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수 아트페어 '솔드아웃'...해외서 더 큰 각광
고단한 삶 속 미술에만 전념…돌연 세상 비운 '천재'
유족, 강원도 양양 '이동수 갤러리'에 남아 흔적 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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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수, Flow-Bowl Oil on Canvas 116.8 x 72.7 2012 [SayArt(세이아트)] |
검은 바탕의 캔버스 위에 빈 사발이 공중에 붕 떠 있다. 조명이 서서히 줄어들고 관객의 초점이 흐트러지자, 사발은 일순간 캔버스 속 어둠으로 사라진다. 심연인 듯 관측 불가능한 우주인 듯 캔버스엔 이제 흑암만 가득하다. 관객은 '아상(我相·Ego)'를 떨치고 '진아(眞我)'를 알아차린 듯 시공간 초월의 신비를 맛본다. 그의 작품은 명상이다.
작품은 고 이동수 화백의 '사발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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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수, Flow-Bowl Oil on Canvas 116.8 x 72.7 2012 [SayArt(세이아트] |
그는 도대체 무얼 그린 것일까. 주연인 줄 착각하기 쉬운 사발은 그저 장치에 불과했다. 오히려 칠흑 같은 배경이 마땅한 주연이었다. 작품이 보여주는 캔버스 속 시간과 공간의 묘한 교감에 관객은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일체 무상'을 느끼는 듯하다.
그의 그림들은 르네 마그리트(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 1898-1967)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1928-29)와 같이 대상 자체를 재현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가 그린 사발의 재현은 사물의 조형적 아름다움이나 미술사적 조류에 편승한 형식주의적이 아니란 뜻이다. 이동수 화백의 '플로우-보울(Flow-Bowl)'은 하찮은 그릇 한 점에도 인연이 있고, 그것이 다시 어떤 존재를 되새김질할 수 있는 하나의 '은유'나 '상징'일 수 있다. 아예 표면에 드러나는 '에고' 같은 형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너머 무한한 흑암이 '본질이자 진아'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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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수, Flow-Kettle, 162x112cm, 2017, [SayArt(세이아트)] |
한 미술평론가가 그의 작품을 두고 "어둠에서 찰나의 빛을 구해 선사의 숨결을 담아냈다"는 얘기도 헛칭찬이 아니다. 그의 작품엔 표면적으로 그릇, 주전자, 책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대상은 모두 공중에 붕 떠 있다. '나랄 것 없는' 주체를 앞에 내세워 그 너머 무한의 철학적 깨달음을 '시간의 흐름'이란 초월성으로 반죽했다. 그는 생전에 "재현된 이미지 자체에 크게 집착하지는 않아요, 그 너머의 암시성 또는 알레고리(Allegory)라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그리고 싶었죠"라는 말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의미를 전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런 공중에 붕 떠 우주를 부유하는 듯한 사발, 주전자, 책 같은 실체는 '에고'에 집착했던 자신에 대한 지난날의 반추일 수도 있다.
그의 삶은 고단했다. 청년 시절 화가를 꿈꿔 상경했지만, 현실은 제대로 된 화실조차 구경할 수 없게 했다. 공장 생활까지 마다하지 않던 그는 끝내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정식으로 미술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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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수, Flow-Bowl Oil on Canvas, 162.2 x 97,2015 [SayArt(세이아트)] |
그래서일까. 그의 작업 방식도 자신의 삶처럼 지난한 작업을 선택했다.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사포로 수백 수천 번 갈아내는 작업을 한 달 넘게 수양하듯 반복했다고 한다. 유화이지만 마치 표면의 물감이 금세 날아갈 듯하고 대상의 끝이 마치 스스로 흩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에 사용한 '스푸마토(sfumato)' 기법과 유사하다.
이 화백은 한참이던 50대 중반에 홀연히 세상을 등졌다. 짧은 생애에도 흔적은 작지 않다. 한국 화가로는 드물게 아트파리, 스위스 스콥바젤, 비엔나아트페어,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 등 국제적인 아트페어에서 작품이 '솔드아웃'되며 국내외 컬렉터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고진감래라던가. 생전에 그는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옆에 화실을 꾸며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다. 화실 근처엔 늪지와 나지막한 동산도 있었다고 한다. 해송과 육송이 우거진 숲길을 10여 분 걸으면 동해도 볼 수 있으니, 천혜의 터였다. 매일 그는 이곳을 거북이처럼 산책하며 문득 영감이 스치면 손 스케치북을 펼쳐 들었다. 어느 날 문득 그는 밀려오는 파도의 끝없는 반복 속에서 '찰나와 영속의 동시성'을 깨달았다. 수행자라면 일종의 '견성(見性·깨달음)'의 순간이다. 이때부터 그는 작품에 흰 선들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이 선들은 파도의 영속과 찰나의 영원을 담아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마치 비행운처럼 사발 위에 남겨진 선들은 '시간의 흐름'을 형상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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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수(Lee Dongsu), Flow-Book, 162x112cm, 2017 [SayArt(세이아트)] |
그의 예술세계는 철학적인 되새김도 필요하다. 친구인 최정윤 조각가는 "그는 부분보다는 전체 혹은 사물들의 상호 관련성에 주목했어요. 생전 인터뷰에서도 모든 요소가 서로 관련돼 있다는 동양의 '종합주의(Holism)'의 개념을 말했죠. 현악기의 공명 현상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죠. 이 화백은 '빈 그릇은 탐욕스러운 이 시대에 의미가 크다'는 말로 나름의 세계관을 피력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는 그림 속 의미를 한정하는 걸 꺼렸어요. 관객들의 자유로운 사유를 방해하면 안 된다는 이유였죠"라고 회고했다.
"민들레가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 것은 자기를 온전히 사랑하기 때문이며 야생초가 만발한 들판이 아름다운 이유도 자기를 온전히 사랑할 줄 아는 온갖 꽃과 풀들이 있기 때문이다"는 작가 황대원의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를 그가 생전에 자주 암송했다며 그는 평생 온전히 바로 서려 몸부림쳤던 비운의 천재 화가였다고 최 작가는 전했다.
그의 작품은 해를 거듭할수록 그런 그의 '구도(求道)'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해마다 진화하는 자신의 내면세계에 그는 명상하듯 관조했다. 그것도 부족했을까. 그는 말년에 강원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가 더 넓은 '구도(求道)'를 향해 몸부림쳤다.
2019년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미술계에 전해졌다. 그는 세상에서 자신을 완전히 비워버렸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따질 필요도 없다. 다만 남아 있는 그의 작품들은 그가 현생의 아상(我相·Ego)을 버리고 온전한 '그 무엇'에 도달했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제 인간 세상에서 그의 흔적들은 강원도 양양에 세워진 '이동수 갤러리'나 국내외 몇몇 컬렉터의 집이나 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동수 갤러리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천재 화가를 그리워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 힘을 보태 만든 곳이다. 지금은 부인이 이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그를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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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마이애미 아트페어'에 참가한 故이동수 화백(왼쪽)과 최정윤 조각가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정윤 제공] |
최정윤 조각가는 "그의 작품은 하나의 명상이죠. 명상은 3인칭 시점에서 행하는 '알아차림'의 과정이죠. 그는 자기의 언어나 호흡으로 공기를 그려냈어요. 언젠가 깨진 그릇을 그려 보내와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얘기하던 그가 기억나요. 고단하고 치열했던 삶 속에 어떻게 저렇게 그림만 붙잡고 사는지도 때론 궁금했죠. 그는 자신을 변두리라고 치부했죠.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진정한 본류가 아닌가 싶어요"라고 회상했다.
작고 작가를 회고하는 이유는 여럿 있다. 고 이동수 화백에 대한 회고는 간단하다. 그는 몇 안 되는 작품들을 남겼지만, 그것들이 언젠가 한국 미술사에 다시 회자하거나 기록될 큰 유산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화백은 처음 스님과의 인연으로 '그릇'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당시 스님과 나눈 선문답은 작품들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듯하다.
남은 수많은 캔버스 속 화백의 그릇들. 화백은 '그릇'에 자신을 모두 채웠을까. 아니면 모두 비웠을까.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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