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공급 중단한 삼성에 37만루블 배상 명령…연방대법원 추가 불복 가능
국내, 병행수입·해외 구매 제품 제한적 보증…EU·인도·호주 판례 제각각
삼성전자가 러시아에서 스마트폰 공식 공급을 중단했지만, 법원이 병행수입 제품 보증 책임까지 현지 법인에 부과하면서 예상치 못한 사후서비스 부담을 안게 됐다.
11일 러시아 리아노보스티와 법률·사법정보통신(RAPSI)에 따르면 러시아 제4일반관할 파기법원은 삼성전자 러시아 법인이 결함 스마트폰을 구입한 소비자에게 37만 루블(약 587만 원)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크라스노다르에 거주하는 소비자는 2024년 여름 전자제품 매장에서 약 9만8000루블(당시 한화 약 150만 원)을 주고 삼성 스마트폰을 구입했다. 구입 후 15일 이내에 상단 스피커에서 잡음이 나고 소리가 간헐적으로 끊기는 문제가 발생했다.
소비자는 삼성전자 러시아 법인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회사는 제품 검사 후 결함이 없다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이 지정한 감정기관은 제품이 소비자에게 인도되기 전부터 제조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1심인 크라스노다르 레닌스키 지방법원은 삼성 측에 스마트폰 가격과 손해배상금, 위약금, 정신적 피해 보상금 및 벌금 등을 합쳐 37만 루블 이상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항소심은 해당 스마트폰이 다른 국가 판매용으로 생산돼 병행수입됐고 삼성 러시아 법인이 직접 수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심을 취소했다.
하지만 파기법원은 항소심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법원은 삼성전자 러시아 법인을 현지에서 소비자 요구를 접수하고 처리하도록 제조사가 설립한 유일한 공식 기관으로 판단했다.
특히 삼성 측이 소비자의 이의를 접수하고 품질검사까지 진행하면서 판매자나 실제 수입업자에게 안내하지 않았다는 점도 책임 인정 근거가 됐다.
러시아 소비자보호법 제18조는 결함 제품의 환불 요구를 제조사와 지정기관 또는 수입업자에게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파기법원은 현지 법인이 직접 수입한 제품이 아니더라도 지정기관으로서의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해외 병행수입품의 보증 책임 판례
병행수입품의 보증 책임을 둘러싼 판단은 국가마다 다르다.
유럽사법재판소는 1985년 스와치 제조사 ETA 사건에서 공식 유통망을 통해 판매된 제품에만 제조사 보증을 제공하는 제도가 병행수입업자를 불리하게 만들고 역내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사건은 소비자 배상보다 제조사의 보증정책이 경쟁법을 위반했는지가 핵심이었다.
인도에서도 해외에서 구입한 삼성 스마트폰에 현지 법인의 책임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 인도 코타얌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2025년 미국에서 구입한 갤럭시 S21 울트라가 삼성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후 고장 난 사건에서 삼성 인도 법인에 무상수리를 명령했다. 수리하지 못하면 제품값 8만1395루피를 환불하고 별도의 배상금도 지급하도록 했다. 다만 이 사건은 해외 구입품에 대한 일반적인 보증 책임보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현지 서비스 과정의 과실이 주요 판단 근거였다.
반면 호주는 병행수입품의 수리·교환·환불 책임을 이를 판매한 사업자에게 부과한다. 호주 경쟁소비자위원회는 제조사 보증 조건에서 병행수입품을 제외했다면 현지 제조사나 공식 판매점은 보증수리와 부품 제공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병행수입 등 해외에서 구입한 정품도 수리가 가능한 모델에 한해 1년간 제한적 보증을 제공한다. 다만 부품 수급이나 모델 차이로 수리가 불가능할 수 있으며, 교환·환불은 최초 판매 국가에서만 가능하다.
이번 러시아 파기법원의 결정은 선고와 동시에 효력이 발생하지만 최종심은 아니다. 삼성 측은 결정문이 최종 작성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러시아 연방대법원 민사재판부에 추가로 불복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단이 유사 분쟁으로 확산할 경우 삼성 러시아 법인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본다.
삼성은 2022년부터 러시아에 제품을 공식 공급하지 않고 있지만 현지에서는 제3국을 통한 병행수입 방식으로 갤럭시 스마트폰이 계속 판매되고 있다. 공식 판매에 따른 수익은 제한된 상황에서 삼성이 관여하지 않은 유통 제품의 수리·환불·배상 책임까지 떠안을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KPI뉴스 / 양지욱 기자 yjw@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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