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플라스틱 전쟁, '호모 플라스티쿠스'의 저주 풀려면

황정원 / 2019-04-08 13:45:56
인간의 편리함 위해 개발된 플라스틱, 부메랑으로 돌아와
▲ 지난 수십 년 동안 편리하고 처리하기 쉽다는 이유로 사용돼 온 플라스틱이 인류의 위협이 되고 있다. [셔터스톡]


'호모 플라스티쿠스', 끊임없이 플라스틱을 소비하며 사는 인간을 뜻한다.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인 베이클라이트가 탄생한 이후 플라스틱은 인간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플라스틱은 가공이 쉽고 생산비용이 저렴하며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러 환경에 노출돼도 변형이나 손상이 생기지 않아 실생활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이제 플라스틱은 일상소비재, 포장재, 전자제품 등 현대인의 일상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국내 1인 소비량 132kg으로 세계 3위 국내의 플라스틱 사용량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럽 플라스틱 및 고무 제조자협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2015년 기준 132.7kg으로 조사된 63개국 중 3위로 나타났다. 1위는 170.9kg으로 벨기에, 2위는 141.9kg으로 대만이 차지했다. 주변국 일본 65.8kg, 중국 57,9kg의 두 배 이상이다. 앞으로도 플라스틱 사용량은 지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에는 145.9kg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편리하고 처리하기 쉽다는 이유로 사용돼 온 플라스틱이 인류의 위협이 되고 있다. 플라스틱이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자,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된 것이다. 플라스틱은 분해가 잘 안 돼 재활용되지 않으면 수십, 수백 년에 걸쳐 생태계를 오염시킨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비닐봉지는 썩는 데 20년이 소요되고, 플라스틱 생수병은 약 450년이 걸린다.


세계의 재활용 비율은 9%에 불과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와 조지아주립대 공동연구팀이 2018년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플라스틱이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1950년부터 2015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의 양은 약 83억t에 달한다. 그중 79%는 매립되거나 쓰레기로 방치됐고, 12%는 소각됐다. 재활용된 비율은 9%에 불과하다.

 

▲ 사이언스 어드밴스 제공


플라스틱은 식탁에 올라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한다. 주범은 미세플라스틱이다. 미세플라스틱은 일반적으로 4.75mm 이하의 플라스틱 조각을 말한다. 주로 세정력 증가를 위해 인위적으로 미세하게 제조한 치약이나 화장품 등에 포함된 플라스틱을 가리키지만, 폐기된 뒤 자연에서 풍화작용을 거쳐 쪼개진 플라스틱도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크기가 작아 하수 처리시설에서 걸러지지 않고 하천이나 바다로 흘러 들어가 수질은 물론 소금, 어패류까지 오염시킨다. 2017년 해양수산부의 소금안전성조사에서는 외국산 4종과 국내산 2종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 미세플라스틱은 결국 다양한 경로로 인간의 몸속으로 침투해 악영향을 끼친다는 우려가 나온다.

2020년엔 해안으로 최대 2050만t 흘러갈 듯

재활용되지 않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대개 바다로 흘러간다. 2015년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소개된 논문들에 따르면 지난 2010년 기준 전 세계 192개국의 해안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쓰레기는 최소 480만t에서 최대 1270만t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오는 2020년에는 두 배까지 늘 것으로 예상됐다. 2050년에는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진다는 전망도 나왔다. 몇 해 전에는 대한민국 면적의 15배에 이르는 거대한 플라스틱 섬이 태평양에 생성되기도 했다.  

 

▲ 식도에 비닐봉지가 걸려 질식사 직전까지 간 남아공의 한 거북, 고리에 플라스틱이 걸려 아사로 목숨을 잃은 돌고래 [남아공 투오션스 수족관, 브라질 매체 G1 제공]


바닷속 플라스틱은 해양 생물의 몸속을 파고들어 생태계를 파괴한다. 세계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5년 코스타리카의 한 해변에서 코에 빨대가 꽂혀 고통스러워하는 바다거북이 발견됐다. 지난해엔 먹이를 찾으러 나온 북극곰이 검은 플라스틱을 물어뜯고 비닐봉지를 뒤져 전 세계인들에게 충격을 줬다. 바로 지난 1일 이탈리아에서 8m 길이의 임신한 향유고래가 죽은 채로 해변에 밀려왔다. 죽은 고래의 위장에서는 비닐봉지, 그물망, 접시 등 플라스틱 쓰레기가 22kg가량 나왔다. 지난달 15일에도 필리핀 남부 해안에서는 길이 4.6m의 민부리고래가 죽은 채 발견됐다. 이 고래 역시 배 속에서 40kg에 달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왔다.

국내 여건도 다르지 않다. 한국환경공단의 2014년 자료에 따르면 해양 제곱마일마다 플라스틱 4만6000조각이 떠다니고, 매년 적어도 1만 마리 이상의 바닷새와 10만 마리의 거북이, 돌고래, 상어 등이 플라스틱을 먹고 죽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11월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 잡힌 아귀 배 속에서는 20cm 크기의 플라스틱 생수병이 발견됐다.

해양환경공단이 2013년 발표한 '제2차 해양쓰레기 관리 기본계획 수립 연구'에 따르면 매년 17만6807t의 쓰레기가 서해·남해·동해를 통해 들어온다. 해양수산부가 2016년 여섯 차례에 걸쳐 전국 40곳을 모니터링한 결과 쓰레기의 56.5%가 플라스틱이었다.

특히 지난해 10월 발표된 전라남도의 '해양쓰레기 발생량 조사'에 따르면 전남 해역에 연간 1만8000t에서 3만 5000t의 쓰레기가 유입되고, 8만7000t의 쓰레기가 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여수·신안·고흥 등지에 있는 무인도의 쓰레기는 4120t에 달한다.

플라스틱 폐기물은 토양 오염의 주범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배출되는 비닐봉지, 페트병, 일회용 컵·빨대, 생활용품, 배달음식용 비닐랩 등 플라스틱 폐기물로 토양이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건국대학교 연구팀은 토양 내 미세플라스틱에 의해 흙 속 생물의 움직임이 방해받고 생물 행동에 교란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규명하기도 했다.

재활용 30%…쓰레기 수출량도 90%나 급감

환경부의 '가정 생활폐기물 발생 현황'을 보면 2017년 플라스틱 생활폐기물 배출량은 하루 평균 4629t으로 2015년 3873t, 2016년 4232t에서 꾸준히 증가했다. 또 전체 폐기물에서 플라스틱이 차지하는 비율 역시 2015년 8.9%, 2016년 9.3%, 2017년 10.2%로 늘어났다. 이처럼 국내의 경우 플라스틱 소비량이 많을 뿐만 아니라 폐기되는 양도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재활용률은 30%에 불과하다.

국내 쓰레기 처리에 대한 어려움도 급증하고 있다. 중국이 지난해 1월부터 폐플라스틱 등 24종의 쓰레기 수입을 전면 중단하면서 우리나라는 플라스틱 쓰레기 수출량이 90%나 급감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4월엔 서울·경기·인천 지역 재활용품 수거 업체들이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폐비닐, 폐스티로폼 등의 수거를 거부하면서 '재활용 폐기물 대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재활용 쓰레기 수거 현장에는 비닐봉지,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등 쓰레기들이 넘쳐났다.

또 한국 쓰레기가 필리핀에 불법 수출됐다가 돌아오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해 7월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수출된 6500t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관세 당국에 신고된 것과 달리 재활용이 불가능한 유해 폐기물이란 사실이 적발돼 그중 일부인 1200t이 지난 2월 초 평택항으로 반송됐다. 국내 폐기물 처리의 심각한 실태가 드러난 것이다.

 

▲ 2018년 11월 28일 마닐라 소재 필리핀 관세청 앞에서 에코웨이스트연합 환경운동가들이 한국에서 불법 수입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즉각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유럽의회, 플라스틱 병 90% 재사용 의무화

플라스틱의 위협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세계 주요 국가들은 최근 플라스틱 규제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의회는 오는 2021년부터 포크, 나이프, 숟가락, 젓가락과 같은 식사 도구와 접시, 빨대, 컵 등 플라스틱으로 만든 10개 종류 일회용 제품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지난달 27일 통과시켰다. 법안에는 오는 2029년까지 플라스틱 병의 90%를 분리수거해 재사용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플라스틱 병을 만들 때 재생 플라스틱 소재를 2025년까지 25% 이상 포함해야 하며, 2030년부터는 30% 이상 포함해야 한다.

영국은 오는 10월부터 플라스틱 빨대와 면봉 등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의 유통과 판매를 금지하고, 플라스틱이 포함되지 않은 대체재 사용을 추진할 예정이다. 헝가리는 유럽연합(EU) 국가 중 최초로 플라스틱 비닐봉지에 세금을 부과한 나라로, 2021년부터 플라스틱 비닐봉지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 프랑스도 2020년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컵·접시,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미국도 주 정부 단위에서 다양한 플라스틱 규제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2016년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했다.

미국 하와이 주 정부도 플라스틱 쓰레기 감축을 목표로 오는 2022년까지 모든 식당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 채택을 앞두고 있다. 플라스틱 병과 빨대, 식기류, 스티로폼 등이 제재 대상에 포함 된다. 법안이 통과되면 하와이는 주 전역에서 식당 내 플라스틱 사용을 전면 금지한 첫 사례가 된다. 플로리다, 뉴저지주 등도 주 차원에서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를 추진 중이다.

일본도 플라스틱 제품 줄이기에 나섰다. 올해부터 친환경 플라스틱 개발 사업을 지원하고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종이 제품으로 전환하는 기업에는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발리도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제한하기로 했다. 발리는 지난해 12월 플라스틱 빨대와 스티로폼, 비닐봉지의 사용을 금지하겠다는 내용의 규제안을 채택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또 올해부터 플라스틱 용기에 세금을 매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 일회용 빨대 등도 단계적 사용 금지

우리 정부 역시 플라스틱과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환경부는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2022년까지 일회용 컵과 비닐봉지 사용량을 35%로, 2030년까지 플라스틱 발생량을 절반까지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이 일환으로 지난해 9월 카페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을 규제한 데 이어, 일회용 빨대 등도 단계적으로 금지하고, 과대포장도 억제한다.

이달 1일부터는 전국 대형 백화점·마트·쇼핑몰과 매장 크기 165㎡ 이상의 슈퍼마켓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고객에게 일회용 비닐봉지를 제공하다가 적발된 매장은 위반 횟수에 따라 최대 30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태료 부과나 전면 금지와 같은 규제만으로 플라스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현재 주로 추진되는 방식이 플라스틱 품목에 따라 어떤 제품은 사용을 금지하고, 어떤 제품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어떤 제품은 기업과의 협약으로 사용을 줄이는 식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플라스틱 종류가 다양할 뿐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품목도 지속해서 늘어나 규제가 끊임없이 늘어나야 하는 한계가 있다"면서 "기업 등 이해 관계자를 개별적으로 설득해야 하는 문제도 있기 때문에 규제만 가지고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홍 소장은 "근본적으로는 소비자들이 플라스틱을 남용하는 소비문화를 지양하고, 규제 이전에 일회용품을 많이 쓰는 업체들을 대상으로 강력한 항의나 소비 거부 등 소비자 운동도 함께 해야 한다"면서 "그래야만 기업들 스스로가 정부 규제 이전에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고자 노력하는 토양이 조성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KPI뉴스 / 황정원 기자 hjw@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황정원

황정원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