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김을 추억하다

이성봉 / 2018-09-14 11:29:05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Show must go on)'
앙드레김 패션쇼장 재현…서울미술관 전시

한국 최초의 남성 패션디자이너이자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였던 앙드레김. 지난 2010년 세상을 떠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자리가 곳곳에서 마련되고 있다.  

 

▲ 한국 최초의 남성 패션디자이너였던 앙드레김 (1935-2010) [롯데백화점 롯데갤러리 제공]


서울미술관은 오는 16일까지 앙드레 김 추모 전시회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전’을 열고 있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Show must go on)’라는 제목으로 그의 패션쇼장을 재현해 놓고 작품들을 함께 보여준다.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누엘 아트홀은 지난달 31일부터 오는 30일까지 기획 전시회 <더블 엣지>를 마련하고 한 시대를 풍미한 디자이너로 앙드레김과 이신우, 두 사람을 조명하고 있다.

또한 지난 5월말에는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에서 추모 행사 ‘리마인드 앙드레김’ 전시회가 열렸고, 12일에는 미국 LA 비벌리 힐튼 호텔에서 이 행사를 다시 선보였다.

‘리마인드 앙드레김’ 행사는 고인이 생전에 함께했던 슈퍼모델들과 스태프들이 모여 10년 만에 재구성한 패션쇼다. 도신우 연출과 배우 오지호, 슈퍼모델 김효진과 박영선 등이 참가해 추억의 무대를 만들어 냈다.

 

일곱 겹의 드레스 퍼포먼스부터 앙드레김 패션쇼의 시그니처로 꼽히는 ‘이마 키스 피날레’까지 재현함으로써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무대 뒤에는 앙드레김의 웃는 모습이 영상으로 재현되기도 했다.

패션쇼만을 위한 의상을 제작했던 패션 장인 앙드레김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의상에는 꿈과 환상이 있어야 한다. 예술에서 감동을 느끼듯 패션도 충분히 감동을 자아내는 창작예술이며, 나는 음악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닮은 패션으로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해 왔다”는 말로 패션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밝힌 바 있다.

그의 대표적 의상 디자인 칠갑산은 조선조 공주의 결혼예복인 대례복에서 영감을 얻었다. 칠갑산은 남녀가 융합하는 결혼을 행복의 정점으로 해석한 앙드레김의 염원이 담긴 옷이다. 7겹의 레이어드(여러 겹으로 겹쳐 입은 스타일)로 된 거대한 세계에는 길상을 상징하는 구름, 건강을 상징하는 연꽃, 결혼생활이 유연하게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물결무늬, 올바름과 믿음을 상징하는 봉황무늬가 담긴다.  

 

▲ 앙드레김 의상을 입고 있는 모델 박영선. 최근 리마인드 앙드레김 패션쇼에서도 칠갑산 의상이 재현됐다.

 
그는 패션쇼를 열 때마다 매번 칠갑산을 새로 만들었다. 칠갑산 한 벌을 만들기 위해, 6명으로 구성된 디자인 팀과, 15명의 제작팀이 한 달 내내 매달린다. 앙드레김은 항상 패션쇼에 이 칠갑산, 7겹의 드레스를 모델이 입고 나와 하나씩 벗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것은 평생 불교에 심취했던 디자이너에겐 해탈과 비움을, 새로운 탄생을 위한 무(無)를 향한 정신을 보여주었다.  


패션디자인 업계에서 앙드레김은 작품성보다 ‘쇼’에 뛰어난 디자이너로 평가받았다.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시즌을 앞두고 트렌드를 보여주는 컬렉션을 하고, 판매, 유통, 가격을 고려하며 디자인을 했던 것과 달리 그는 자신이 추구한 환상적이고 로맨틱한 오트쿠튀르(고급 맞춤복)만 고집했다.

‘앙드레김과 이신우전’을 기획한 김홍기 패션큐레이터는 앙드레김의 ‘오직 한 벌의 옷’인 오트쿠튀르와 ‘아름다운 옷은 독점의 권리를 벗고 공유되어야 한다’는 이신우의 기성복론, 앙드레김의 백색과 이신우의 검정색을 대비시켰다.

앙드레김은 일흔이 넘어서도 패션쇼의 기획, 음악, 모델 선정까지 본인이 직접 조율할 만큼 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 서울미술관에서 선보인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展’  중 앙드레김 특별전 [서울미술관 제공]


그에게 패션이란 총체적 예술이었다. 음악, 패션, 그리고 모델들의 워킹이 모두 조화를 이루었을 때 비로소 완벽한 쇼가 탄생되는 것이다. 특히 배우들을 모델로 쓰는 것을 선호했는데, 그들이 가진 매너와 눈빛이 관중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무대에는 장동건, 김태희, 김희선, 이병헌, 오지호, 고현정, 송혜교, 한채영, 공유, 안성기, 한지민, 심은하, 소지섭, 장혁, 지성, 고수, 권상우, 강수연, 고아라 등 톱스타 연예인들이 함께해 꿈의 무대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마이클잭슨과는 1999년 한국 공연을 위해 방문 했을 때 특별한 인연을 만들게 된다. 그 후 10년 동안 주요 시상식과 공식석상에서 앙드레김의 의상을 즐겨 입었다. 자신의 전속 디자이너가 되어 달라는 요청을 거절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앙드레김은 마이클 잭슨 외에도 브룩 쉴즈, 나스타샤 킨스키, 나오미 캠벨, 클라우디아 쉬퍼 등 세계적인 스타와 모델 등에게도 자신의 옷을 입혔다.

그의 패션쇼에서는 ‘만남-이별-재회’ 끝에 이마를 맞대는 ‘앙드레김 표 피날레’를 통해 ‘완벽하게 아름다운 공주와 왕자가 시련을 극복하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는 해피엔딩을 그려냈다. 남녀의 사랑을 꿈으로 표현하고 쇼로나마 대중이 판타지를 대리만족하기 바랐던 것이다. 이 장면은 결혼식이나 코미디 프로그램의 소재로 소환되어 패션을 모르는 이들도 따라하는 이벤트가 되었다.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스타 디자이너로서 스캔들과 희화화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고 항상 겸손했던 휴머니스트였다.

1999년 옷 로비 사건 관련 국회 청문회는 전 국민이 TV 화면을 통해 그를 다시 보게 된 계기였다. 청문회 결과 국민의 궁금증은 풀지 못하고 김봉남이라는 그의 본명만 밝혔을 뿐이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반면 권력 앞에서도 자존심과 품위를 잃지 않은 그의 모습은 오랫동안 대중의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는 생전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나 14개 신문을 정독하고, 쇼에 필요한 300여 벌 이상의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하루 8시간 이상 작품 구상과 제작에 몰두했다. 그에게 패션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평생에 걸쳐 이루고자 했던 꿈이었다.

특히 앙드레김의 문화예술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공연 현장에는 언제나 그와 그가 초대한 인사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받곤 했다.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등 대형 공연장에는 그만의 특별한 자리가 있다. 첫째 열 가운데 한 줄의 전체 좌석이 그만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다.

주최 측에서는 일반적으로 첫째 열은 무대에서 가깝기는 하지만 그리 좋은 자리가 아닌데도 VIP석으로 구분한다. 이 자리를 할인 없이 현금 구매하고 스타급 유명인 10여 명과 함께 오는 앙드레김은 매번 반가운 특급손님이다.

그는 섹시함과 유혹적인 미는 멀리했다. 노출이 어려운 신체적 약자의 몸을 배려하는 뜻에서 미니스커트조차 디자인하지 않았다. 지적이고 내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여성의 이미지를 옷을 통해 투영해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판타스틱한 아름다움의 제국을 건설했다.

1966년 패션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에서 성공적으로 패션쇼를 개최함으로써 그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디자이너로 성장했다.

 

▲ 서울미술관에서 열린 '디어 마이 웨딩드레서' 앙드레김 특별전. 그의 작업실 모습을 재현했다. [서울미술관 제공]

2010년 76세를 일기로 서울대병원에서 운명을 달리하던 그해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그의 패션쇼는 열렸다. 오늘날까지 그를 추모하는 패션쇼는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그가 타계한 뒤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해 그의 업적을 기렸다.

 

KPI뉴스 / 이성봉 기자 sblee@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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