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너를 사랑하는 건 천주가 아니라··· 바로 나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3-09-27 17:29:39
정해박해 다룬 장편소설 '사랑과 혁명' 펴낸 김탁환
곡성으로 흘러들어와 꾸려간 옹기촌 교우 공동체
박해 순교에만 초점 맞추지 않고 당대의 삶 그려내
"이야기의 신이 이 소설 위해 곡성으로 오게 한 듯"

소설가 김탁환이 1827년 곡성에서 시작된 정해군난(박해)을 붙들고 3권짜리 대하소설 ‘사랑과 혁명’(해냄)을 펴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 지도부가 모두 처형되거나 귀양 가면서 와해된 후 전국 각지로 흩어진 천주교인들 중 곡성에서 교우들이 옹기를 만들면서 마을 공동체를 꾸려낸 이야기를 중심으로, ‘정해군난(窘難)’ 전후 38년을 200자원고지 6000장에 펼쳐냈다.

 

▲1827년 곡성에서 시작된 천주교 '정해박해'를 근간으로 근대를 앞당겨 살아간 천주교인들 이야기를 소설에 담아낸 김탁환.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박해와 순교에 초점을 맞춰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끌고 가는 대신 조선의 유교 질서와는 다른, 양력과 천주교의 세계관으로 이들이 어떻게 근대를 앞당겨 살아냈는지 살피면서 이런 삶 자체가 왜 ‘혁명’이기도 한 것인지 촘촘하게 인물들을 통해 드러내는 방식이다.
 

1권은 농부였다가 나무꾼으로, 다시 옹기꾼으로 살아가는 ‘들녘’과 교우촌의 순결한 여인 이아가다의 사랑 이야기를 매개로 교우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고 옹기촌에서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2권에 이르면 집요한 교인 사냥꾼 좌포도청 종사관과 간자가 협잡해 교우촌 인물들을 잡아들여 어떻게 고문하고 배교에 이르게 하는지 다양하게 보여준다. 3권에서는 이들의 참혹한 현실을 조선 바깥으로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과 많은 인물들의 후일담을 핍진하게 펼쳐낸다.


김탁환은 첫 역사소설 ‘불멸의 이순신’ 이래 영정조 시대인 1700년대 백탑파 시리즈와 개화기를 배경으로 삼은 ‘리심’ ‘나, 황진이’ ‘노서아 가비’, 메르스와 세월호 사태 즈음에 ‘거짓말이다’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살아야겠다’ 등 모두 31권에 이르는 장편소설을 써냈다. 정작 정조가 죽은 뒤 암흑기인 1800년대 전반기를 숙제처럼 남겨놓았는데, 벼르다가 이번에 천주교 탄압을 배경으로 당대를 그려냈다.
 

전남 곡성으로 작업실을 옮기고 마을 사람들과 생태공동체를 꾸리며 책방도 운영하고 있는 김탁환이 4년에 걸쳐, 천주교인들을 가두었던 감옥 터에 세워진 ‘옥터 성지’ 곡성성당 옆집에서 텃밭 농사를 지어가며 일구어낸 노작이다.

 


“곡성 성당 옆집으로 이사를 가게 됐는데 이른 아침에 눈을 떠서 텃밭으로 나가면 신부님과 수녀님 사택에 불이 밝혀져 있어요. 일을 하다 9시가 되면 성당에서 종이 33번 울립니다. 잡혀와서 고문받던 당시의 교인들이 갇혔던 감옥 터에 지어진 그 성당 옆에서 소설을 쓰다 보니, 소설 속 인물들과 같이 살아낸 느낌이에요. 이렇게 소설을 써보긴 처음입니다. 이 인물들은 당시 한명도 순교하지 않았고 모두 배교했는데,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으로 저간의 사정을 알 수는 없습니다. 박해하는 쪽이나 박해당하는 사람들 모두 세월이 흐르다보니 그 과정에서 요령들이 생긴 건데, 순교자를 만들면 더 교세가 확장되는 모순을 피하기 위해 죽을 것 같으면 석방하고 장기수로 만들면서 모두 배교를 시킨 거죠. 그들이 나가서 회두하고 다시 교우촌으로 숨어들어 조선의 질서와는 다른 그들 나름의 세계를 이어간 겁니다.”


곡성에서 잠시 올라와 기자들과 만난 김탁환은 “1800년대를 잘 쓰라고 소설의 신이 저를 곡성으로 보낸 것 같다”면서 “내려가지 않았으면 자료를 파고들어 또하나의 지식인 소설을 쓰는데 머물렀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유교든지 불교든지 무속이든지 이런 것들을 믿었던 사람들과 천주교인들이 서로 부딪히는 양상들도 소설로 쓰고 싶었다”면서 “크게 보면 천주교도가 아니었던 세 명의 젊은이가 천주교를 만난 뒤 그들의 삶이 각각 어떻게 달라지는지 따라갔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하는 세 명의 젊은이란 한날한시에 같이 순교하자고 맹세했던 이오득(야고버), 소인정(요안), 공원방을 이르거니와 두 사람은 배교한 뒤 회두해 교우촌의 중심인물로 살아가지만 공원방은 ‘간자’가 되어 치열하게 천주교인들을 밀고하고 잡아들이는 삶을 살아간다. 체제에 저항하는 이른바 ‘봉기꾼’ 출신인 이오득은 조선의 유교질서에서 천주교인의 평등한 삶을 살아가는 건 ‘불온한’ 것이어서 그 자체로 사실 ‘혁명’에 가까운, 변치 않은 봉기의 삶을 이어간 셈이다. 소인정은 감옥에서 기록을 도와 조선 바깥으로 그들의 삶을 전하는 역할을 이어간다. 끝까지 교인들을 추적했던 간자 공원방은 고통 속에 죽어가면서도 딸 아가다에게 말한다.


-천당 따윈······ 없다. 천주도······ 없다. 예수도······ 떠돌이 무당이었을 뿐이야. 속지 마라. 천주가 나를 사랑한다고? ······명심 하거라······ 너를 사랑하는 건 천주가 아니라······ 바로 나다······ 나뿐이다······.

 

▲김탁환은 "배교와 치명(순교) 사이, 교우 마을과 외교인 마을 사이, 신과 인간 사이를 더 오래 들여다보고자 했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김탁환은 “예전에는 이데올로기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고민했는데 지금은 우리가 마을을 어떻게 만들어 그 마을 속에서 한 개인이 성장해 나갈 것인지 고민한다”면서 “계속 곡성에 살면서 마을 공동체 속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는 도서관보다 성당이나 교회에서 1800년대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을 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저는 천주교인들이 요망한 신을 믿기 때문에 잡아들이는 게 아닙니다. 요망한 신을 믿는 자들은 천주교인 외에도 많습니다. 석가를 믿는 중들이 수천 명은 족히 되겠지요? 동자신이니 장군 신이니 하며 이런저런 신내림을 받은 무당들 역시 줄잡아 수백 명은 될 겁니다. 하지만 나라에서 중이나 무당을 잡아 가두거나 처형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믿음이 이 나라를 흔들 만큼 불온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천주교인 잡는 악명 높은 좌포도청 종사관 금창배가 윗분에게 하는 말이다. ‘사랑과 혁명’은 단순히 천주교 박해를 다룬 종교소설도 아니고, 역사소설로 치부하기에도 넘친다. 성과 속을 넘나드는 작가정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자주 보인다. 액자 형식으로 이야기 바깥에서 이끌어가는 이야기꾼 ‘장구’는 몸이 성치 않은 천주교인이다. 그는 독실한 신자로서 옹기촌 마을 공동체에서부터 정해박해를 거치는 동안의 수난을 조선 바깥으로 전하는 마지막까지 과정을 충실하게 기록해나가는 역할을 맡았다. 

 

▲김탁환은 정해박해 때 붙잡혀 온 천주교인들이 갇혀 고문받던 감옥 자리의 곡성 성당(왼쪽·닭이 세 번 울기 전에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의 닭이 십자가 위에 앉아 있다) 옆집에서 텃밭을 일구며 소설을 썼다.  [해냄 제공]

 

정작 그이보다 더 월등한 조선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소문난 ‘모독’이라는 이는 자신이 적접 이 이야기를 쓰는 대신 자료들을 ‘장구’에게 전달하며 이야기로 자신에게 천주의 존재를 설득해 보라고 요구한다. 일수 거짓말꾼 ‘모독’은 자신의 위상이 흔들릴 뻔한 제자 최돌돌의 엄청난 거짓말을 접한 적 있다고 감옥에서 떠든다.


-무척 인기 많은 선생이 있었답니다. 선생의 말씀을 들으려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구름도 거짓말이긴 한데 그냥 넘어가고요,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공자도 그랬고 부처도 그랬죠. 나중에 그 선생이 예수란 걸 알았지만, 최돌돌은 선생 이름을 그날은 밝히진 않았습니다. ······선생이 먹을 만한 게 있으면 다 가져와보라고 했대요. 그렇게 모은 것이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였답니다. 모인 사람이 오천 명인데, 그걸로는 어림도 없지요. 한데 선생이 너무나도 간단히 말씀하셨답니다. 나눠 주라! 종도들이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를 모인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 주기 시작했고요. 결국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많이 남았다는 거짓말!

  

이어서 모독은 말한다.

 

-제가 비록 이 나라의 거짓말 일수지만, 저는 작은 거짓말꾼에 속합니다. 거짓말로 세상을 구원하겠다거나 천하를 얻겠단 꿈 따윈 꾸지 않으니까요. 무지무지 크게 거짓말을 하면 그게 가늠이 되질 않으니 참말처럼 느껴지죠. 큰 거짓말꾼을 따르는 자들 역시 모두 거짓말꾼일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 거짓말이 필요하면 부탁들 하십시오.
 

▲김탁환은 "희망과 절망, 미움과 사랑, 의심과 믿음을 갈라 언행을 평하고 답을 구하지 않았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김탁환이 ‘장구’의 시각에 함몰되면 ‘사랑과 혁명’은 종교소설이 될 터이고, ‘모독’의 자세를 유지하면 그 시기 그들의 신을 향한 진정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위험성도 있는 셈이니 그가 선택한 ‘장구’ 와 ‘모독’ 사이의 어떤 지점이야말로 절묘한 선택일 터이다.
 

모독은 성이 모(牟)이고 이름이 홀로 흘러다니는 독(獨)인 것인데, 기실 세상 모든 것을 모독(冒瀆)하는 비판자의 숙명을 담은 작가정신의 중의적인 이름이기도 히다. 모독은 장구가 완성한 이야기를 다 읽고 어떤 선택을 할까. 그 선택은 이미 이야기 끝까지 따라온 독자들의 몫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쓰면서 되짚어보니, 그는 언제나 돈 많은 자, 권세 쥔 자, 이름 높은 자들과 그들이 주장하는 세상을 모독하며, 그 모독을 거짓말에 담아 지껄여대며 여기까지 왔다. 군왕은 물론이고 공자든 석가든 모독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니, 천주 성부와 천주 성자와 천주 성신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댔을 것이다. 과연 모독은 탕아처럼 돌아와 신 앞에 무릎을 꿇을까.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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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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