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죽음으로 기록한 대선개입, '더블랙'

오다인 / 2018-10-01 14:50:19
이마리오 감독, 이남종 죽음 접하고 다큐 제작
사실의 힘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꼼꼼하게 기록

2013년의 마지막 날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날 거기서 누군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분신했다는 사실, 그 메시지가 국민을 향한 것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이남종이었다는 사실은 더욱 그렇다. 평범한 이의 극적인 죽음은 잠시 뉴스가 됐을 뿐 이내 잊혔다.
 

▲ 지난 9월28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에서 영화 '더블랙'을 만든 이마리오 감독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처음에는 모두에게 잊힌 이남종의 죽음을 알리고 싶다는 바람이 컸습니다."

 

이마리오(48) 감독은 이남종의 죽음을 기억하는 소수이자 이를 추적해 기록한 이다. 이남종 분신 당시 강릉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던 그는 속보를 통해 이남종이라는 사람과 그의 죽음에 대해 궁금증을 품게 됐다. "사건 발생 이후 이남종에 대해 악플이 달리는 걸 보고 '이건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부터 이남종이라는 사람에 대해 자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고 이남종(당시 41세)은 '박근혜 사퇴'와 '특검 실시'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2013년 12월31일 오후 5시30분께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서 분신했다.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고, 이튿날 오전 8시30분께 사망했다. 그는 가족과 국민에게 각각 유서를 남겼다. 국민에게 남긴 유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여러분, 보이지 않으나 체감하는 공포와 결핍을 제가 가져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이남종의 죽음을 다큐멘터리로 남겨야겠다고 결심한 건 이 감독이 다큐멘터리 제작 일선을 떠난 지 6년 만의 일이었다. 2014년부터 4년의 제작 기간을 거쳐 올해 개봉했으니 10년 만의 작품인 셈이다. 이남종의 죽음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더블랙'은 우연이자 운명처럼 만들어졌다. 앞서 이 감독은 2001년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2003년 '미친 시간', 2005년 옴니버스 프로젝트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2008년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을 제작했다.
 

▲ 지난 9월28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에서 이마리오 감독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이마리오 감독은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영화를 배웠다. 영화 동아리에서 영화의 개념을 접했고, 전역 이후에는 아예 영화를 하기로 마음 먹고 대학을 그만뒀다. 1998년부터는 서울영상집단에 들어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배우기 시작했다. 최근 DMZ국제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홍영숙 감독이 그의 사수 역할을 했다. 다큐멘터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욕구가 컸고, 이를 이루는 데 다큐라는 장르가 힘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더블랙'은 이남종의 죽음을 기리는 영화이면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을 꼼꼼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더블랙'이라는 영화명 역시 신분과 직업을 숨기고 '정보 활동'을 하는 국정원 요원을 '블랙(black) 요원'이라고 부르는 데서 따왔다. 이남종이라는 평범한 사람이 분신 자살을 결심하기까지 당시 정권 하에서 어떤 불법적인 활동이 자행됐는가를 '더블랙'은 오로지 '사실'의 힘으로 밀고 나간다.

"영화 제작 초기에는 이남종의 죽음을 전달하고자 하는 바람이 컸습니다. 영화를 완성한 후에는 관련자 처벌이 안 되는 상황들에 대해 짚고 싶었습니다. 문체부 블랙리스트도 마찬가지고요. 정권이 바뀌고 개혁 티에프(TF)에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는 등 뭔가 많이 바뀐 것 같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실제 바뀐 건 거의 없습니다. 현 정권이 끝나고 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고 봐요. 그래서 기록이 돼야 합니다. '단순히 댓글 몇 개 달렸던 일' 정도로 기억돼서는 안 되는 것이죠."
 

▲ 지난 9월28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에서 이마리오 감독이 영화 '더블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이 감독은 과거의 잘못들을 기록함으로써 기억하고, 기억함으로써 반복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아울러 현 정권에서 관련자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처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라도 관객들이 '더블랙'을 많이 찾아주면 좋겠어요. 설사 그렇지 못하더라도 기록적 가치를 지니는 다큐멘터리로서의 의미와 역할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관객을 원하면서도 그의 영화가 관객을 쉽사리 불러들이기 어렵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본다는 건 현재 나의 삶보다 힘든 무언가를 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외면하기도 했던 것들을 직시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죠. 현재의 삶들이 힘들다 보니 이런 영화를 볼 만한 상황이 되지 않습니다. 너무 힘든 한편으로 죄책감도 들고…. 그렇게 다들 삶을 이어가는 것이죠.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시를 해야 하며, 그래야만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마리오 감독의 예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개봉 이후 '더블랙'을 본 관객 수는 아직 많지 않다. 그러나 '더블랙'을 본 관객 대부분은 "다큐멘터리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이 깨졌다", "재미있다" 등의 소감을 밝히고 있다. 지난 9월22일 서울 종로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 직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은 "무슨 영화인지 모르고 봤는데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며 "그해 느꼈던 감정들이 담긴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난 9월28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이마리오 감독 [문재원 기자]

 

이 감독은 "대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이미 끝난 사건'이고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관련 사실들이 한 번에 밝혀진 게 아니라 띄엄띄엄 하나씩 드러나다보니 막상 영화를 보면 몰랐던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관객들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배경이다.

'더블랙'은 1시간8분 동안 총 5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그 중 배우 김중기가 검사로 분해 검찰 특별수사팀의 사건 당시 내막을 들려주는 3부는 영화의 백미로 꼽힌다. 이마리오 감독이 '더블랙' 제작을 위해 치밀하게 수집한 실제 수사팀 CCTV 영상을 비롯해 김하영 국정원 요원이 심리전단 단장과 주고받은 문자 등 적나라한 사실을 보여주며 주목도를 높인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검찰총장까지 퇴임시키는 걸 보면서 많은 이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댓글 하나 다는 것도 조심스러웠던 상황이었습니다. 검사도 잘리는데 우리 같은 민간인들이 느끼는 공포심은 엄청났죠. 그걸 이남종이라는 사람은 특히 더 민감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당시의 사회적 공포심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면 이남종의 죽음도 잘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죽음이기에 이남종의 죽음에 더 관심이 갔다는 이 감독. "왜 유독 그처럼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그랬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다큐멘터리 '더블랙'이 이남종의 뒤에 남았다.

 

KPI뉴스 / 오다인 기자 odi@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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