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끝까지 가고 싶은 마음으로 고투한 오랜 침묵 깨고
생명의 본성, 디아스포라, 죽음과 글쓰기 성찰 담아낸 3편
"이제 경계 낮추고 넉넉해진 태도로 자유롭게 써나갈 터"
그의 몸에서는 그가 달려온 모든 길과 물과 비와 바람과 햇빛이, 그것들의 기억이, 오직 살고자 하는 아름다운 본능과 생의 무위한, 지금 이 순간의 기쁨만이 숨 쉬고 있다. 그의 애탐, 갈구와 갈망이, 안타까운 헐떡임이 내 안의 가장 깊은 곳, 어둡고 따뜻한 곳으로 온힘을 다해 들어온다. _ '봄날의 이야기'
| ▲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에 오래 중독돼 있었다고 밝히는 소설가 오정희. 그가 긴 공백에서 벗어나 신작 소설들을 묶어냈다. [삼인 제공] |
늘 주변을 맴돌던 붉은 개가 말미에 이르러 떠돌이 개 '백구'와 결합하는 대목이다. 백구는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으로 '물과 비와 바람과 햇빛'이 들어올 때 '뱃속에서부터 치미는 이상한 기쁨과 슬픔과 구역질을 참으며' 죽은 까마귀의 마른 뼈를 씹는다.
20여 년 만에 단편집 '봄날의 이야기'(삼인)를 묶어낸 소설가 오정희의 표제작 이야기다. 죽음을 씹으며 생명의 씨앗을 받아들이는, 이상한 기쁨과 슬픔 속에서도 구역질을 느끼는 이 대목을 두고 그는 "우리가 산다는 것에는 구역질나게 하는 메스꺼움이 있다"고 말한다. 오래 침묵 속에서 고투하던 오정희는 이제 다시 보다 자유롭게 종의 경계도 넘나들며 생명의 슬픔과 기쁨 사이를 파고든다.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며 단편 미학의 정수를 보여줬던 오정희(78)는 과작으로 소문난 작가이기도 하다. 1998년 단편 '얼굴'을 발표한 이후 소설로는 처음 신작을 묶어낸 이번 작품집에는 표제작을 포함해 '보배' '나무 심는 날' 등 3편이 수록됐다. 가벼운 분량을 표방하는 '삼인의 소설' 시리즈 1번으로 출간된 이 단편집에는 전성기 오정희가 보여준 문장의 밀도와 긴장이 여전하다. 연륜이 받쳐주는 유장한 흐름과 깊은 사유가 더해졌다.
'봄날의 이야기'는 주인이 사라진 떠돌이 개와 목줄을 맨 채 새끼들을 거듭 출산하는 늙은 개, 도견장에서 도망쳐 야생에서 살아가는 붉은 개들이 생명의 한 살이와 아름답지만 슬픈 존재의 풍경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보배'는 하와이 '사진 신부'를 소재로 어디에 떨어지든 생육에 적응하는 생명의 전파를, 마지막 '나무 심는 날'은 생명의 마지막을 천착하며 글쓰기의 의미를 전개하는 흐름이다. 숨을 타고 난 것들의 숙명과 각기 다른 빛깔의 생을 변주하는 세 편의 실내악인 셈이다.
긴 세월 '글쓰기'는 내게 남모를 기쁜 비밀이고 순정한 꿈이었다. 깊이 응시하고 오래 곰삭히며 매일 매일, 천천히, 조금씩 쓰는 삶을 살고 싶었다. 넓은 세상의 아주 작은 한 귀퉁이에서 소심하게 서성이며 살아오는 동안 순리대로 육신은 쇠해가고 다만 자신의 안과 밖이 서로를 투사하며 침묵하고, 속삭이고, 외치는, 그러한 어우러짐을 바라보는 시선만이 남았다. _ '저자의 말'
-노년에도 문장의 밀도와 긴장을 유지하려면 힘들지 않은가.
"특별히 다른 일에 비해서 힘들다고 생각은 안 한다. 누구나 그냥 다 그렇게 뭘 하려고 하면 힘들지 않나. 일찍 문학 세례를 받아서 그런지 사는 일과 쓰는 일, 생각하는 일은 한 가지로 내면화시켰던 것 같다. 써야 된다는, 쓰겠다는 욕망에 평생 중독돼 있으면서도, 쓰는 일의 두려움에도 역시 똑같이 중독돼 있는 것 같다. 이상한 표현이지만 못 쓴다고 생각할 때는 존재감이 없어진다고 할까, 작가들이 다 그렇겠지만 그럴 때는 살아있는 느낌이 덜 든다."
-'오래 곰삭히며 조금씩 쓰는 삶을 살고 싶었던' 소망은 이룬 셈인가.
" 회한 같은 게 있다. 사실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어느 때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글들이 있다. 어느 나이에 쓰고 넘어갔어야 할 것들인데 사산된, 유산된 작품들도 있지 않을까. 더 잘 쓰려고 해서 못 쓴 건 아닌 것 같고, 원천적으로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굉장히 컸던 것 같다. 거기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심오한 사상이 있는 건 아닌데 문장의 미학을 좇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그 끝까지 가고 싶은 소망은 늘 있었다. 그런 마음들이 자꾸 발목을 잡았던 것 같다."

-이번 소설집에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세상에서 느끼던 경계, 울타리 같은 게 상당히 느슨해지고 낮아진 것 같다. 모든 것이 다 특별하지만 또 특별한 건 하나도 없다. 모든 관계에 있어서나 사물, 안과 밖의 문제들이 그런 것 같다. 사람의 입장에서 개를 보는 게 아니라 그 개가 돼서 어떤 것들을 쓰고 싶었던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전 글보다 이제는 많이 자유로워진 것 같다. 나와 남, 안과 밖의 경계가 헐거워졌다."
헛간 구석에 쌓아 놓은 콩 자루에서 콩알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루에 나 있는, 날카롭게 찢긴 흔적을 보는 순간 어둑신한 벽의 모서리로 몸을 감추는 쥐와, 그것을 앞발로 찍어 누르며 이빨을 박아 넣을 때의 물컹한 감각, 찌익 입 안쪽에서 울리는 가녀린 비명, 이윽고 목을 타고 넘어가며 온몸으로 퍼지는 따뜻하고 비린 피의 느낌이 동시에 떠오르다가 사라졌다. _ '봄날의 이야기'
-초기작부터 냉정하게 바라보고 결연하게 묘사하는 태도가 여전하다.
"어떤 울음이나 동정, 연민의 마음 같은 감정들을 안 드러내는 걸 원칙으로 삼았던 것 같다. 감정을 드러내면 그것이 저의 울음이지, 우리의 울음이 되기는 어려워서 늘 '거리 두기'와 '절제'를 생각했다."
-대신 울어주는 존재들이 눈에 띈다.
"생명의 순환이랄까, 삶의 규율이랄까, 태어나는 것은 죽어야 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많은 것들을 겪는다. 왜 이것들이 우리에게 부과되는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살아간다는 것,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참 눈물겨운 일이다."
-'슬픔의 수행자'('나무 심는 날')는 어떤 존재인가.
"한 사람의 품위와 깊이는 그 사람이 갖는 감정의 깊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깊이, 슬픔의 깊이, 고통을 느끼는 그런 깊이가 그 사람의 품격과 인간다움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슬픔은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죽음을 우리가 기억을 하고 겪으면서 그 깊은 슬픔이 그 사람 마음의 방을 크게 만드는 것 같다. 슬픔의 수행은 슬픔을 받아들이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삶이 끝나면 비로소 이야기도 끝나는 법. 사진첩을 덮으며 나는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산다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써내려가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_ '보배'
한 편의 인생담을 만들어내는 일은 나 자신이 쓰는 존재와 쓰여지는 존재라는 두 개의 자아로 나누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 모든 삶의 순간은 미스터리이다.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가 되어 살아보는 것, 그것은 가면에의 욕망일까, 자기 실종의 욕망일까. _ '나무 심는 날'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일꾼에게 사진 신부로 간 '보배'가 회고하는 일생은 작가에게 '누구에게나 산다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써내려가는' 일이다. '나무 심는 날'에서는 대필작가가 죽은 이들을 봉안하는 성당에서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그 어머니가 섬망 속에서 떠올렸던 삼촌에 대한 이야기를 써나간다. 이 서사에서도 글쓰기에 대한 오정희의 오래된 고뇌와 성찰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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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정희는 "글쓰기란 내게 안전한 착지를 약속하는 일종의 중력 같은 것었다"고 썼다. [삼인 제공] |
-글로 쓰느냐 안 쓰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모두 자신의 서사를 살아가는 작가인 셈인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쓸 때 이게 나만의 이야기와 감정이고, 나만 느끼는 것이라는 말이 될까봐 굉장히 경계한다. 사실 그래서 '거리 두기'에 그만큼 마음을 쓰는 것 같기도 하다. 나만 특별하게 보고 느끼는 게 아니다. 처음 문학을 시작할 때는 내가 특별한 감수성을 가지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얘기를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믿음으로 그것이 상처이든 우월감이든 나만의 특별한 어떤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출발하지만, 결국 나와 너가 다르지 않다는 귀결에 이르는 것 같다."
-'모든 사람 모든 삶의 순간은 미스터리'라고 썼다.
"우리가 자연물이라는 대전제 아래에서는 똑같이 나고 살고 죽어가는 존재들이지만, 삶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 다르다. 슬픔을 감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른데 '나무 심는 날'의 어머니는 그 슬픔을 풀어내지 못하고 섬망 속으로 피해버린 경우다. 모든 사람의 삶은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만, 각기 다른 서사를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오정희는 소설 속 화자의 입을 빌려 '글쓰기란 내게 안전한 착지를 약속하는 일종의 중력인 것 같다'고 썼는데, 그는 고뇌하는 소설 속 인물처럼 "글쓰기라는 게 어떻게 보면 제 삶의 변명이기도 하고 동력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 "결국 한 가지 소설을 내내 써온 것 같다"고 말한다. 동어반복을 그동안 두려워했지만, 이제 '잘 쓸 수 있는 것들'을 자유롭게 써나가겠다고 말한다. 그가 말한 한 가지란 압축하면 '자궁과 거울'이라고 했다. 생명을 상징하는 자궁과 자의식의 상징인 거울. 다시 활발해질 그의 자유로운 쓰기가 기대된다.
잊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라지만 나이 팔십이면 잊는 것도 잃는 것도 그다지 안타까워할 일은 아닌 것이다. 기억이 너무 많으면 영혼이 무거워서 저승 가는 일이 힘들어질 것이다. _ '보배'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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