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초입 ‘에스더 갤러리’ 문 열고 연이은 전시
“실력 있는 국내외 작가 교류의 창구 되려”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화가 김연선은 결혼 후 한동안 붓을 놨다. 여인의 역할이 김 작가를 붙잡았다. 한숨을 돌리자 아득한 14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시 붓을 들자 그는 17년 동안 목말랐던 예술혼을 한바탕 쏟아냈다.
우선 오일페인팅에 바탕을 둔 정물, 인물 페인팅에 주력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하고 독특한 자신만을 방법이나 주제를 찾아갔다. 그는 ‘마띠에르(matière·미술에서의 질감)’를 주기 위해 캔버스 위에 톱밥과 모래를 쓰는 등 다양한 실험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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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더갤러리 1층. [작가 제공] |
작품이 무르익자, 2021년엔 경기도 양평 초입에 3층 규모의 ‘에스더 갤러리’를 어엿이 갖추고 또 하나의 꿈을 좇기 시작했.다. 자신의 활동뿐만 아니라 여러 실력 있는 작가에게도 좋은 기회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화가, 갤러리스트, 커미셔너 등 1인 3역으로 동분서주하는 서양화가 김연선을 지난 3일 본지가 찾았다.
“사실 전 굉장히 내성적이에요. 여러 구석에 외로움이 있죠. 더러 사교적이지만 지독한 외로움에 어린 시절 혼자만의 세계를 즐기곤 했죠. 외동딸이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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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선 작, 황금날개 [작가 제공] |
하지만 그의 작품은 무거운 주제를 경계한다.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작품이 풍기는 그대로의 모습을 관객이 느끼고 즐기길 바라요.” 관객이 각자 알아서 해석하면 그만이란 얘긴데, 그래서인지 김 작가는 관객들이 전하는 여러 의견에 대해 “네 맞아요”, “그것도 맞아요”라고 맞장구를 친다.
그의 미술적 재능은 어린 시절 자수(刺繡)를 놓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손놀림에 익숙해져서인지 자신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손으로 하는 무언가’가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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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선 작, 나비시리즈 2018 |
작품에 집중하는 시간이 쌓여가자. 여러 가지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수년 전부턴 아예 캔버스 자체를 금속판으로 바꾸는 과감한 도전과 변화를 시작했다. “금속판 위에 그라인더로 형상을 새겨넣기 시작했어요. 그리곤 색을 입혔죠. 따뜻한 빛을 비추자, 금속 면과 컬라가 만나 전통 자개처럼 오묘하고 영롱한 느낌이 나타났죠.”
김 작가는 희망적인 것을 자주 그린다. 그의 금속판에 자주 등장하는 대상은 공작이다. 색을 많이 사용하지 않지만 밝고 희망적이다. 몽환적인 자태를 뽐내는 공작은 허세적이다. 하지만 작품 속엔 묘한 쓸쓸함이나 고독이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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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선 작, 나비시리즈 |
최근엔 공작에서 나비로 주제가 바뀌었다. “스쿠버다이빙을 할 때 두 팔이 날개처럼 펼쳐지는 순간 해방감을 느꼈어요. 날개는 억압을 떨쳐버려요. 그것은 희망의 날개였어요.”
여전히 그의 작품들은 외견이 화려하고 밝지만, 이면엔 지독한 고독이나 외로움이 관통하고 있다. 고독은 작가가 운명처럼 짊어져야 할 무엇일까. “동굴에 갇히고 싶을 때가 있어요. 나는 사실 화려한 걸 좋아하고 드러내는 걸 좋아한다”고 자신을 설명했다. 작품 속 화려함은 자신의 고독을 다른 형태로 발현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캔버스를 금속으로 바꾼 후 봄날의 황홀, 공작(봄날의황홀), 나비(뮤즈의 방), 내방을 열어 등 금속 조형 회화 50여 점을 전광석화처럼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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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더갤러리. 3층까지 전시 공간이 이어진다. [작가 제공] |
금속판은 내구성이 좋아 잘 깨지지 않는다. 그는 붓 대신 그라인더를 들고 금속판에 수십 차례 긁으며 형상을 그려낸다. 여기에 입힌 염색 물감은 긁힌 금속 사이로 곳곳이 스며든다. 나중에 동판 부식하면 금속과 염색 물감의 어울려 ‘엔틱(Antique)’한 느낌을 준다. 이런 형식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갤러리 운영에 대해 “갤러리의 운영을 잘 알지 못하지만, 작가를 우선하는 갤러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전시 기간이든 여러 편의를 작가에게 제공하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선 신뢰가 필요하죠. 저 또한 작가이니 아무래도 작가 위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더러 운영 때문에 곤란을 겪거나 힘들 때도 있지만 이젠 자신감도 생기고 재미를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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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8월 튀르키에 아트앙카라(ArtAnkara, Art Contact Istanbul)에 참가한 김연선 관장(오른쪽). [작가 제공] |
성과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엔 14회의 전시를, 올해엔 4회의 전시를 연거푸 열었다. 올해는 해외 페어도 3~4차례 정도를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에스더 갤러리엔 만만치 않은 작가들의 전시가 이어졌다. 박기웅, 강창렬, 최장칠, 정국택, 구상희, 김석은, 신정희, 김연선, 이윤령, 김애란, 김철성, 김순남, 김선주, 김경미, 정상우, 김현숙, 전태연, 박가나, 박정란 등이다.
1인 3역에 지칠 법도 한 김 작가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각자 바쁘더라도 언제나 동행하며 응원해주는 남편과 아들의 든든한 뒷배가 있어 두렵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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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선 작, 나비시리즈 2021 [작가 제공] |
그는 작은 포부도 밝혔다. “미술은 나의 사랑이자 삶이다. 나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무엇이다. 언젠가 서울에 갤러리도 내고 싶다. 실력 있는 국내 작가를 해외에 알리고 국내에서 통할 만한 해외 작가를 국내에 알리고 싶다. 물론 나도 작가로 최선 다하려 한다. 서로 믿고 의지하고 힘을 모은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한편 김연선은 동경국제 미술대전에서 특선을 수상했다. 작품은 대한토지신탁, 한국토지신탁, 들꽃수목원(양평), 예평ENC(서울), 이너리조트 호텔(가평), 서원종한건설(대구), 하이플 Company 등에 소장돼 있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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