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받은 책으로 마음대로 하는 '봉이 김선달'"
"책이 팬시상품의 들러리, 미끼를 넘어 짜장면 단무지가 되고 있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가 새로운 콘셉트의 오프라인서점으로 주목받는 '아크앤북'을 향해 던진 일갈이다.
책이 서점의 메인은커녕 사이드메뉴도 아닌 기본제공 반찬처럼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안 대표가 책을 '단무지'에 비유한 이유는 아크앤북에서 구매하지 않은 책도 서점 내 식당에서 자유롭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출판업계 관계자들은 진열대와 식당을 오가며 손상된 책들이 다시 출판사로 반품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한다. 이에 따라 겉으로 '혁신'을 외치는 서점이 알고보면 수익만 챙기고 비용은 출판사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아크앤북은 공간기획 서비스업체 오티디코퍼레이션(대표 손창현)이 11월 16일 서울시 중구 부영을지빌딩 지하 1층에 오픈한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팅 서점이다. 약 260평(859㎡) 규모로 3만여권의 장서와 3000여종, 7000개 이상의 브랜드 제품을 판매한다.
도서분야별로 책을 분류한 것이 아니라 일상, 주말, 스타일, 영감 등 네가지 테마로 도서를 분류해 화제를 모았다. 뿐만 아니라 팬시상품, 생활용품 등 각종 제품을 주제별로 모아 진열했다. 독자들이 새로운 삶의 양식과 패턴을 발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아크앤북은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팅 서점 '츠타야'를 국내에 거의 그대로 들여온 모델이다. 일본 서점업계의 불황 속에서도 츠타야는 유독 승승장구했다. 2012년에는 일본 최대 서점 체인 '기노쿠니야'를 제치고 연간 서적 판매고 1위에 올랐다.
현재는 매장이 1400여곳, 연매출은 2조원에 달한다. 츠타야는 오프라인서점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고 평가받는다.
손창현 오티디코퍼레이션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도쿄에서는 츠타야가 열광받는데 서울에는 왜 그런 장소가 없을까 하는 호기심에 아크앤북을 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아크앤북을 향한 출판계 관계자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안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 '힙'하다는 서점은 책 고유의 기능과는 다른 방식으로 책을 이용해서 영업을 한다"며 "그럴듯한 가게로 부동산 가치를 올려서 권리금 챙기는 게 흔하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책을 쓰고 만드느라 매일의 삶을 바치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크앤북 내 여러 식당이 서점과 경계없이 연결되어있는 점을 출판계 관계자들은 비판한다.
아크앤북에는 초밥집 '스스시시', 태국음식점 '타따블', 피자전문점 '운다피자', 대만음식점 '샤오짠' 등 유명 맛집들이 입점했으며, 각 매장들은 하나의 서가처럼 구분돼 오픈형 공간으로 구성됐다.
서점에 비치된 책들은 구입하지 않아도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며 읽을 수 있다. 아크앤북 측은 "읽을거리, 볼거리와 더불어 먹거리까지 삼박자를 모두 갖춘 완벽한 '리딩테인먼트'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출판계 관계자들은 식당에 들고간 책에 음식 이물질이 묻어 더러워질 수 있으며, 그렇게 오염된 책은 판매되지 않고 출판사로 반품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하응백 휴먼앤북스출판사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책이 훼손된 경우 누가 책임지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현실적으로는 출판사가 감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보다도 위탁받은 책으로 그렇게 마음대로 해도 되느냐는 도덕적 문제도 있다"며 "(아크앤북은) 봉이 김선달이다"고 덧붙였다.
국내 대형서점들에 진열된 책 중 다수는 출판사로부터 위탁받은 물건이다. '위탁'이란 서점이 책을 다량 들여온 뒤 실제로 판매된 수량에 대해서만 대금을 지불하고, 나머지 물량은 출판사에 되돌려보내는 방식이다.
국내 출판사와 서점들은 매대에 책 여러 권을 진열하는 것이 홍보효과가 큰 점 등을 고려해 이러한 관행을 유지해왔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17 출판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출판사의 오프라인서점 위탁공급율은 69%였고, 평균반품률은 19%에 달했다.
이러한 위탁판매 구조의 문제가 불거진 것은 2015년 말 교보문고가 광화문점에 대형 테이블을 설치하는 등 '서점의 도서관화'가 이뤄지면서다. 서점 환경이 변하면서 책 여러 권을 테이블에 쌓아두고 오랜시간 머물거나, 도서관 열람실처럼 활용하는 문화가 확산됐다.
그러면서 손상되는 책이 더 많아졌고 출판사의 반품 비용 부담은 더 늘어났다. 출판사로 되돌아간 책들은 대부분 파쇄된다. 출판업계 5위권의 기업들의 연간 반품도서 처리비용은 10억원대로 알려졌다.

서점이 전통적인 모습에서 탈피하면서 독자들의 호응을 얻은 것은 분명하다. 출판 불황 속에서도 오프라인서점 1위 교보문고는 최근 3년간 매출이 꾸준히 증가했다. 매장 숫자도 2014년 15곳에서 올해 34곳으로 대폭 늘어났다.
반면 출판사들의 실적은 연일 하락세다. 2017년 68개 주요 출판사의 매출은 전년 대비 1.4% 줄었고, 영업이익은 20% 감소했다. 서가가 있던 자리에 테이블과 의자, 팬시상품 판매대 등이 생기면서 책 공급량이 줄고, 책 이외의 상품 판매 비중이 높아진 탓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점에서 책은 '미끼상품'이 돼가고 있다.
김개미 시인은 "책 때문에 음식은 팔리겠지만, 음식 때문에 책이 팔리지는 않는다"며 "저자 입장에서는 누군가 제 책을 무료로 본다는 생각을 하면 한숨이 나온다"고 토로했다.
임경선 작가도 자신의 트위터에 "이건 츠타야식도 아니다"며 "아크앤북이 북카페식으로 운영할 거면 책을 다 사들이고 반품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오프라인 서점조차 아크앤북의 행보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서점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점에 커피를 못 가지고 들어오게 했는데, 문화가 바뀌면서 지금은 그렇게 하기 힘들어졌다"면서도 "식당의 경우에는 음식 냄새가 책에 밸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편 아크앤북을 운영하는 오티디코퍼레이션 관계자는 "다른 서점과 마찬가지로 책을 위탁으로 들여오는 비중이 높지만, 한달 동안 책이 오염되는 사례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오염이 발생한다면 오티디코퍼레이션에서 해당 책을 매입하는 형태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면서도 "복합문화공간의 개념을 추구하고 있어 판매용과 열람용 책을 별도로 구분하지는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오티디코퍼레이션은 서울시 노들섬 개발프로젝트에 참여해 2019년 9월 아크앤북 2호점도 오픈할 계획이다.
KPI뉴스 / 남경식 기자 ngs@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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