수로부터 아버지 건국훈장을 받고 싶다는 뜻을 밝히면서 특별한 나들이가 성사됐다.

 

이날 오태완 군수는 의병박물관 제2전시관에서 유족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전수했다. 정부가 1990년 구여순 선생에 추서한 건국훈장 애국장이 분실된 이후 재신청을 통해 올해 교부됐고, 유족들은 훈장을 고향에 기부하기로 했다. 

 

구철희 씨는 "아버지는 대구형무소에 갇혀 있을 때 의령군민들이 동정금(성금)을 모아 모친에게 전달한 것을 항상 고맙게 생각하셨다"며 "서울과 중국에서 독립운동할 때도 늘 고향을 그리워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의령 군민에게 들려주고 싶다며 A4용지 두 장 분량의 '나는 독립군의 딸입니다' 편지 글을 직접 써왔다. 이날 막내딸 류인정 씨가 대독하는 걸 들으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구철희 씨가 노구를 이끌고 의령을 방문한 데는 오태완 군수의 영향이 컸다. 한사코 의령군수에게 건국훈장을 받겠다는 유족들에게는 이유가 있었다. 

 

구 씨의 둘째 사위 황현태 씨는 "오태완 군수의 2024년 신년사 기사를 온 가족이 봤다. 100년 전 구여순 선생을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 구여순 독립운동지사 [의령군 제공]

 

오 군수는 당시 신년사에서 "1924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재판받은 구여순 선생은 '독립사상을 지금도 품고 있느냐'는 일제 검사의 심문에 '조선 독립이 된다면 생명까지 바칠 용의가 있다'라고 했다"며 "의령군민에게는 100년 전부터 '용기'가 자라나 있었다. 용기와 헌신으로 더 살기 좋은 의령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의병박물관 제2전시관에 설치된 '구여순 주제관'도 유족들을 설레게 했다. 오태완 군수의 공약사업인 의병박물관 제2전시관은 항일 의병과 독립운동 인물까지 집중 조명하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구여순의 증손녀 류인영(16) 양은 "할아버지가 애써주신 덕분에 지금 우리가 편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주제관에서 역사를 훑어보니 업적이 놀랍고 공부가 된다"고 말했다. 

 

오태완 군수는 "인물의 고장 의령에 구여순 선생은 또 하나의 역사이자 의령 사람의 긍지"라며 "의령 곳곳에 선열들의 독립 만세의 의지가 서려 있다. 항일의병의 독립만세운동 활약을 기억할 만한 공간과 장치를 마련하는 고민을 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구여순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의령지역 만세운동을 주도,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옥 후에는 중국으로 망명해 의열단에 가입, 무장 항일투쟁에 참여했다. 이후 고려구국동지회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이어갔고 광복을 맞아 김구 선생과 더불어 신탁통치 반대와 친일파 청산을 위해 애쓰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광복 이듬해 사망했다.


KPI뉴스 / 손임규 기자 kyu3009@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손임규 기자

손임규 / 전국부 기자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