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슬라(何瑟羅)’는 삼국시대 고구려에 속했던 강원도 강릉부를 부르던 말이다. 지명이야 어떻든, 동쪽 푸른 바다에 기댄 이곳은 한반도에 인류가 정착한 이래 지금껏 태양의 기지개를 매일 처음 훔쳐볼 수 있는 곳이다.
‘대지미술가’ 최옥영은 이곳 ‘하슬라’에 터를 잡고 20여 년째 대자연과 씨름하고 있다. 대양이 입을 벌린 바닷가와 맞닿은 수만 평 하슬라 언덕에 자신의 성을 짓고 있다. 강릉의 랜드마크로 부상하고 있는 ‘하슬라아트월드’. 사람들은 이 곳을 두고 ‘대지미술’의 전형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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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슬라아트월드와 동해 [SayArt(세이아트)] |
그의 이런 대지미술은 영월의 ‘젊은달 와이파크’, 이제 막 삽을 뜬 삼척의 ‘하슬라’로도 이어진다. 삼척 하슬라까지 마무리되면 ‘삼각벨트’가 완성된다. 그가 벌여놓은 한국 대지미술의 실체인 ‘하슬라아트월드’를 시월의 마지막 날 찾았다.
그는 자신의 대지미술에 대해 “땅과 지형을 하나의 캔버스로 생각하고 조물주가 준 땅에 사람의 생각을 넣는 것”이라며 “무한한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썩고 소멸할 테지만 그 자체가 예술”이라고 정의했다.
본래 대지미술은 ‘랜드 아트·프로세스 아트’라고 불리며 사막·산악 ·해변·설원(雪原) 등의 넓은 땅을 파헤치거나 거기에 선을 새기고 사진에 수록해 작품으로 삼기도 하고, 잔디 등의 자연물을 그릇에 담거나 직접 화랑에 운반해 전시하기도 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의 대지미술은 자연에 자기 작품을 조화롭게 섞어놓은 게 핵심이다. 하슬라의 거대한 구조물이나 조각이 애초 그곳에 있던 것처럼 어우러지는 이유다. 또 그렇기에 수만 평 위에 놓인 그의 여러 작품이 모두 하나로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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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슬라아트월드에 조성된 '소똥전시관' [SayArt(세이아트)] |
그가 이런 대지미술가로 나선 건 그가 처음 대중에 각인됐던 1997년 포스코 갤러리에서 연 ‘소똥 조각전’이 계기다. 그는 당시 소똥 재료로 만든 작품 여러 점을 허공에 매달았다. 작품 재료나 주제 모두 관객의 혼을 빼놓았고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에겐 ‘소똥작가’라는 닉네임이 따라붙었다. “당시 작품은 소의 배설물인 똥이 땅에 떨어져 지극히 안정된 상태가 된다는 정형화된 조건에 대한 일종의 반역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해당 전시는 관객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에게도 큰 전환점이었다. 그는 이 전시에서 자연환경의 새로운 관점과 작품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이 향후 펼칠 자연을 상대로 한 대지미술의 개념을 스스로 정립할 수 있었다.
“오래된 답답한 무엇인가가 빠져나가는 뻥 뚫린 기분이었죠. 소똥작품을 통한 힐링. 그 치유의 힘이 다음 단계로 나갈 에너지를 주었어요. 예술 인생의 큰 모멘텀이었죠”라고 그는 회상했다. 이 전시는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다. 결국, 그의 소똥은 동해를 건너 도쿄의 Pepper’s 갤러리에 걸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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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슬라아트월드 산책로에 조성된 최옥영 작가의 작품 [하슬라아트월드 제공] |
그는 애초 스케일이 크다. 대지미술이 아니더라도 조각가에겐 어떤 형식이든 큰 공간이 필요하다. 작업장이든 전시공간이든. 이 때문에 그는 소똥전 이전부터 자신이 꿈꾸는 조각을 실행하기 위해 대관령 인근 폐교를 인수했다. ‘왕산조형연구소’란 간판을 내건 그는 다양한 예술 실험에 몰두하며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 오지랖일지, 그는 종합예술제인 ‘왕산개천제’까지 개최하며 겁 없는 예술혼을 토해냈다. 호사다마였을까. 기상 역사에 기록된 태풍 루사는 대지에 맞선 겁 없는 예술가를 가만두지 않았다. 루사가 삼킨 연구소는 폐허로 바뀌었고 그의 꿈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주저앉아 펑펑 울고 싶었지만, 추슬러야 했다. 하지만 그는 “내 마음속 찌꺼기마저 송두리째 쓸고 간 고마운 태풍아”라며 훅훅 털고 일어났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아내이자 가장 큰 버팀목이자 조력자인 조각가 박신정(그레이스 박)이 있었다. 두 사람은 하슬라로로 향했다. 짙은 어둠이 서서히 거치자, 여명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손에 쥔 바닷가와 맞닿은 10여만 평의 언덕에 새로운 꿈인 ‘하슬라’를 짓기 시작했다. 돈이 떨어지면 잠시 쉬고 때를 기다리며 서로를 달래야만 했다. 사실 급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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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1일 작업실에서 UPI뉴스와 인터뷰하는 최옥영 작가와 아내 그레이스박 작가. [SayArt(세이아트) 제공] |
“강원도는 가장 한국적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더 멋지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어느 방향을 봐도 바다가 보인다.” 애초 바다가 보이는 곳에 터를 잡은 건 그의 계획이다. 천혜의 요지에 똬리를 튼 하슬라아트월드. 좌우로 펼쳐진 대양의 수평선 아래 가득 채운 가을의 시퍼런 동해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대자연에 그저 숟가락만 얹은 셈”이라며 그가 자신을 낮춰 부른 이유는 자연에 대한 경외로 읽혔다.
긴 시간과 사투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우선 3만 3천여 평의 공간에 조각공원 ‘성성활엽길’, ‘소나무 정원’, ‘시간의 광장’, ‘바다정원’, ‘하늘전망대’, ‘돌갤러리와 소똥미술관’ 등을 지을 수 있었다. 그 가운데 맨 뒤에 지은 ‘하슬라아트호텔’은 그야말로 특별함의 극치다. 20여 개에 지나지 않는 객실이지만, 방마다 예술 자체를 품고 있다. 차라리 ‘작은 공간 예술’이라고 불러야 할듯하다. 잠을 자는 것도 호사로 보이는 이유다. 특색 있는 방에 갖춘 원형 나무 틀 속 침구는 마치 어머니의 자궁처럼 투숙객을 밤새 휘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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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은 대나무 [젊은달 와이파크] |
영월에도 그의 손길이 스쳤다. 이젠 MZ세대들의 사진 촬영 성지로도 불리는 ‘젊은달 와이파크’가 그곳이다. 이곳은 애초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박물관 1개동과 주막거리(식당) 6개동으로 지어진 ‘술샘거리’였다. 대지면적만 8000평에 달하니 적잖은 공간이다. 하지만 지역민의 기대와 달리 활성화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그는 이곳에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들과 여러 박물관, 공방이 합쳐진 복합예술공간을 채워 넣었다.
입구부터 그의 시그니쳐 컬러로 무장한 붉은 대나무(Red Bamboo)가 관객을 맞는다. 그 외에도 다섯 개의 전시공간을 비롯해 목성(木星)_소나무 판테온(Jupiter_Panthéon), 우주정원 (The Universe Garden), 붉은 파빌리온(Red Pavilion), 얼굴 없는 인간(A faceless Man), 고무 드레곤(Rubber Dragon), 스파이더 웹(Spider Web), 엄마의 자궁(The Universe), 우주정류장(Space Station), 바람의 길(Windy Road), 드레곤3(Silver Dragon), 나무드래곤(Wood Dragon) 등 조형물들 주변엔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관객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조형물마다 주는 거대함과 우주를 관통하는 철학적 메시지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힐링처럼 다가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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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달와이파크에 세워진 최옥영 작가의 목성 [젊은달 와이파크 제공] |
“젊은달 와이파크는 즐기고 만지면서 에너지가 교감하는 장소다. 나는 작품을 사전에 계획하지 않는다. 좋은 재료와 물질이 있으면 그때 내 생각과 섞어본다. 공간은 나중 문제다.” 그렇게 여러 재료와 그의 생각이 섞인 구조물들은 ‘젊은달 와이파크’에 하나둘씩 채워졌다.
거침없은 예술혼을 쏟아내는 최옥영. 사실 그는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고 ‘뒷수습을 하는 이’는 따로 있다. 아내인 박신정 작가의 몫이다. 그는 이화여대와 대학원에서 조소를 수학한 재원으로 어엿한 중견 작가다. 아내는 젊은 시절 교수와 날을 세우며 예술에 대해 갑론을박을 하던 한 무명의 작가에 반해 지금껏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슬라로 향하던 길목에 잠시 들린 최 작가의 거대한 작업실엔 포크레인도 드나들 수 있는 큰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었다. 이도 발을 동동 구를지언정 마무리는 아내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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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옥영 작가는 “천의 얼굴은 나의 서로 다른 감정“이라고 말했다. [SayArt(세이아트)] |
작업실엔 콘크리트로 만든 ‘천의 얼굴’이 널브러져 있다. 마치 시황제 무덤에서 나온 수천 병정의 조각처럼 제각기 서로 다른 얼굴을 한 그의 조각상들은 다양한 그의 감정들이라고 했다. 최근엔 우유팩 뒷면 천여 장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만장까지 그리려고 한다”며 최 작가가 너스레를 떨자, 아내는 “부자되겠네요”라며 웃어넘긴다.
그의 큰 작품 스케일은 더러 타인에게 ‘욕심이나 객기’라는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내려놓는 것도 욕망이다”는 말로 차고 넘치는 예술혼을 그저 자기 방식으로 토해내고 있는 자신을 대변했다. 또 그는 “예술가를 기록자로 만드는 재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우주의 큰 사이클로 보면 그렇다. 나의 대지미술은 단순하고 원시적인 힘이 강조되는 순수한 조형성을 추구한다. 원시적인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을 가진 땅, 땅(자연)은 만물의 죽음과 삶의 영원한 모태이며 거대한 자궁이다. 나의 대지예술의 생명이기도 하고 본질이다”라는 말로 잠시 스치는 인생 유한한 자신의 흔적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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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지미술가 최옥영 [SayArt(세이아트) 제공] |
하슬라아트월드는 현재진행형이다. 끝은 알 수 없다. 그는 언젠가 지워질 흔적을 오늘도 대자연에 낙서하고 있다. 분명한 건 그런 낙서가 매일 대자연(우주)에 자신의 우주를 더하는 그만의 예술혼이란 점이다. 또 그 작업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신의 우주와 자신의 우주가 조화롭게 만나게 하는 일이다. 어쩌면 그의 작업은 신과 동행하는 협업일지도 모르겠다. 대지미술가 최옥영은 오늘도 자신의 우주를 세상에 낳으려 비탈길을 오르고 있다.
KPI뉴스 / 제이슨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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