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수수 노동자와 사진 신부 이야기를 남녀의 엇갈린
선택과 운명 골격으로 당대 하와이 풍경과 함께 그려내
"하와이 독립운동 당시 갈등의 뿌리 지금까지 이어져"
'고향도 등지고 나라도 잃은 몸. 당신하고 이 섬을 떠난다고 손가락질할 사람이 누가 있어요? 무서울 게 뭐가 있어요? 척박한 섬에서도 맨몸으로 이렇게 이뤘는데, 어디 간들 우리 둘이서 못 살겠어요? 뭐가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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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어로 출간됐지만 국내에서는 거의 절판상태였던 '당신의 파라아디스'를 새롭게 다듬어 재출간한 소설가 임재희. [작가 제공] |
사실 운명을 극복한다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애초에 운명이라는 어휘는 피할 수 없는, 결정된 미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저항하는 행위 그 자체로 존엄성을 과시하거나, 그 운명에 맞서는 과정에서 정체성을 분명히 찾아나갈 수밖에 없다는 맥락일 것이다. 문학과 철학의 오랜 화두인 그 운명에 저항하는 방식은 무수하거니와, 그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인물들의 천태만상이 펼쳐져 왔다.
임재희 장편 '당신의 파라다이스'(민음사)는 하와이 사탕수수노동자와 사진 신부에 얽힌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 시대를 충실히 드러내면서 자신들의 운명에 각기 대응하는 네 남녀의 서사를 곡진하게 펼쳐낸다. 2013년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으면서 출간했던 이 소설이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12년 만에 다시 출간됐다. 20세기에 접어들어 격랑에 휩싸이기 시작한 조선인의 운명은 어떤 저항과 극복의 역사를 펼쳐왔는지, 그 큰 외피 속에서 인물들의 작은 운명은 또 어떻게 전개됐는지 구체적인 실감이 느껴지는 서사다.
'강희'와 '나영'은 이른바 '사진 신부'로 하와이 사탕수수밭 조선인 노동자들을 사진으로만 보고 신랑을 정한 뒤 이국땅으로 갔다. 그곳에서 정작 사진과 다른 모습에 실망한 나영이 그 혼약을 거부하며 돌아가겠다고 나서자 강희가 짝을 바꾸자고 제안해 이들의 운명은 빛깔이 달라진다. 이후 이들이 하와이라는 공간에서 이어가는 엇갈리는 감정의 행로와 삶의 여로가 이 소설의 기둥이 되거니와, 정작 강희를 끝까지 마음에 품었던 애초의 짝 '창석'의 호소가 저 울음 같은 제안이다.
나라도 잃은 판에, 수만리 먼 태평양 가운데 타국 땅에서 누구 눈치를 보아야 하는가, 어디로 우리끼리 떠나건 간에 윤리가 무슨 상관인가, 뭐가 무서운가. 나영이라는 '생에 대한 지독한 애착'을 지닌 '이기적인' 여자, 그녀는 과연 운명에 맞서 어떤 전리품을 얻었을까. 모두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포즈를 취한 착한 '강희'는 끝내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태도만 보이고 말았을까. 뒤늦게라도 자각을 했을 때 그녀가 깨달은 사랑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이 중심 서사를 축으로 강희의 신랑 '상학'과 두 딸을 데리고 하와이로 온 당찬 '캠프나인'의 어머니 '심영', 무당 순례, 태호와 홍석, 스텔라와 주디로 이어지는 인물들이 하와이 서사를 탄탄하게 구축해낸다. 이승만 파와 박용만 파로 나뉜 하와이 독립운동의 안타까운 현실도 단순한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나 적실한 실감으로 다가온다. 사탕수수 이파리에 내리는 빗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는 듯한 감성적인 묘사도 서사의 실감을 돋우는 미덕이다.
-개인의 서사는 물론 시대적 배경에도 '운명'이라는 키워드가 무겁다.
"크게 보면 망해가는 나라의 운명이 있고, 다른 하나는 그 시대 모든 여성들이 통과해야 하는 결혼이라는 관습이 제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된다. 당장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건 엄두를 못내지만 '나영'이라는 여자는 끊임없이 그걸 바꾸려고 실천을 한다. 그런 반면에 '강희'는 착한 캐릭터 같이 보이지만 순응을 하는 경우다. 너무 커다란 운명 앞에서 작은 운명을 헤쳐 나갈 힘이 없었을 것이다."

-운명에 대처하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다르다.
"대의적인 명분으로 대처하는 남자도 있고,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지만 밑바닥에 큰 뜻을 품은 이도 있다. 당시 하와이에 살던 많은 사람들의 의식에는 뭔가 공동체에 보탬이 돼야 한다는 어떤 책무감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당시 사진첩을 보면서 소설을 썼는데, 그 시대 인물들이 너무너무 멋졌다. 한복을 잘라서 입고 있던 여인들을 보면 정말 당당하고 멋지다. 후일 그 여인들이 돈을 모아 고국에 대학교까지 세웠다."
-12년 만에 다시 이 소설을 살려낸 배경은?
"러시아어와 알바니아어로 이 소설이 번역됐다. 러시아에서는 올 초 출간됐는데 원본의 한국 독자들 반응을 궁금해 한다. 거의 절판된 이 소설을 다시 살리게 된 계기인데, 이 소설도 이런 운명을 타고난 모양이다. 다시 출간하면서 소제목 몇 개와 그동안 바뀐 언어의 젠더적 감수성을 반영해 문장을 다듬었다. 1인칭으로 내세웠던 '강희'까지 모두 시점을 3인칭으로 바꾼 것도 변화다."
-젠더적 감수성 차원의 교정 예를 든다면?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 여성과 여성끼리 서로 존중하는 여성 서사를 들여다보았다. 동시대에 같은 슬픔이나 상처를 안고 가는 인물들인데, 그 인물들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부끄럽게 여기거나 학대하고 혐오하는 쪽이다. 여성과 여성이 동정의 관계가 아닌 연민의 차원에서 인물들이 같이 뻗어나갈 수 있도록 문장을 조금씩 손보았다. 서사가 전체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
나는 낙원을 향해 가는 긴 여정이 파라다이스라고 생각한다. 생존의 장소가 되었을 때, 그곳은 일상에 파묻혀 빛을 잃고 삶은 또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파라다이스를 꿈꾸게 한다. 주인공 강희와 창석이 끝내 함께 다다르지 못한 곳, 그러나 꿈꾸었던 곳이 있었기에 그들에겐 영원한 파라다이스가 존재한다. _'작가의 말'
임재희는 20대 초반 가족과 함께 하와이로 이민 가서 그곳에서 20여 년을 보낸 뒤, 대학시절 접했던 하와이 이민사에서 촉발된 서사를 가슴속에 오래 품었다가 숙성시켜 터뜨린 이 장편으로 소설가로 나섰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뒤늦게 중앙대 문예창작과 대학원에 등록했고, 1학기 여름방학 때 더 이상 묻어둘 수 없었던 서사를 펼쳐내기 시작했다.
-파라다이스는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가?
"하와이로 이민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지상 낙원으로 간다고 부러워했다. 그곳이 생존의 장소가 되면 그걸 느끼기 힘들다. 하와이에 살면서 부러웠던 것은 일주일이나 열흘 아름다움만 보고 책임질 필요 없이 떠나는 관광객들이었다. 꿈꾸고 있을 때 도달하고 싶은 어떤 곳, 그것이 파라다이스 아닐까. 만날 수 없으니 그리워하고 소망하는 것 아닐까."
나영에게 가문의 심리적 빚을 지고 있던 강희가 자신의 짝을 양보한 뒤 벌어지는 서사의 긴장이 이 소설을 끝까지 붙들게 만드는 한 축이다. 이 여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운명을 자각하고 주체적인 선택으로 정체성을 확보해나간다. 운명의 쓸쓸한 여운을 잔잔하게 조각해 가는 작가의 솜씨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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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재희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던 시대에 소신껏 '선택'과 '결정'의 순간들을 살아냈던 소설 속 인물들에겐 어쩌면 운명이란 단어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고 썼다. [작가 제공] |
-하와이 독립운동의 갈등 양상이 배경으로 나온다.
"하와이 이민사는 크게 독립운동과 교회, 사진 신부로 압축된다. 독립운동이나 교회는 이미 많은 자료들이 나와 있어서 그 부분은 배경으로 두고, 여성을 소설로 형성화한 것이다. 만약 이승만과 박용만이 서로 윈윈하는 관계로 갔다면 나라의 운명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 갈등의 뿌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깝다."
-사탕수수 노동자와 사진 신부로 가던 시절의 고난에서 지금은 벗어난 환경이다. 디아스포라 후대의 상황은 어떤가?
"제가 처음 하와이 갔을 때 일본 드라마에 영어 자막을 넣고 방영할 정도로 영상은 물론 일식, 하루키로 대표되는 소설까지 일본 문화가 대세였다. 사람이 건너가면 음식이 뒤따르고, 노래가 건너가면 대중문화가, 맨 마지막에는 활자가 건너간다. 지금 하와이에는 한국의 활자가 건너가야 될 시점이고, 한강이 그걸 또 보여주고 있다."이민 대선배들의 삶을 소설로 쓰면서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되돌아보았다는 임재희는 이 소설 이후 본격적으로 경계인의 정체성을 다룬 소설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와 쓰는 자의 고민을 담은 '비늘',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다룬 4·3평화문학상 수상작 '세 개의 빛'을 연달아 펴내며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나'에서 '우리'로 건너갔다가 한국에 머물며 하와이를 오가는 이즈음은 다시 '우리' 속의 '나'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어디로 나아가든 '당신의 파라다이스'는 그의 본향일 터이다. 파라다이스를 향한 창석의 역설적인 의지.
'그리움이나 사랑 따위, 이제 그의 몫이 아닌 듯싶었다. 이제 희망 따위는 버리자고 독하게 마음먹었다. …그녀를 온전히 떠나보내고 싶었다. 이 섬에서 나머지 생을 견디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이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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