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주거·배우자 직장까지 고민…"정착 지원책 함께 설계해야"
지역 균형발전 취지 살리되 이전 직원의 삶도 세심하게 살펴야
기업은행에 다니는 차윤석(가명·33세·남성) 씨는 최근 3년간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기업은행 지방 이전 가능성'이 빌미가 됐다. 여자친구는 "지방으로 가면 장거리 연애를 해야 하는데 자신 없다"며 이별을 고했다.
이전 여부도, 이전지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막연한 가능성이 두 사람의 미래 계획에 불안 요인이 된 것이다. 차 씨는 "지방 이전이 이별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라면서도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닌데 이런 문제로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니 허탈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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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챗GPT 생성 |
금융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논의가 2030세대 직원들의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다. 직장의 소재지는 단순한 출퇴근 문제가 아니다. 연인이나 배우자의 직장, 주거와 육아, 부모 부양 등 삶의 여러 조건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산업은행에 다니는 박민우(가명·31) 씨도 지난달 비슷한 일을 겪었다. 지인이 주선한 소개팅이 만남 전에 무산됐다. 박 씨가 전해 들은 거절 이유는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가능성이었다.
박 씨는 "실제로 이전할지, 간다면 언제 갈지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이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만남 자체가 성사되지 않았다"며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장래 거주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의 이전은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 정부는 올해 4분기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겨 지역 성장 기반을 넓히고 국가 균형발전을 촉진하겠다는 취지다.
지역의 유치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부산에서는 산업은행을 비롯한 금융공공기관 이전을 요구하고 있고, 광주·전남은 기업은행 나주 유치에 나섰다. 대구와 세종 등에서도 금융기관 유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법적 절차도 남아 있다. 산업은행법과 중소기업은행법은 두 은행의 본점을 서울에 두도록 규정하고 있어 실제 지방 이전을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 역시 본부 사무소를 서울에 두도록 한 관련 법률의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느끼는 부담의 핵심은 당장의 이전보다 '결정되지 않은 미래'에 가깝다. 어느 기관이 어느 지역으로 이동할지, 이전 대상 인원은 얼마나 될지, 실제 이전 시점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생활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 금융공공기관 직원은 "은행원은 순환근무로 지방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입사한다"면서도 "일정 기간 지점에서 근무하는 것과 본점이 이전해 생활 기반을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결혼을 생각하는 상대에게 자신의 직장 때문에 함께 지방으로 가자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며 "특히 상대방도 수도권에 직장이 있다면 어느 한쪽이 경력을 포기해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에 양질의 일자리와 성장 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국가적 과제다. 이전 기관과 지역 산업의 연계, 지역인재 채용 확대 등 기대되는 효과도 크다.
다만 정책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려면 이전 기관 직원들이 새로운 지역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여건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우자 취업 지원, 주거와 교육 대책, 단계적 이전과 유연근무, 수도권·이전 지역 간 교통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역 균형발전과 직원의 삶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며 "이전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대상 기관과 지역을 조속히 정하고, 직원들이 예측 가능한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와 정착 대책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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