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소유물' 부모의 뒤틀린 인식이 가족 비극 부른다

장기현 / 2019-05-22 14:07:37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5월에만 3건 발생
'동반자살'·'생활고' 등 근본적 원인 될 수 없어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비극으로 치환하면 안돼"

지난 20일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일가족 3명이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아버지 A(50) 씨와 어머니 B(47) 씨, 딸 C(17) 양이 안방에 나란히 누워 숨져있는 것을 아들 D(15)군이 발견해 신고했다. 경찰은 A 씨가 아내와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 지난 20일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된 경기 의정부시의 아파트 [뉴시스]

이처럼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을 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앞서 지난 7일 김포시 구래동에서 10살 남자아이가 연탄가스에 중독돼 숨졌다. 그의 어머니는 아파트 다용도실 완강기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또 어린이날인 5일에도 시흥시 은행동에서 두 자녀와 함께 30대 부부가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렇게 가정의 달인 5월에만 언론 보도로 알려진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이 3건이나 된다. '동반 자살'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되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경제적 어려움이 발생 원인으로 지목된다. 모두 사실이지만, 이는 사회적·구조적 문제는 뒤로 숨기고 개인의 비극을 전면으로 내세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은 가장 극단적인 아동학대

자녀 살해 범죄는 매년 얼마나 발생했는지에 관한 공식 통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를 해치는 존속 살해와 달리 자녀 살해는 일반 살인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2014년 서울경찰청 소속 정성국 박사 등이 경찰 수사 자료를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자녀 살해는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총 230건으로 추정될 뿐이다. 이 중 부모가 자살한 비율은 44.4%로 나타났다.

장덕현 세이브더칠드런 미디어팀장은 "'자녀 살해 후 부모 자살' 사건의 경우 통계는 따로 나오지 않고 있다"며 "의정부 사건의 경우도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동학대 통계에도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사건의 희생자인 딸에게서 나온 방어흔(가해자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생긴 상처)으로 볼 때, 딸의 의사에 반해서 이뤄진 것"이라며 "이는 부모와 자녀의 '동반 자살'이 아닌 명백한 '살인 행위'"라고 강조했다.

학계에서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로 간주한다. 같은 이유로 국제아동인권보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2014년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 '동반 자살', '일가족 집단 자살' 등의 표현 사용을 중단할 것을 언론에 요청하기도 했다.

자녀를 소유물로 보는 뒤틀린 인식이 원인

대다수의 일가족 사망사건은 '생활고'를 사건의 원인으로 분석한다. 실제로 김포 사건의 경우 남편과 별거한 뒤 생활고에 시달린 엄마가, 시흥 사건은 개인 회생 후에도 경제 사정이 나아지지 않은 아빠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촉발 요인일 뿐, 사회적·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경제적 문제로 돌리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전문가들은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을 두고 자녀를 소유물로 바라보는 뒤틀린 인식이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픽사베이]

전문가들은 이런 사건을 두고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바라보는 우리나라만의 뒤틀린 인식이 배경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김영심 숭실사이버대 아동학과 교수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많지만 모두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생활고와 같은 경제적 측면을 부각하는 것은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비극으로 치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서양의 경우 우리처럼 가족관계를 수직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나의 인격체로 대한다"고 비교했다. 실제로 서양에서는 자녀를 살해한 뒤 부모가 자살한 사건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고, 용어 또한 '자녀 살해 후 자살'로 표현하는 등 우리나라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자녀'에 대한 인식개선 시급…"소유물 아냐"

한국 정부가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6조에 따르면 '모든 아동은 생명에 관한 고유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자녀는 부모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이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식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장 팀장은 "아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나와 대등한 인격체, 똑같은 사람으로 대하는 사회적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며 "언론에 동반 자살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고 요청한 것, 아동권리 제고와 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것 모두 인식개선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도 "이런 범행을 저지르는 부모들은 '자식의 앞날은 누가 책임지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며 "우선 독립된 아이를 소유물로 보지 않는 자녀에 대한 개념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이와 부모에 대한 교육, 특히 부모 교육을 통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어 교육과정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모가 자녀를 죽일 권리는 없을 뿐더러 남겨진 자녀가 무조건 생존 불가능의 상태에 빠지는 것도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 교수는 "긴급 지원 서비스 등이 저변에 뿌리 깊게 퍼지지 못한 것이 문제"라며 "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현재의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쓰일 수만 있어도 이 같은 극한 상황까지 가진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KPI뉴스 / 장기현 기자 jk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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