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새긴 암각화는 수렵 채집 신석기 시대 작품 분명"
"신성하게 여긴 공간에 집중적으로 겹쳐 새긴 것이 특징"
"수십 년 침수…이런 식이면 정말 심각한 결과 생길 수도"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아우르는 '반구천의 암각화'가 지난달 12일(현지 시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일주일 후, 폭우에 두 암각화 중 반구대 암각화가 물에 잠겼다. 반구대 암각화 침수는 1965년 인근에 사연댐이 만들어진 후 매년 반복된 고질적인 문제다.
KPI뉴스는 침수를 비롯한 반구대 암각화 관련 쟁점에 대해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명예교수에게 물었다. 전 교수는 반구대·천전리 암각화를 30년 넘게 연구한 선사 미술 전문가이자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의 권위자로 꼽힌다.
인터뷰는 지난 11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전 교수 개인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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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명예교수가 11일 경기도 고양시 연구실에서 K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
ㅡ반구대 암각화 조성 목적과 용도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수렵 채집 사회 사람들이 제의용으로 만든 게 확실하다. 신성한 공간에서 신과 만나려 한 사람들이 남긴 것으로 봐야 한다. 사냥 성공을 기원하던 주술 행위의 결과이기도 하다.
반구대 암각화가 사냥 교육용 자료였다는 주장도 있는데, 잘못된 해석이다. 바위에 그림을 그려 사냥을 가르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선사 미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나오는 주장이다.
암각화는 서로 다른 세대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동일한 공간에서 그리고 또 그려서 나온 결과물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적어도 3000년, 길게는 4000~5000년 동안 작업이 이어진 것으로 본다. 이런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치 한 번에 그려진 것처럼, 완성된 하나의 화면으로만 보기 때문에 '교육용 자료 아니냐'는 잘못된 주장을 하는 것이다."
ㅡ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의 거리는 2km 정도에 불과하다. 물에 잠겨 아직 발견되지 않은 또 다른 암각화가 그 일대에 존재할 가능성은 없나.
"더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많지만, 내가 조사한 바로는 그 가능성은 별로 없다. 두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는 형태가 특별하다. 사람들이 물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가장 신성성이 높고 그림을 새겨 가장 잘 보존할 수 있는 곳을 찾은 끝에 두 장소를 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대에서 두 곳과 동일한 지형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
ㅡ반구대 암각화 조성 시기도 논란이다. 입시에서 이와 관련해 논란이 벌어진 적도 있다.
"청동기 시대론자가 여전히 있지만, 학계에서는 전반적으로 신석기 시대로 결론이 나고 있다. 특히 고래를 새긴 암각화는 여전히 수렵 채집에 의존하던 신석기 시대 작품이 분명하다.
농경이 일반화되는 청동기 사회에서는 식량을 얻기 위해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거대 동물을 사냥할 이유가 별로 없다. 신석기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바다의 고래, 육지의 매머드 같은 거대 동물을 새긴 그림은 신석기 시대 작품으로 봐야 한다."
ㅡ다른 나라 암각화와 구분되는 반구대 암각화의 특징은 무엇인가.
"다른 나라 암각화 유적은 넓은 범위에 있는 수백 개, 심지어 수만 개 바위에 개별적으로 새겨진 경우가 많다. 반구대 암각화는 하나의 커다란 바위와 그 주변 바위 몇 개에 집중적으로 겹쳐 새긴 것이 특징이다. 천전리 암각화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신성하게 여긴 공간에 집중해 오랜 시간 동안 서로 다른 기법으로 여러 대상을 새긴 사례는 다른 나라에서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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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명예교수. [이상훈 선임기자] |
ㅡ반구대 암각화 하면 고래 그림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다른 나라 암각화의 고래 그림과 어떻게 다른가.
"고래 그림이 있는 암각화는 노르웨이,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에도 있다. 고래의 기본적 형상만 크게 새겨 '저게 고래구나'라는 걸 알 수 있는 정도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귀신고래, 혹등고래 등 6종류의 고래, 총 57마리가 새겨져 있다. 고래 종류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정확히 표현했다. 고래와 밀접한 생활을 하면서 고래의 습성, 새끼를 돌보는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관찰한 경험을 바탕으로 바위에 새겼다고 볼 수 있다."
ㅡ반구대 암각화를 오래 연구한 학자로서 세계유산 등재 소식, 그럼에도 여전히 침수되는 유적을 접하며 느끼는 바가 남다를 것 같다.
"사연댐이 만들어진 후 수십 년 동안 반구대 암각화는 매년 한 달 남짓 침수됐다. 1993년 내가 처음으로 현장 조사를 했을 때는 상당한 거리에서도 유적이 잘 보였는데, 지금은 코앞까지 가야 보일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근래 기후 변화로 폭우가 잦아 더 걱정이다.
이런 식으로 몇 년 더 가면 정말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훼손이 심할 경우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목록에서 제외하고 멸실 유산으로 재지정하기도 한다.
지난 1일 울산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주민 토론회)에서 침수 문제 해결을 위해 사연댐 해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젠 그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사연댐 문제는 시민들이 마실 물과 연결된 사안인 만큼 정부와 지자체와 시민이 협의해 식수 문제와 침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유산 활용 방안이라며 '반구대에 건너가 직접 볼 수 있도록 다리 설치' 주장까지 나오던데, 그런 식으로 하면 등재가 취소될 수도 있다. 유적을 훼손하지 않는 디지털 방식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아울러 암각화를 비롯한 선사 미술 연구 시스템을 구축하고 연구자를 양성해야 한다. 지금은 이쪽 분야 연구자 찾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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