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덕만 "전광훈, 한국 기독교의 사채업자 같은 존재"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 2025-07-31 14:33:01
현직 목사이자 신학자…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원장
"전광훈 현상의 연원, 근본주의+반공주의 기독교"
"4·3사건, 한국 개신교가 연루된 최대의 범죄 기록"
"개신교, 광장에서 골방으로 물러나 자기 성찰해야"

요즘 개신교 하면 '전광훈', '극우'부터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중심으로 한 극단 세력의 폐해가 쌓이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개신교 극우 문제를 역사적으로 살핀 책 '전광훈 현상의 기원'이 이달 출간됐다. KPI뉴스는 현직 목사이자 신학자인 저자 배덕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원장과 만나 현 상황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인터뷰는 30일 서울 마포구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 배덕만 목사가 30일 서울 마포구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K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ㅡ어쩌다 한국 교회가 극우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지경에 이른 건가.

"극우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한국 교회 안에 있었다. 1945년 이후 교회는 꾸준히 성장했고 개신교인들은 사회 주류로 안착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잘 지냈다. 그런 시기에는 극우적 형태로 뜻을 표현할 필요가 별로 없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김대중(1998)·노무현(2003) 정권 출범 후 정부와 불편한 관계가 됐다. 교회 세습, 목회자의 헌금 유용, 여신도에 대한 성폭력 같은 교회의 축적된 내부 모순이 외부에 계속 드러나며 개신교 이미지가 실추되고 교세는 위축됐다.

사면초가에 놓인 개신교 주류는 제대로 개혁하기보다는 상황을 종북 좌파 같은 외부 소행으로 돌렸다.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몸부림이 전광훈 씨 등으로 표현되는 극우적 기독교로 나타나게 된다. 전 씨 등의 활동이 최근 정국에서 도드라지면서 한국 교회 자체가 극우적 기독교인 것처럼 보이는 형국이다."

ㅡ전광훈 현상의 뿌리를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왜 전 씨 같은 극단적인 사람을 개신교 주류가 내버려두거나 혹은 돕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전광훈 현상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역사적 연원이 있다.

먼저 주목할 것은 기독교 신학의 여러 흐름 중 근본주의 신학이 한국 기독교를 끌고 왔다는 점이다. 근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사고가 경직돼 있다. 근본주의의 중요한 종교적 정서는 타자에 대한 적대감, 불안감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분단과 냉전 시기의 반공주의다. 분단 후 남한을 반공 사회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은 서북청년단(서청) 같은 곳에서 극우 반공주의자로 활동했다.

근본주의 신학과 반공주의가 결합한 형태의 기독교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거치며 교회 안에서 점점 강화됐다. 거기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든 데서 비롯된 개신교 주류의 존재론적 위기감까지 겹쳤다. 1945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이런 토양에서 나온 극단적 버전이자 부정적 결과물이 전광훈 현상이다."

ㅡ전광훈 현상을 끝으로 개신교에서 근본주의가 약해질까.

"그렇게 될 것이다. 전 씨 행태는 신학적·도덕적·정치적으로 터무니없고 사회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 아닌가. 그런 모습이 교회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 형태라고 누가 생각하겠나.

전 씨는 한국 기독교의 사채업자 같은 존재다. 사채는 막다른 골목에서 대안이 없다고 느낄 때 쓰는 것이다. 사채를 쓰면 그 순간은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파멸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한국 교회는 사회의 혐오 대상이 된 그런 극단적인 사람들과 선을 그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전 씨 추종자들 내에서 문제를 깨닫고 탈출하는 이들이 생길 수 있다. 그게 아니라 해도, 그들만의 리그로 게토화됐다가 역사 속의 폐물로 처리될 것이라고 본다."

 

▲ 배덕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원장. [이상훈 선임기자]

 

ㅡ책에서 한국 개신교 극우화의 결정적 동력으로 1948년 발생한 4·3사건을 주목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개신교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나.

"4·3사건은 한국에서 개신교가 연루된 최대의 범죄 기록이다. 약 3만 명이 희생된 이 사건에서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이 돼 조직한 서청은 폭력과 학살의 주범이었다. 그 배후에는 개신교 세력이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개신교는 국가 권력과 유착된 국가 종교로 전락했다.

그런데 개신교에는 학살 피해자라는 측면도 있다. 사건 당시 일부 교인이 희생돼 제주 개신교회 측은 자신들을 피해자로 간주한다.

난 개신교가 이 사건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이 사건의 상처를 교회의 문제로 드러내 역사적으로 평가하고 치유와 화해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교회가 부끄러움을 느낄 수도,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와 별개로, 개신교가 해야 할 일이 또 있다. 바로 광장에서 회군하는 것이다."

ㅡ어떤 의미인가.

"개신교가 정부와 유착하며 사회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지 않던 과거에 난 교회가 광장에 나가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광장에서 전 씨 집단 같은 형태로 쌍욕, 가짜 뉴스, 막말을 토해내는 것은 사회에 기여하는 길이 아니다.

개신교는 당분간 광장에서 함성을 멈추고 골방으로 물러나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지금은 교회를 세상 사람들의 안식처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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