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이 바다에서 말뚝이 되어 도심으로 들어와
그 앞에서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울게 되는 대혼란
현실 계엄 사태 연상케 하며 우리 시대의 윤리 제시
'말뚝들의 머리는 털 오라기 하나 없이 반지르르했고 얼굴도 방금 세수한 것처럼 매끈했다. 그것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뻘밭에 거꾸로 파묻혀 있었다. 공기는 물론 해수와도 접촉한 적 없는 피부가 일체의 부패 없이 미라가 돼 있었다. …안색이 어둡고 얼굴이 전체적으로 부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방금 눈 감고 잠든 사람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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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동네소설상에 이어 한겨레문학상까지 거듭 수상한 소설가 김홍. 그의 소설들은 엉뚱하고 기발한 설정으로 유머를 문체 삼아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한겨레출판 제공] |
서해안에 말뚝들이 밀려왔다. 단순한 말뚝이 아니라 죽은 이들이 뻘밭에 거꾸로 박혀 있다가 미라처럼 시랍(屍蠟)화 된 형상이었다. 이 말뚝들은 점차 내륙으로 진출한다. '장'의 아파트 거실에도 등장하고,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을 둘러싸기도 한다. 이 말뚝에 노출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눈물을 흘린다. 광화문 광장 말뚝들 곁으로 사람들은 울기 위해서 흘러들었고, 사람들이 모여서 우는 게 정부에겐 비상사태였다.
올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김홍의 장편 '말뚝들'(한겨레출판)은 우화 같은 이야기를 씁쓸한 유머로 활달하게 전개하면서 지금 이곳의 현실을 핍진하게 반영한다. 말뚝에만 노출되면 모두 울게 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현실의 12·3 비상계엄을 방불케 하는 소설 속 비상계엄은 어떻게 해제될까. 산 것도 아니고 죽은 존재만으로 치부하기에도 어정쩡한 말뚝들은 왜 도심에 나타나 사람들을 울게 만드는가.
동아일보 신춘문예(2017)에 당선되면서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김홍은 근년 들어서는 해마다 소설집과 장편을 번갈아 내는 가운데 문학동네소설상(2023)에 이어 굵직한 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하면서 화제의 작가로 정진하는 중이다. 그가 펴낸 소설집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 '여기서 울지 마세요', 장편 '엉엉'의 표제만 이어 붙여도 그대로 '말뚝들'의 울음과 눈물이다. 우리는 죽어 말뚝이 되어 당신을 찾아갈 테니 여기서 엉엉 울지 마시라.
-소설들을 공통으로 관류하는 울음은 어떤 의미인가.
"현실에서 잘 우는 편이다. 의도를 한 건 아닌데 저도 모르게 자꾸 우는 사람에 대해 쓰게 된다. 저에게 눈물은 자동적으로 나오는 반응이다. 세상의 불합리나 부조리에 맞섰을 때 눈물이 툭 흐르는 건 자신이 조절할 수도 없는, 진솔하고 정제되지 않는 반응이다. 거짓으로 울지 않는 한, 우는 사람들은 무장해제된 상태인 것 같다. 누군가의 눈물은 사람에 대해 판단하는 하나의 실마리이다. '엉엉'에서는 한 사람이 운다. 한 사람이 울어서 계속 비가 많이 내리게 되고, 그만 울고 비를 그치게 하라고 위원회가 와서 협박을 하는 장면이 있다. '말뚝들'에 와서는 혼자 우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운다. 혼자 슬퍼하고 고민하며 울던 울음이 확산된 셈이다."
-말뚝 앞에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눈물을 흘리게 만든 배경은?
"이 말뚝들은 사회에서 이름도 없고 권리도 없는 죽은 사람으로, 자기 자리도 없다. 그런 존재들이 돌연하게 나타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서 상상을 해본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대화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데, 마치 빚쟁이처럼 자신들을 기억하라고 장승처럼 버티는 존재가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전작 '엉엉' '프라이스 킹!!!'과 함께 이번 소설을 '위원회 3부작'으로 명명했다. 위원회란 어떤 존재인가.
"이 세상에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말뚝들'을 쓰는 중간에 갑자기 '계엄 사태'가 발생했듯, 뉴스를 보면 정말 엉뚱한 일들이 갑자기 생겨나지 않나. 세상을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좀처럼 알 수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어떤 위원회라는 존재가 뒤에서 그런 엉뚱함들을 조정하지 않나 싶었다. 이 세상의 알 수 없는 원리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런 의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선 과정이 '위원회 3부작'이다. "
-이제는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됐나?
"이 장편에 이르러 나름의 정리된 대답을 할 수 있었던 같다. 전작들에서는 조금 더 냉소가 많고 비관적이고 슬픈 게 많았다면, 이번에는 그 슬픔들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모색했다. 결국 잊혀진 사람들을 계속 기억하고 서로에게 빚진 것을 항상 떠올리면서 연대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어차피 세상을 우리가 예측할 수도 없고, 재난과 사고들은 계속 일어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결국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 같다."
울음이 관류하는 소설이지만, 정작 읽는 내내 헛웃음을 베어 물게 되는 건 김홍 특유의 유머 때문이다. '유머가 문체임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김홍의 소설은 내내 현란하고 엉뚱한 설정과 대사로 독자들을 끌어당기면서도 결과적으로 현실을 새롭게 돌아보게 만든다.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에 앞서 일제히 '나루토 춤'을 추는가 하면, 도박에 빠져들었다가 마카오 수도원에 들어간 절친에 대한 '장'의 이런 신랄한 독설에도 웃을 수밖에 없다.
'신은 존재할 가능성이 적고 있더라도 믿을 만한 녀석이 아니며, 마주치면 엎드려 빌기보다는 삥이라도 뜯는 편이 낫다는 게 장의 지론이었다. 특히 삥을 뜯는 게 중요했다. 제대로 된 신이라면 주머니 사정이 넉넉할 게 틀림없고, 체면이 있어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도 힘들며, 속성상 보복보다는 용서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유머가 울음과 공존한다.
"개그맨처럼 누구를 웃기려고 작정하고 쓰는 건 아니다. 제가 쓸 때 스스로 재미있어야 잘 써지고 흥이 난다. 소설을 집필할 때 약간 키득키득 웃으면서 쓸 수 있는 것이 통하면 독자들도 웃게 되는 것 같다. 웃으면서도 쓸쓸한 여운이 남는 그런 흐름으로 독자들이 읽기를 원하는데, 결국 이야기 전체가 잘 구성돼야 웃기기도 하고 슬픔도 배어 나오는 것 같다."
-12·3 계엄 사태가 연상되는, 현실과 나란히 달리는 소설이다.
"바다에서 죽었던 것들이 밀려 오니 뭔가 행정적인 조치들이 있어야 되는데, 집필 과정에서 실제로 계엄이 터져버리니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현실이 더 압도적이었다. 그 상태에서 판단하고 해석하고 비유하기보다, 그 현실 자체에 올라타는 기분으로 집필을 이어갔다."
| ▲ 야구를 좋아하는 김홍은 "이번에 던진 공도 아주 멀리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으면 좋겠다"면서 "지난해 작고한 폴 오스터처럼 죽기 직전까지 소설을 쓰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한다. [한겨레출판 제공] |
김홍은 소설을 시작하면서 '인류의 전체를 헤아려보면 영혼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폴란드 시인 헤르베르트(1924~1998)의 시를 제사(題辭)로 앞세웠다. 이 영혼은, 앞서 인용한 신에 대한 냉소적인 표현과 상반될 뿐 아니라 사소한 욕망에 영혼을 파는 소설 속 인물을 평가하면서 '따져보면 영혼이란 건 대표적으로 과대 계상된 자산'이며 '분식회계의 첫걸음'이라는 냉소적 태도와도 동떨어져 보인다.
-영혼에 부여한 의미는?
"사실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이 항상 존재하는데 그 중에는 영성적인 힘을 지닌 존재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 종교에 비추어 생각할 수도 있고, 종교가 없는 사람도 자신이 지닌 신념에 비춰서 생각할 수 있다. 우리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게 하는 어떤 가치나 신념이 영혼에 가깝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말뚝들이 영혼을 가졌는지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자신의 과대 계상되지 않은 영혼을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아가는 과정, 냉소적인 태도를 버리고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과정에 의미를 부여했다."
제철소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50만 원을 빌려주었고, 그 노동자 '테믈린'이 카드뮴 중독으로 사망한 후 바다에서 '말뚝'이 되어 '장'의 명함을 입속에 머금고 그의 거실까지 진출한다. 말뚝을 보면서 하염없이 울다가 방에 들어가 막간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나와 우는 장면들은 웃기면서도 비감하다. 소설 속 사람들은 과연 말미에 이르러 '울음 계엄령'에서 벗어나 '합당한 애도에서 비롯된 슬픔'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위원회 3부작'이 도달한 잠정 결론.
'큰 빚이 큰 부자를 만드는 진리는 언제나 통한다. 하지만 우리의 빚은 저들의 것과 다르다.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가난하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으로 언젠가 세상을 설득할 것이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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