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이후 상실 속에서 내면으로 침잠하는 사람들
비관이나 절망의 끝까지 내려가 빛을 기다리는 일
시·소설 경계 넘나들며 구름 그림자에서 찾는 위로
나에게 망망대해는… 무겁게 밀려오는 파도의 세계입니다. 밀려와서 돌아가지 않는 물의 세계입니다. 물의 세계에 잠겨가는 사람의 표정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무슨 말인지는 당신도 알고 있지 않나요? 이미 알고 있지 않나요 당신도? 우리는 지금 함께 망망대해를 건너가고 있잖아요.
이미 알고 있는 것 맞나요, 당신. 우리 앞에 펼쳐진 망망대해가 어떤 것인지. 재난을 다룬 콘텐츠들이 유행처럼 범람하지만, 정작 그 재난 이후를 차분하게 성찰하는 텍스트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장욱 소설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현대문학)은 막막하고 망망한 삶이라는 대해를 건너가는 이들이 재난 이후 희미하게나마 빛을 찾는 이야기이다. 너무 무거워도 가라앉진 말고 차분하게 인물들의 내면을 따라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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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난 이후 스산하고 슬픈 분위기의 해변여관을 무대로 내면으로 침잠해 빛을 찾는 이야기를 그려낸 이장욱. [현대문학 제공] |
철수를 명령받은 해변여관이 있다. 갈수록 해안선이 침식당하는 곳이다. 손님들도 찾아든 지 오래다. 보이는 풍경은 황량하다. '모수'와 그의 연인 '연'이 함께 운영하던 이곳은 이제 죽은 모수의 유령과 연이 지키는 공간이다. 이곳에 '천'이 장기 투숙객으로 찾아든다. '천'은 '한나'를 상실하고 떠돌다 이곳에 머무는 중이다. 연과 천은 해변여관에서 서로 상실을 달래며 옥상에 올라 같은 자세로 담배를 피우고 허공에 걸린 수평선을 바라본다. 몽롱하고 막막하며 스산하고 슬픈 정서가 해변여관을 감돈다.
모수는 기록하는 일, 쓰기에 물두하는 인물이다. 끊임없이 주변에서 전개되는 팩트를 일기처럼 쓴다. 쓰기를 완성함으로서 다시 그 쓰기를 살아가는 듯한 인물이다. 성실하게 쓰는 태도로 객관적인 세계와 대면하는 작가의 운명이 겹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연'은 해변여관에 흘러들었다가 모수의 연인이자 동거인이 된 경우다. 모수가 치명적인 병에 걸려 먼저 죽었다. 죽음을 지켜본 연은 형사에게 엉뚱한 질문을 받는다. 그녀가 모수의 생명유지 장치를 떼어낸 것 아니냐고. 연이 보기에 형사는 상처받은 짐승 같다.
'천'은 배우다. 수많은 인물들의 배역을 연기하면서 천은 그들에게 빙의해 살아왔다. 천의 내면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붐빈다. 혼자 있을 틈이 없다. 천은 텅 빈 태도로 타인들을 산다. '한나'는 천의 이런 면에 매료된 듯하지만 어느날 불현듯 떠나겠다고 말한다. 아나운서 출신인 그녀는 재난을 알리는 방송 중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웃음' 근육이 움직이는 물의를 일으킨 끝에 방송국을 그만둔다. 모수나 천이나 한나는 체계의 기준으로부터 일탈된 이들이다. 사로잡힌 자들이다.
"우리 사회가 설정하는 시스템 내지는 경계에서 벗어난 맥락의 인물들이죠. 한국 사회도 그렇고 세계적으로도 여러 재난 상황이라 할 만한 것들이 겹쳐 있는 것 같아요. 이 세계에서 일정하게 체계를 만들어 삶을 구획 짓는데, 거기에 걸맞지 않은 지점을 지닌 인물들이죠. 의도적으로 그런 특성을 갖게 된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 내면에 침잠함으로써 이 세계의 원리에서 벗어나는 인물들인 거죠."
전화로 만난 이장욱은 "재난의 내용 자체를 파고드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재난 이후에 상실을 겪어가는 인물들을 설정한 것"이라며 "기후, 환경, 전쟁, 전염병 같은 문제들을 포함해 국가도 제 기능을 못하는 근미래의 상황을 설정했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맞닿는 지점들을 상상했다"고 말했다. '현대문학'에 발표할 당시의 이 소설 제목은 '침잠'이었다.

나무도 없고 그림자도 없고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고 태양열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느낌이었다. 사막이란 모래와 허무로 가득한 낭만적인 땅이 아니라 햇볕을 피할 곳이 없는 황무지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도가 심하다…라고 한나는 생각했다. 하늘을 바라보며 걷다가 한나가 이렇게 말했다.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 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곳에서.'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자는 말, 따스한 시적인 울림이 크다. 우리가 살아가는, 건너가는 망망대해의 삶은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쬐는 숨막히는 곳. 그곳에서 잠시나마 쉴 수 있는 공간은 태양을 가려주는 구름 아래뿐이다. 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곳에서, 다음 구름 밑에서라도 쉬어가자는 말. 이장욱은 시인으로 먼저 데뷔해 시집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으로 '대산문학상'까지 수상한 시 쓰는 소설가인데, 이번 소설은 시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들며 굳이 장르를 구분하지 않는 듯하다.
"인물의 내면적 상태 혹은 상실의 괴로움, 이런 것들이 힘들기도 하고 소설 바깥 사람들을 봐도 다들 힘들고 우울하기도 해서 '다음 구름에서 쉬어가자'는 시적인 느낌이 필요한 것 같았어요. 요즘은 시와 소설을 같이 쓰는 작가들이 많아졌고, 시적인 것과 소설적인 것의 결합이 특별하진 않다는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소설과 시를 강박적으로 구분하려고 했지만 최근에 와서는 굳이 구분하지 않고 서로 얽혀드는 느낌이 그냥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재난이 휩쓸고 간, 혹은 재난 중에 있는 상징적인 공간인 해변여관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의식하진 못하지만 언젠가 스치거나 본 적이 있는 '얽혀 있는' 존재들이다. 이장욱은 "의식적인 연결이나 커뮤니티 혹은 네크워크도 중요하지만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연결, 공통운명이라는 것은 이미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이라면서 "함께 이 망망대해를 건너가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수'의 연인이자 동거인이었던 '연'이 들려준 아라비아 마법사 에피소드는 이장욱이 세계를 보는 시각을 드러낸다. 마법사는 마시면 시간을 흔들 수 있는 술을 왕에게 권한다. 그 술을 마시면 세상의 시간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데, 왕은 모든 것을 거느린 거대하고 무한한 모습을 목격하자마자 슬픔이 가슴속에서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극복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슬픔. 왕은 선택해야만 했다. '삶으로 돌아가서 삶을 긍정하고 진실의 일면만을 보고 살 것인가, 죽음을 택해서 삶을 부정하고 진실의 온 모습을 볼 것인가'. 고체처럼 부서지기 쉬운 진실이 아닌, 기체처럼 유동적인 진실의 모든 면을 알아버린다면 신처럼 침묵할 수 밖에 없고, 살아가자면 일면의 진실이라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삶 쪽이 부서지기 쉬운 진실보다 더 가치 있다는 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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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으로 등단해 소설을 겸업해온 이장욱은 "이제는 시와 소설을 강박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서로 얽혀드는 느낌이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현대문학 제공] |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 연의 중얼거림을 따라서 천이 중얼거렸다. …천이 제 말을 따라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연이 그를 바라보았다. 천도 연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다가 다시 수평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평선 너머의 망망대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연은 몽상가도 아니고 생물학자도 아니고 옛사랑을 추억하는 사람도 아니고 단지 살아가는 사람이었는데, 그것은 천도 마찬가지였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들이다. 다시 다음 구름에서 쉬어가자는 중얼거림이 이어지고, 재난 이후에도 살아남은 이들을 '단지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쓴다. 이장욱은 "이 인물들이 어쨌든 살아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살아있음으로써 어떤 방식으로든 가능성을, 빛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침잠은 한없이 가라앉는 절망이 아니라 다시 시작될 '그것'을 기다리는 일이라고 썼다.
"어떤 절망 내지는 상실을 극복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안에 더 깊이 들어갔을 때, 우리가 기다려야 할 무엇이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비관이나 절망이, 그냥 거기에 머무는 상태가 아닌 거죠. 삶을 삶으로 만들어주는 건 삶 자체라기보다 죽음이라고 하는, 삶의 외부라고 생각합니다."
이장욱은 이전에 펴낸 소설집 '트로츠키와 야생란' 말미에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만이 아니라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라는 뜻이면서 동시에 죽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라는 뜻인지도 모른다"면서 "저에게 소설을 쓰는 일은 어쩐지 죽은 사람들과 함께 소설을 쓰는 기분"이라고 쓴 적 있다. 이번 소설에서는 아예 화자가 죽은 모수의 유령이다. 그의 말마따나 따지고 보면 살고 있는 사람보다 죽어간 이들이 더 많다. 죽은 사람이 더 많은 세상에서 어떻게 빛을 찾을까. 깊이 가라앉을수록 부력은 더 커진다. 이장욱의 말.
죽음이 흔해져버린 세계에서, 국가가 스스로를 방기한 세계에서, 잔여물들만이 남아 있는 세계에서, 불안과 우울만이 남아 있는 세계에서, 바닷가를 산책하는 그이들을 상상했다. …외롭다거나 우울하다거나 하는 감정이 사치스러울 것이다. 그이들은 햇빛 속에 잠겨 들듯 더 깊은 물 속으로 침잠해갈 것이다. 그곳에서도 무언가가 발견될 것이다.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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