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자의 비애감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어"(공도연 봉사일기)
'의령 봉사왕'으로 통했던 고(故) 공도연 할머니가 별세 3년 만에 시신 기증 봉사활동까지 마무리하고, 지난 14일 남편과 함께 화장된 뒤 경상국립대학교 의대 생명존중실에 나란히 안치됐다.
1년 5개월여 일찍 타계한 남편 고 박효진 씨 또한 의대 해부학 연구를 위해 시신 기증한 뒤 그간 대학에 보존돼 있었다. 부부의 유골은 앞으로 30년간 이곳에 모셔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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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일, 고 공도연 할머니의 운구가 진주안락공원에 도착하자 유족들이 관을 붙잡고 오열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의령군 제공] |
17일 의령군에 따르면 유곡면 송산리에 살면서 '봉사왕'으로 일컬어졌던 공도연 할머니(당시 82세)는 2023년 9월 13일 자녀가 있는 창원에서 별세했다.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시신을 경상국립대 의대에 기증했다.
앞서 2022년 4월 세상을 떠난 남편의 시신 역시 같은 병원에 기증됐는데, 두 사람의 시신은 올해 7월 말 의대생 해부학 실습을 비롯해 교수진의 임상 연구에 활용됐다.
꽃다운 17살에 천막집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한 공 할머니는 뜨개질로 형편이 좀 나아진 30대부터 별세 직전까지 50년 세월 동안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헌신한 인물이다.
1970년대 초 새마을 부녀회장을 맡은 공 할머니는 사비를 털어 마을 간이상수도 설치와 지붕개량 사업에 앞장섰고, 마을 주민들은 할머니에 선행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1976년에는 송산국민학교에 '사랑의 어머니' 동상을 건립하기도 했다.
그는 1985년에는 의료시설이 없는 지역 실정을 감안해 지역에 보건진료소가 들어설 수 있도록 대지 225㎡를 직접 구입해 의령군에 기탁하는 것을 비롯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이웃돕기 성금을 기부하는 일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70대 후반부터는 35㎏의 작은 몸으로 손수레를 끌면서 직접 재배한 나물을 내다 팔고, 고물을 주워 번 돈으로 마을별 경로당에 기부하는 봉사 정신을 이어오다가 여든 두살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이런 선행과 공적으로 공 할머니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별세하기 전까지 관련 표창·훈장만 60번 넘게 받았다. 지난 2020년에는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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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 공도연 할머니가 평생의 봉사활동을 빼곡히 적어 내려간 '봉사기록 일기'. [의령군 제공] |
"가난해 보지 못한 사람은 가난의 아픔과 시련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잘살아 보겠다는 강한 신념이 있다면 반드시 방법이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없는 자의 비애감을 내 이웃들은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공 할머니가 오랜 세월 봉사의 순간들을 빼곡히 기록한 '봉사일기'에 나와 있는 글이다.
강윤식 경상국립대 의과대학장은 "(공도연 할머니 부부) 시신 기증은 의학교육과 의학 발전에 큰 힘이 되는 숭고한 나눔이자 그 자체로 엄청난 봉사다. 고인의 소중한 기증은 훌륭한 의료인을 길러내는 밑거름이 됐다"고 전했다.
공 할머니의 장남 박해곤(66) 씨는 "부모님을 떠나보낸 뒤에도 자식으로서 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며 "이제 두 분이 하실 일을 모두 마쳤다고 생각하니…이제는 정말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어머니를 기억해준 군민들께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장녀 박은숙(64) 씨는 "얼마 전 꿈에 엄마와 아버지가 깨끗한 옷을 입고 함께 나왔다. 돌아가시고 2년 넘게 차가운 병원에 계셨는데 이제 마지막 봉사까지 다 마치고 좋은 곳으로 가시는 것 같다"며 "엄마의 10%라도 닮고 싶다. 그것이 엄마의 뜻이라면 우리도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오태완 군수는 "공도연 할머니는 평생 이웃을 위한 나눔을 삶으로 보여주시고 마지막까지 봉사로 삶을 완성하신 분"이라며 "의령군민과 함께 그 뜻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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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전 공도연 할머니. [의령군 제공] |
KPI뉴스 / 손임규 기자 kyu3009@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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