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격차 기업 R&D센터 수도권 설치해 해외 인재 적극 유치해야"
"영국‧프랑스‧일본 등은 수도권 중심 재개발로 새 성장 동력 찾아"
"윤 대통령 주변 'NO' 말하는 참모 없어…왜곡된 보고가 문제 만들어"
대한민국은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다. 여성 평균 출산자녀 수(합계출산율)가 0.7명이다.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없다. "국가 소멸"이란 섬뜩한 경고가 진즉 나온 터다. 최우선으로 대응해야 할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정부도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그러나 저출생 극복에 '진심'인지는 모르겠다. 의지도, 역량도 미덥지 않다. 당장 예산이 말해준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380조 원을 썼다고 한다. 그 돈 다 어디로 간 건가. 출산율은 왜 떨어지기만 하나.
그 예산부터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재정경제부 장관, 교육부총리를 지낸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일갈이다. "380조 원은 교육‧복지 예산이 총망라된 금액"이라는 것이다. 저출생 예산 380조란 결국 '이렇게 돈 쏟아부었다, 이렇게 노력했다'고 하는 포장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런 논리면 서구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20배 가량 더 썼을 겁니다. 많이 쓰지도 않았지만 제대로 쓰지 않은 게 더 문제예요." 김 전 의장은 "저출생 문제, 이대로 방치하면 정말 큰일난다"고 했다.
김 전 의장은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을 끝으로 50년 공직 인생을 마감한 터다. 그런데 저출생 극복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저출생 해결사'를 자처한 모습이다. "50년 공직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우리 사회에 기여할 일로 고른 것이 저출생"이라고 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김 전 의장 사무실을 찾아 그의 저출생 극복 비책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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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저출생 극복 방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
현실은 녹록지 않다. 원인과 해법 모두 복잡하다. 혹자는 저출생을 가리켜 과잉 경쟁이 빚어낸 결과라고 말한다. 치솟는 집값과 사교육비 걱정에 신혼부부들 스스로 2세 갖기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난제 중 난제다. 김 전 의장의 표현을 빌리면, 지금 대한민국은 '서서히 끓고 있는 냄비 속 개구리'다. 이대로면 암울한 미래는 기정사실인데, 모두가 심각성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김 전 의장은 그동안 역대 정부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유를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찾았다. 단기 치적에만 급급하다 보니, 저출생 등 장기 과제는 아예 손도 못 대왔다는 진단이다.
그래서 '김진표 저출생 해법'의 정점이자 결론은 '개헌'이다. 헌법에 저출생 극복을 위한 국가 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자는 거다. 지키지 않을 경우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도 했다. 김 전 의장은 "권력구조 개편 등은 잠시 미뤄두고 '원포인트 저출생 개헌'을 다음 대선 때 하자"고 제안했다. 다음은 김 전 의장과의 일문일답.
ㅡ역대 정부마다 저출생 문제를 많이 다뤘다. 그런데도 성과가 없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그동안 말로만 저출생 문제를 떠들었지 어느 대통령도 제대로 투자하고 사업을 실천한 사람이 없다. 5년 단임제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저출생 문제 해결에 성공한 나라들은 예외 없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사회가 공동 부담해줬다. 그런 나라는 효과를 봤고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ㅡ최근 여러 자리에서 윤석열 정부 저출생 대책을 호평했다. 어떤 면에서 다르다 보나.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실천하려고 하지 않나. 저출생 문제를 전담하는 장관을 만들고 그 사람을 사회부총리로 삼아야 한다고 건의했는데, 정부가 내 주장을 받아들여 인구전략기획부를 만들겠다고 한 건 큰 변화다."
ㅡ본인 제안을 90% 이상 윤석열 정부가 받아줬다고 했는데, 채택되지 않은 나머지 10%는 무엇인가.
"가장 큰 게 개헌이다. 대통령이 저출생 관련 헌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체적으로 법률적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탄핵도 시킬 수 있어야 된다. 그런 식으로 할 게 아니면 헌법을 고칠 필요가 없다. 보육, 교육, 주택 문제에 대해 정부가 집행해야 할 의무를 헌법 조문에 명확히 적어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보육 정책이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사 인건비를 국가가 100% 지급하게 하고, 지급하지 않으면 책임지게 만드는 것이다. 완전유연근무제를 실시하고 그로 인한 기업의 손해는 중견 기업이나 비영리성 공공 기관까지 정부가 보존하게 해야 한다. 또 공공 임대 주택 건설이 중요한데, 고의로 안 짓거나 또 지어도 싸구려로 만들면 탄핵으로 법적 책임을 묻게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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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저출생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
ㅡ다음 대선 때 개헌하자고 했다. 구체적인 방안은.
"전임 국회의장 6명이 모두 개헌하겠다며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는데 다 실패했다. 개헌하려면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찬성이 필요하다. 여론조사에서 80~90% 지지를 받아야 가능한데, 조사해 보면 개헌 찬성 여론이 55~65% 정도여서 동력이 안 만들어진다.
다음 대선 때 국민 80~90%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건 '저출생 개헌'밖에 없다. 욕심 부리지 말고 저출생 개헌에 집중하자는 게 내 주장이다. 그것에 여야가 합의하고 여야 관계가 좋아지면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것 정도는 추가할 수 있겠지만, 지금부터 권력구조 갖고 논쟁을 벌이면 개헌은 안 된다."
ㅡ수도권 주변에 효율성 있는 공단 조성도 제안하셨다. 수도권 과밀을 더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것 같다.
"우리 경제는 후발 경쟁국들에 추격당하고 있다. 세계에서 확실하게 1등을 하는 분야를 늘리고 초격차를 만들려면 세계적인 학자와 엔지니어를 모아 인재 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인재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산다고 할 때 비수도권에 가겠나. 절대 안 간다.
R&D(연구‧개발)에는 9단계가 있는데, 개념 설계에 해당하는 1~4단계는 수도권에서 해야 한다. 그다음에 시제품을 만들고 굴뚝 공장을 지어서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건 비수도권에서 해야 한다. 영국, 프랑스, 일본도 지역 균형 발전 문제 때문에 수도권 투자를 줄이고 지방으로 가자는 정책을 폈다가 중국에 밀리자, 크게 반성하면서 전략을 바꿨다. 영국은 런던, 프랑스는 파리, 일본은 도쿄-요코하마 회귀 전략을 써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ㅡ평소 우리 관료 시스템을 높이 평가해 왔다. 최근 의정 갈등 정국에서 관료들이 제 역할을 못 하는 것 같다는 지적이 있다. 최근 의정 갈등을 어떻게 보는가.
"장관들이 대통령이 잘못 생각하고 있을 때 '노'(NO)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무도 노라고 안 한다. 물론 대통령 책임이 크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달리 윤석열 대통령은 그런 얘기를 하면 막 화를 낸다는 소문이 들린다.
의정 갈등 만 해도 그렇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늘 한 얘기가 있다. 정치인은 국민과 같이 호흡하면서 반발짝만 앞서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옳은 정책이라 해도 지금 국민 생활이 의료 개혁으로 인해 위기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평가 아닌가. 의사 수를 늘리는 건 나도 동의하지만, 추진 방법에 있어서는 국민과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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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저출생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
ㅡ과거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현 정부의 한일 외교 관계를 어떻게 보나.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 특히 북한의 위협이 있는 마당에 한미일 동맹을 강화한 건 외교적인 업적이다. 그래도 일본으로부터 더 많은 반성과 사과를 받아내야 하고, 적어도 일본이 더 강하게 독도 영유권 주장을 펼치는 걸 허락하면 안됐다.
윤석열 정부의 일부 장관급들 얘기를 들어보면 '과거사 사과 한 번 더 받으면 뭐 하냐', 이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나. 그건 그렇다고 쳐도, 왜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 주장을 더 세게 하게 두나. 그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그런 것들이 부족하니까, 이 나라가 일본에 그냥 모든 걸 내주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ㅡ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불참했고, 국회가 법안을 내면 거부권을 계속 행사하고 있다.
"정치라는 게 어느 정도 갈등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대립하고 갈등하다가도 대화하고 타협하는 것이 정치의 순로인데, 지금은 대립과 갈등을 확대 재생산만 하는 것 같다. 국회의원들이 가장 듣기 좋아하는 것이 '헌법기관'이라는 얘기다. 국민의 대표면 누구의 의사를 대표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왜 팬덤의 노예가 되고 정당의 입장만 강변하나. 헌법기관 대접을 받으려면 헌법기관답게 행동해야 한다.
올바로 안 하면 여당 의원도 당이나 대통령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진정한 헌법기관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당 대표가 잘못하는 게 있으면 얘기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위해 결단하고 대타협을 만들어내는 큰 정치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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