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지법 폭동 보며 "지옥문 열렸다는 느낌 받아"
"친절·다정한 민주주의…극우 예방은 청년 이해로부터"
"청년 취업과 주거 문제 풀기 위한 사회적 결단 필요"
지난 1월 발생한 서울서부지법 습격·폭동 사건에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 때 심리지원단 단장으로 활동한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도 마찬가지였다. 사건을 지켜본 김 교수는 청년 극우화에 대한 탐구와 집필 작업에 돌입했다.
현직 정신과 전문의인 김 교수는 이전부터 10대, 20대 상담을 진행해왔다. 그중 상당수는 극우 성향이었다. 진료실에서 이들과 함께한 시간은 청년 극우화 연구의 밑거름이 됐다.
연구 결과를 모아 지난달 '극우 청년의 심리적 탄생'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KPI뉴스는 김 교수에게 현 상황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인터뷰는 8일 경기도 고양시 명지병원 김 교수 진료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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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가 8일 경기도 고양시 명지병원 자신의 진료실에서 K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
ㅡ서울서부지법 폭동을 보며 '지옥으로 이어진 문이 열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책에 썼다.
"청년 다수가 극우화됐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전혀 아니다. 다만 그 폭동은 극우 청년들의 정치적 테러와 연관된 행위로 주목해야 하며 사회적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문이 열렸다'고 한 건 청년 극우와 연관된 폭력이 사회에 각인된 최초 사건이 아닌가 싶어서다.
서구에서는 이주민 문제가 극우화 현상의 전면에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그것보다는 젠더 문제가 주류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부 학자들은 가부장주의에서 벗어나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는 흐름을 우익화가 가로막는 퇴행을 우려하는데, 나도 같은 우려를 갖고 있다."
ㅡ극우화 경로와 관련해 게임 중독 현상을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게임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10대, 20대 남성이 많이 모이는 게임 커뮤니티가 익명으로 극우 발언을 하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게 문제다. 게임 커뮤니티 같은 인터넷 공간, 종교, 근래 논란이 된 '리박스쿨'처럼 특정한 역사적 관점을 세뇌하려는 흐름이 극우 청년을 양산하는 주요 경로다. 이런 경로는 한국과 다른 나라 사이에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ㅡ극우화와 관련해 청년의 분노와 원한을 주목했다. 그 분노와 원한이 왜 진보를 겨냥하는 극우화로 나타난다고 보나. 청년이 불만을 느끼는 세상을 만든 건 보수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서 심리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거다. 희망을 주지 않는 것과 거짓말로 희망을 주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큰 배신감을 유발할까. 후자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잠시라도 거짓 희망을 품고 신뢰하게 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원한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약속을 지키지 않은 민주당 정부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가 더 큰 것 같다."
ㅡ청년 남성 위주 극우화를 언급하면서 '가장 역설적인 것은 (극우 남성들이) 남성의 취약성을 만든 사회 체제, 그들이 속한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는 거의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렇게 (체제 문제를 직시)하려면 새로운 사회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과잉 경쟁을 줄이고 평등 속에서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과 신뢰를 갖게 되면 서로 협력해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기보다 '옛날이 좋았다', '가부장제로 돌아가자'는 흐름이 그들 사이에서 더 강하다. 그래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 사이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새로운 체제에 대한 상상을 제한한 정치인들 책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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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이상훈 선임기자] |
ㅡ청년 극우화 확산을 막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첫 번째, 남성 지위가 하락한다고 우려하는 이들에게 평등한 사회가 더 좋은 사회임을 경험하게 하는 교육과 캠페인이 필요하다. 두 번째, 극우가 세력 확장을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게 각종 혐오 아닌가. 그런 혐오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세 번째,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 남성들이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들 말대로 전부 하기는 어렵지만, 호소를 일부 수용하면서 그들이 극우로 가지 않도록 설득해야 한다."
ㅡ'친절하고 다정한 민주주의'를 책에서 강조했다. 그것에 대해 '젊은 애들 응석을 다 받아주자는 거냐',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10대, 20대 상담을 하다 보면 '이 친구들이 되게 심각하고 절박하구나'라는 걸 느끼게 된다. 그런데 '철없네', '응석 부리네', '고생 안 해봐서 저러네'라고 여기는 어른들이 꽤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접할 때마다 깜짝 놀란다.
응석이 아니라 일종의 절규다. 그걸 응석으로 치부하는 건 청년에게 '그래? 그럼 다 같이 망하자'는 마음을 갖게 하면서 극우 쪽으로 내모는 것과 마찬가지다.
극우 예방은 청년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고성장 사회에서 살아온 부모 세대와 달리 저성장 사회에서 경쟁하면서 사는 청년들의 처지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담론이 필요하다. 이해 수준을 높이지 못하면 극단화·우익화되는 청년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20대에게 훨씬 많은 기회를 주는 정책, 특히 청년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취업과 주거 문제를 풀기 위한 사회적 결단도 필요하다. 재정을 대폭 투입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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