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분신 계기로 한 평생 민주화·노동운동 해온 대부
제도권 진입엔 실패…최근엔 국회의원 특권 폐지에 힘써
총선 후 책 내고 경고…"정치, 도덕성 없이는 미래 없다"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79세.
장 원장은 이날 오전 1시 35분쯤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세상을 떠났다. 담낭암으로 입원해 투병한 지 한달 만이다.
고인은 반세기 넘는 긴 세월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온몸으로 투쟁해온 한국 재야 민주화운동의 대부다. 생전에 '영원한 재야'로 불렸는데, 결국 그렇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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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 [뉴시스] |
고인은 지난 7월 페이스북을 통해 담낭암 말기 진단 사실을 공개하며 "당혹스럽지만 살 만큼 살았고 한 만큼 했으며 또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 아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밝혔다.
또 "자연의 순환질서 곧 자연의 이법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해온 사람이기에 자연의 이법에 따른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했다.
고인은 1945년 경남 밀양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마산공고를 나와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들어갔다. 재학하던 1970년 11월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분신자살 소식을 접하며 학생·노동운동에 투신했다.
1972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을 비롯해 유신 독재 반대 시위, 민청학련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민중당 사건 등으로 70~80년대 수배와 도피, 투옥과 석방을 거듭했고 1995년에야 대학을 졸업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민주화 보상금이 지급됐으나 고인은 일절 수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 된 도리로 안 받은 것"이라고 했다.
재야운동의 한계를 느낀 뒤 진보정당 운동에 뛰어들었다. 1989년 민중당을 시작으로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을 창당했다.
직접 선수로도 나섰다. 1992년부터 2020년까지 여섯 차례 총선과 한 차례 재보선에 출마했다. 세 차례 대선 출마도 했다. 그러나 제도권 정치 진입 목표를 이루는데 모두 실패했다.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이 생긴 이유다.
최근에는 '신문명정책연구원'을 만들어 저술과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 등에 힘써왔다. 작년부터는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 활동하며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등을 촉구했다.
22대 총선 이후엔 '위기의 한국-추락이냐 도약이냐'를 집필해 정치권을 질타했다. "비전도 전략도 없이 오직 집권욕에만 사로잡힌 여야가 적대적 공생 관계를 이뤄 나라와 민생을 거덜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도덕성과 인간성을 회복하지 않고는 이 나라에 미래는 없다"고 경고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씨와 딸 하원, 보원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다.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으로 치러지고 발인은 26일, 장지는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이다.
KPI뉴스 / 박지은 기자 pje@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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