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 확산되는 게 아니라 그냥 찻잔 안에서 맴돌고 있더라. 이건 아니다 싶었다."
3년 임기를 마친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은 홀가분해 보였다. 14일 퇴임식에서 "고맙다. 행복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미련없이 일했고, 자부할 성과도 이뤘기 때문일 터이다.
개혁가 김헌동에게 지난 3년은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영혼 바쳐 일한 시간이었다. 동시에 칼자루 쥐고 뿌리깊은 토건 카르텔과 맞짱뜨던 시간이기도 했다.
시민운동가에서 공기업 수장으로 변신한 김헌동은 과감히 혁신에 나섰다. 업계에서 금기시하는 분양원가 자료를 공개했고, 시공을 마친 뒤 아파트를 판매하는 '후분양제'를 실시했다. 또 이른바 '반값 아파트'로 불리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을 공급했다. 이로써 서울에서 3, 4억 원대 아파트 공급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모든 계획이 뜻대로 되진 않았다. SH공사의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을 서울 밖으로 넓히려 애썼으나 무위에 그쳤다. 광명·시흥과 과천, 남양주 왕숙, 하남교산 등 3기 신도시 개발 참여의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혁신에 부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방해했고, 심지어 서울시 간부들도 냉소적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너무 컸다. "조직적으로 방해하면 방법이 없다"고 한계를 토로했다. 결국 연임 도전을 포기했다. "내가 여기 있으면서 계속 갈등을 빚는 게 맞는지 고민했다"고 했다.
퇴임으로 김헌동의 주거혁신은 일단 멈췄다. 그렇다고 끝은 아니다. 김 사장은 "기득권 카르텔'과의 싸움은 계속"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값 안정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가서 더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토건 기득권 카르텔은 거대하다. 토건관료,건설업계,언론,정치가 연결된 거대 결합체다. 무슨 힘으로 전쟁을 이어갈 것인가. 김 사장은 이런 물음에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깨는 데는 쇠막대기가 아니라 바늘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바늘로 한 자리를 톡톡 계속 때리다 보면 커다란 얼음도 갈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김 사장 인터뷰는 퇴임 하루전인 13일 서울시청 인근 스마트워크센터에서 두 시간 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김 사장과의 일문일답.
대담 = 류순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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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헌동 SH공사 사장이 13일 서울시청 인근 스마트워크센터에서 K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충현 기자] |
ㅡ 성과가 적잖다.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래 계획했던 것들은 작년 이맘때 이미 모두 마쳤다. 이후로는 해온 것들을 뿌리내리게 하고 싶었다. 서울 집값이 서울에서만 해결되진 않는다.
서울 집값은 수도권과 연결돼 있고, 다시 전국으로 연결된다. 3기 신도시에 SH공사가 참여해서 서울로 출퇴근할 필요가 없는 도시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국무총리실과 국토교통부에 여러 차례 공문을 보냈는데 관심이 없더라."
ㅡ 중앙정부 반대를 무릅쓰고 3기 신도시 참여를 관철하려 한 이유는.
"지금이 집값을 잡기에 가장 좋은 골든타임이기 때문이다. 수도권에 30평 아파트가 3억 원대에 월 임대료 20~30만원 받고 쏟아져나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시라. 거품이 쏙 빠질 것이다. 경기 신도시들 30평짜리 건설원가가 1평당 800만~900만 원이다. 30평이면 3억 원이 채 안 된다. 땅은 평당 100만 원씩, 10평이 들어가니까 1억 원이면 된다. 계산해 보면 4억 원으로 아파트 공급할 부지가 이미 확보가 돼 있는데 제대로 안 하고 있지 않나."
ㅡ 중앙정부 소통은 서울시에서 도와주면 되지 않나.
"서울시 간부들은 별 관심이 없다. 시 공무원들 눈에는 이것이
오세훈 시장의 정책이 아니라 '김헌동 정책'처럼 보인 것
같다. 혁신이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찻잔 안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한번
들어가면 20~30년씩 장기근속하는 철밥통 공무원 카르텔을 깰 수가 없다. 그 카르텔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보여준 것이고, 나는 그걸 3년간 봐온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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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PI뉴스 류순열 편집인(왼쪽)과 인터뷰하는 김헌동 사장. [유충현 기자] |
ㅡ 관료들이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책에 비협조적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업자 카르텔의 입김이다. 국토부 같은 곳에서 국장급 관료들이 퇴직하면 건설업자협회, 감리협회, 주택업자협회, 연구원 같은 기관으로 간다. 그 조직들이 보증 업무까지 하기에 수조원의 자금력도 갖고 있다. 그렇게 20년간 주택가격을 억지로 떠받쳤다. 대통령이나 정치권에서 카르텔을 깨 보려고 하면 잠깐 하는 척 하다가 또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는 구조다."
ㅡ 오세훈 시장이 힘을 더 실어주지 않은 건가. 서운하시겠다.
"아니다. 오 시장에게는 개인적으로 고맙다. 내가 3년간 각종 정책을 추진할 기회를 줬다. 시장은 내가 하는 일에 신뢰를 보내줬지만, 서울시 간부들과 국토부가 조직적으로 저항하면 방법이 없는 거다. 고위관료들은 토건 카르텔 네트워크 안에 있다. 이미 많이 가진 사람들을 계속 즐겁게 해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고민하고 생산한다."
ㅡ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반 '카르텔 혁파'를 외쳤다. 왜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보나.
"깨 본 사람이 있어야 한다.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하고, 실행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게 받쳐주지 않으면 깨려다가 깨지고
가는 거다. 대통령 밑에 참모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앉혀두지 않았나. 우리 사회에 기득권과 소위 '맞짱'을 뜨면서 사는 사람은 극소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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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PI뉴스와 인터뷰하는 김헌동 사장. 오른쪽은 유충현 기자. [류순열 기자] |
ㅡ 최근 주택시장의 흐름은
어떻게 보시나.
"공급 홍수 상태다. 팔려고 내놓은 매물이 서울에만 10만 채가 넘는다. 거기에 추가로 신도시를 짓고 있다. 반면 거래는 한 달에 2000채 정도밖에 안 된다. 서울에 400만 채 있으니 연간
20만 채, 월 2만 채 거래돼야 적정선이다. 10분의 1 수준밖에 거래가 안 된다는 거다. 현재 집값 수준은 매우 위험한 지점인데도 온 국가가 이걸 떠받치니 사람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를 정확히 지적해 주는 언론과 전문가가 거의 없다."
ㅡ 시민운동가 시절부터
매입임대 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 왔다. 최근 정부가 매입임대를 활용한 '빌라 무제한 매입'에 나서고 있는데 어떻게 보고 있나.
"2023년 초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매입임대주택을 두고 '내
돈이면 안 산다'고 했다. 그런데 후임 장관(박상우)이 빌라를
11만 채 사겠다고 한다. 아파트 부지 30만 호 지을 땅을 확보해 뒀는데, 아파트는 짓지 않고 서울에
와서 20평짜리 빌라 하나에 5억씩 주고 산다. 그러는 이유가 있다. 서울 빌라 값이 4억, 5억 치솟으면 아파트값이 떠받쳐진다. 그러면 경기도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준비한 아파트가 6억~7억에 팔린다. 문재인 정부로 돌아가는 거다."
ㅡ 퇴임 후 계획은.
"새로운 시민운동가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다. 특별히 많은 예산이나 자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인력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소수정예로 얼마든 파괴력 있는 정책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집값을 안정시키고 대한민국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골든타임 놓치지 않기 위해 나가서 더 열심히
하려 한다.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깨는 데는 쇠막대기 필요한 게 아니라 바늘이 필요하다. 한 자리를 바늘로 계속 톡톡 때리면 어마어마한 얼음도 쫙 금이 간다."
KPI뉴스 /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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