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추방된 공간'으로 찾아든 개와 함께 경험한 삶
노쇠한 육신을 직시하며 노년의 글쓰기 의미 탐구
"기쁨이란 최악의 순간에도 떨어지는 섬광 같은 것"
늙어서 쇠락해가는 것은 지상 모든 생명체의 숙명이다. 생명체뿐 아니라 사물조차 마찬가지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문제일 뿐 세상 모든 것은 결국 마모되고 풍화돼 사라진다. 그 과정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그 서글픈 숙명의 길에서도 기쁨은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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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에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뒤 팔순을 넘겨 펴낸 장편으로 '페미나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클로디 윈징게르. [위키미디어] |
프랑스 소설가이자 조형예술가인 클로디 윈징게르(Claudie Hunzinger·84)는 팔순을 넘어선 작가다. 프랑스 알자스 지방 보주산맥에 있는 방부아 숲속의 낡고 오래된 집으로 배우자와 함께 젊은 시절 이주해 양을 기르며 살았다. 교사 생활을 하다 그것마저 접고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낸 남자와 둘이서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추방'돼 산속 깊숙한 곳에서 나무와 동물과 더불어 살았다.
책을 모티브로 퍼포먼스를 벌이는 조형작가로도 살았다. 그의 남자는 책속에 파묻혀 세상과 절연된 채 살아가는 인물로 두 사람은 '무구하고 순수한' 추방자의 삶을 자청한 캐릭터다. 윈징게르는 70세에 처음 소설을 발표했고, 팔순을 훌쩍 넘긴 근년에는 숲속에서도 더 깊숙한 곳의 '부아바니'(추방된 숲)로 들어가 '상실'과 '늙음'을 직시하며 세상의 폭력으로부터 도피해온 개 '예스'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낸 소설 '내 식탁 위의 개'(김미정 옮김·민음사)로 프랑스 3대문학상 중 하나인 페미나상(2022)을 받았다. 식탁에 인간과 다른 종을 초대하는 표제가 함축하듯 이 소설은 추방된 숲에 찾아온 개에게서 '순간의 기쁨'을 배운 작가의 일상이 담겨 있다.
부아바니 낡은 집 꽃대 아래로 상처받은 개가 찾아든다. 암캐의 성기 부분이 찢어지고 짖물러 세상의 몹쓸 폭력으로부터 당한 상처를 짐작케 한다. 털북숭이 양치기개인 이 생명을 환대하고 상처를 치유하려 애썼지만 그냥 사라지고 만다. 도시에 책 관련 행사 때문에 나갔다가 열차 파업으로 늦게 귀가했는데, 남자와 개가 그녀를 나란히 맞았다. 그녀의 귀가에 맞추기라도 한 듯 그 개가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개의 이름을 '예스'라고 짓는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의 마지막 문장 '그렇다, 나는 예스라고 말했다'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순수한 긍정의 의미가 느껴지는 이름처럼, 이 개는 상처가 치유되고 털 속에 우글거리던 진드기가 사라진 뒤 천둥벌거숭이 아이처럼 폭발적인 기쁨을 수시로 떠뜨린다. 쇠락해가는 늙은 여자는 '예스'와 함께 순간적인 기쁨의 묘미를 온몸으로 체득해나간다.
나는 우리 자신의 존재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세상에 거의 없다는 사실을 절망에 가까운 심정으로 경험하는 중이었다. 기쁨을 감각하는 것. 나는 예스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었다. 예스가 바로 기쁨이었으니까. 기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위로 떨어지는 섬광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오는 것이다. 전적으로 과분한 것. 그 섬광은 최악의 순간일지라도 예외가 없다. 예를 들어, 진흙탕 같은 전투 중에도 불현듯 살아 있음을 느끼지 않는가.

그녀는 인간이라는 종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다른 종과 다를 뿐이다. 그녀는 그 작은 개 예스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등한 태도로 자신을 쳐다본 순간을 떠올린다. 그녀는 '내가 대등함을 발견한 계기도, 그걸 나에게 상기시켜준 계기도 바로 그 개의 눈'이었다고 썼다. 인간들이 복작거리는 세상으로부터 떠나와 '추방된 숲' 부아바니에서 살아가는 그들 늙은 커플의 속성은 어떻게 규명되어야 할까. 그녀는 "사상 따위는 치워버려, 철학하려고 하지 마, 이론을 만드는 건 말 할 것도 없고, 너는 그냥 너의 가시덤불로 돌아가 자연 상태로 다른 종들과 함께 순간들을 누려" 라고 되뇌인다.
프랑스어로 '추방된 숲'이라는 의미를 지닌 '부아바니'를 발견한 것은 소피가 그녀의 남자 '그리그'와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그녀에게 실제로 그곳은 세상으로부터 추방된 곳, 온갖 서글픈 세상사로부터 멀리 떨어진 장소로 보였다고 썼다. 그곳에서 '자본주의가 내팽개친 충적세(沖積世·신생대 제4기의 마지막 시기로 약 1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이른다)의 한 조각' 같은 오래된 집을 발견했고, 그들은 이곳으로 이주했다. 그리그는 '죄 많은 세상에서 내쫓긴 거'라고 말했다. 그들은 추방당한 곳에서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랐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연유로 주변부에 우선적으로 소속감을 느끼는 것인지 자문한다.
동물의 세계를 마주할 때도 똑같이 주변부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 사실에 꽤나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 순간 내가 한 인간을 제대로 마주하는 일이, 나를 따르는 개의 눈 속으로 나 자신을 피신시키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나는 순식간에 그 개와 더불어 도망칠 것이다. 대번에 나 자신에게서 튀어나와 개에게 합류할 것이다. 네 발로 도망갈 것이다. 달아날 것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을 하나의 종으로 제대로 태어나지 못한 비정상적인 존재로 느꼈다'고 되뇌인다. 과연 그녀가 비정상일까. 다른 종들을 오만하게 굽어보며 폭력적인 삶을 구가하는 인간들이야말로 생태계의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정상이 아닌 상태일 터이다. 소피처럼 생각하는 존재가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기대하던 그녀가 호주 작가 재닛 프레임의 '또 다른 여름을 향해'라는 소설에서 '자신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니며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철새'라고 쓴 문장을 발견하고, 그녀의 다음 소설 제목 '내 책상 위의 천사'를 빌려와 '내 책상 위의 개'를 썼다.
육십 년 넘게 같이 살아온 남자 그리그와 더불어 늙어가는, 쇠락해가는 자신들의 육신을 정밀하게 느끼며 기록해나가는 대목들도 이 소설의 빛나는 부분이다. 털북숭이 개 '예스'와 늙은 남자 그리그 사이에 누워 그녀는 생각한다. '나는 둘 사이에 누운 채 상식적이지 않은 그 상황에 대해, 종 사이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며 홀로 웃고 있었다. 왼손이 닿는 곳에 어린 시절의 친구이며 이제는 기진한 노인, 쇠약해진 나의 형제이자 동지의 몸이 있다는 건 경이로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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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알자스 지방 숲속에서 은둔하며 글쓰기를 해온 클로디 윈징게르. [윈징게르 누리집] |
그녀는 예전에는 꽃다발이 생기를 잃는 즉시 집어던져버렸지만 꽃병에서 꽃이 말라 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꽃들의 아름다움이 스러지는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 긴 꽃대가 오그라들고, 꽃봉오리가 늘어지고, 어깨가 쇠약해지고, 등이 굽는 모습을. '아름다움의 비밀이 이미 까발려졌지만 그것을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모습을. 비통하기 이를 데 없는 과정이었다. 괴어서 썩은 물. 꽃잎들이 잔뜩 떨어진 탁자. 해체를 받아들인 꽃다발이 모든 것이 마비된 끔찍한 미라가 되어 버리자 나는 범죄자를 인도하듯 그 송장을 들고 퇴비에 뿌리러 갔다. 거기서 나의 분신들과 닮은 그 꽃들이 머리와 다리를 한 방향으로 하고 퇴비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정도로 꽃의 내면과 나의 내면이, 꽃의 몸과 나의 몸이 구별되지 않았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죽음을 몰아내기 위한 의식' 같은 것일지 모른다. 글을 쓰기 위해 한눈을 판 사이에 '예스'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폭력적인 세상과 낡아가는 노쇠한 육체 속 디스토피아에서 그나마 순수한, 순간적인 기쁨의 덩어리로 날뛰며 삶을 각성시켰던 그 존재의 사라짐은 막막함 그 자체이지만,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단호하고 비장하다.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로도 나는 끄떡없이 글을 쓴다.'
윈징게르의 소설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번역자 김미정은 "원서를 검토하다가 운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면서 "시적이고 파편적인 문장들로 독자를 이리 저리 끌고 다니는 동안에도 이 책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고 썼다.
'오늘날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이 든 여성이란 어떤 존재인가? 노화로 인해 자기 몸에 대한 통제를 잃게 된 우리는 외부의 자극과 경험을 어느 정도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이 시점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책과 서점이 사라지는 시대에 작가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종의 소멸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세계의 붕괴 앞에서 희망은 존재하는가? 인간과 동식물, 종 사이의 경계와 합일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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