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묘지와 친일①] 친일인사 12명, 그들은 왜 아직도 현충원에 누워 있나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 2026-02-26 17:37:56
현충원에 잠든 정부 공인 친일반민족행위자들
일본군 또는 만주국군 복무 11명, 교육·종교계 1명
항일 무장 세력 탄압에 앞장선 간도특설대 출신 다수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하고 있다. 독립운동과 민주 항쟁이 국가 정체성의 근간임을 뜻하는 구절이다.그러나 대표적 국립묘지인 현충원엔 여전히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독립유공자와 나란히 묻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KPI뉴스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이 문제의 현황을 2편의 기사로 짚는다. 

▲ 국립서울현충원. [국립서울현충원 홈페이지 갈무리]

 

현충원에는 12명의 '정부 공인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가유공자 자격으로 안장돼 있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2005~2009년)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규정한 이들이다.

12명 중 7명은 국립서울현충원에, 5명은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다. 아래는 이들의 주요 이력이다. 독립유공자와 함께 현충원에 잠들기에 충분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는 이들인지 3·1절을 맞아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서울현충원에 안장된 친일 인사는 김백일, 김홍준, 백낙준,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가나다 순)이다. 이들의 친일행적은 시민 성금을 밑거름 삼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등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김백일(1917~1951)은 1937년 일제의 괴뢰 국가인 만주국 군대 장교를 양성하는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간도특설대 창설(1938년) 요원으로 참여해 일제 패망 이후인 1945년 8월 26일까지 복무했다. 간도특설대는 조선인이 다수 참여한 만주 일대의 항일 무장 세력 탄압에 앞장선 것으로 악명 높은 부대다.

광복 후 고향인 함경북도로 돌아갔다가 1945년 12월 간도특설대 동료인 백선엽 등과 함께 월남해 국군 장교로 변신했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이 일어나자 진압군을 이끌고 출동했는데, 정부 승인을 받지 않고 현지에서 자의적으로 계엄을 선포했다. 계엄 선포 후 여순 지역에서는 민간인 학살 문제가 심각했다. 한국전쟁 시기인 1951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김홍준(1915~1946)은 1937년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군 장교가 됐다. 그 후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하며 항일 무장 세력 토벌에 나섰다. 광복 후 국군의 모체가 되는 남조선국방경비대 총사령부에서 근무하다 194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백낙준(1896~1985)은 일제 강점기에 교육·종교계에서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 일제의 침략 전쟁에 협력하는 데 앞장선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이었고, 황민화 정책에 동조하는 설교 등도 했다. 광복 후 연세대 전신인 연희대 초대 총장(1946~1950년), 문교부 장관(1950~1952년) 등을 역임했다. 1968년에는 독립유공자 상훈심사회 위원으로 위촉됐다.

신응균(1921~1996)은 일본 육사(53기)를 졸업하고 일본군 포병 장교로 복무했다. 1945년 4~6월에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 포로가 됐다. 일제 패망 직전 계급은 소좌(소령에 해당)였다. 광복 후 국군 장교로 변신해 제1야전포병사령관 등을 역임하며 '포병의 아버지'로 불렸다. 1960년대에 국방부 차관, 주서독 대사 등을 지냈다.

신태영(1891~1959)은 신응균의 아버지다. 일본 육사(26기) 졸업 후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다. 시베리아 간섭 전쟁 등 일제의 여러 침략 전쟁에 참여했다. 일본군 예비역 중좌(중령에 해당)로 광복을 맞았다. 이승만 정부에서 육군참모총장 대리, 국방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시베리아 간섭 전쟁 당시 자신의 첫 출진의 목표는 야스쿠니 신사에 묻히는 것이었다는 수기가 1943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에 실렸다. 생전에 일제가 패망해 야스쿠니 신사가 아닌 현충원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아들과 함께 묻혀 있다. 시베리아 간섭 전쟁(Siberian Intervention, 1918~1922)은 러시아혁명 직후 혼란기에 미국, 일본 등 연합국이 시베리아에 군대를 파병한 사건을 말한다. 러시아 내전(적군 vs 백군)에 외국 세력이 개입한 전쟁이다.

 

이응준(1890~1985)은 일본 육사(26기) 졸업 후 일본군 장교로 중일전쟁 등 일제의 여러 침략 전쟁에 참여했다. 일제 패망 당시 일본군 대좌(대령에 해당)였다. 이승만 정부에서 초대 육군참모총장, 체신부 장관 등을 지냈다.


1910년대에 일본 육사 선배인 김경천, 동기인 지청천과 함께 일본군 탈출 후 중국 망명 방안을 모의한 적도 있다. 김경천과 지청천이 1919년 3·1운동 후 망명을 결행해 항일 무장 투쟁에 헌신한 것과 달리 이응준은 일제 패망 때까지 30년 넘게 일본군 장교로 살아갔다.

이종찬(1916~1983)은 1905년 을사오적 중 한 명이었던 이하영의 손자이자, 일제 강점기에 조선귀족회 부회장 등을 지내며 침략 전쟁에 협력한 이규원의 아들이다. 이하영, 이규원, 이종찬 모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됐다.

1937년 일본 육사(49기)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로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에 참여했다. 광복 후 육군참모총장이던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집권 연장을 위해 부산정치파동을 일으키자 '군은 정치에 동원될 수 없다'며 병력 파견을 거부해 해임됐다. 1960년 4월혁명 후 허정 과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맡았을 때에는 3·15 부정 선거에 관여한 군인들을 숙청했다.

 

▲ 광복절을 앞둔 지난해 8월 13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광복 8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미국과 브라질, 캐나다 안장 독립유공자 6명의 유해 봉환식이 거행되고 있다. [뉴시스=청사사진기자단]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사람은 김석범, 백선엽, 백홍석, 송석하, 신현준이다.

김석범(1915~1998)은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육사(54기)에 편입했다. 1940년 일본 육사 졸업 후 만주로 돌아와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하며 항일 무장 세력을 탄압했다. 광복 후 국군 장교로 변신해 이승만 정부 때 제2대 해병대 사령관을 지냈다.

만주국군지(滿洲國軍誌)라는 책에 "우리들 만주 군인 출신은 일제 탄압하에서 조국 땅을 떠나 유서 깊은 만주에서 독립 정신과 민족의식을 함양하며 무예를 연마한 혈맹의 동지들이다"라고 썼다. 일제를 위해 복무한 자신들의 과거를 마치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 준비 시기였던 것처럼 둔갑시킨 것이다.


백선엽(1920~2020)은 1941년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광복 후 평양으로 돌아왔다가 월남해 국군 장교로 변신했다. 한국전쟁 때 다부동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워 최초로 육군 대장 자리에 올랐다.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등을 역임했다.

간도특설대 활동에 대해 1993년 일본에서 출간된 저서에 이렇게 썼다. "주의 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진지하게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진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들이 역으로 게릴라가 되어 싸웠다고 독립이 빨라졌으리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래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고 비판받아도 할 수 없다."

백홍석(1890~1960)은 일본 육사(27기) 졸업 후 30년 가까이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예비역 중좌로서 조선인을 일본군으로 동원하는 일을 했다. 광복 후 국군 장교로 변신해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재향군인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송석하(1915~1999)는 1937년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하며 항일 무장 세력을 공격했다. 광복 후 국군으로 신분을 바꿔 여순사건 진압 작전 등에 참여했다.

신현준(1915~2007)은 1937년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김백일 등과 함께 간도특설대 창설 요원으로 활동했다. 항일 무장 세력을 탄압하는 활동을 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이승만 정부 때 초대 해병대 사령관을 지냈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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