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김성훈 감독, 그 남자의 화법

홍종선 / 2018-11-10 09:44:28
11월 8~9일 싱가포르 3번의 행사 나온 말, 말, 말
넷플릭스, 동료 제작진, 기자 모두를 향한 '따뜻함'
킹덤, 기품있는 조선의 정적과 끔찍한 역병환자의 충돌
▲ 따뜻한 배려의 소유자가 연출한 핏빛 액션은 어떤 모습일까. '킹덤'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 [넷플릭스 제공]


말은 그 사람을 엿볼 수 있는 창문이다. 그것도 꽤 넓고 투명도가 높은 창이다. 영화 '끝까지 간다' '터널'을 지나 2019년 1월 25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6부작 드라마 '킹덤'의 연출을 맡은 김성훈 감독의 말은 특히나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힘이 있는데,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김성훈 감독의 말은 따뜻하고 배려가 깊다. 바로 곁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그 자리에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늘 마음의 손이 가 닿아 있고, 질문을 받을 때도 질문을 하는 사람의 수고에 마음을 기울인다.

넷플릭스가 11월8일과 9일 양일간 싱가포르에서 아시아 기자들을 초청해 2019년 라인업을 소개한 가운데 '킹덤'은 패널 토크, 1·2회 시사, 세 차례의 기자회견 자리를 통해 국내 기자들을 만났다. 김성훈 감독과 김은희 작가, 배우 류승룡과 주지훈은 아시아 각국의 기자들과 나라별 인터뷰를 하고 TV 인터뷰도 진행하느라 더 많은 행사를 진행했겠지만 말이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친절한 성훈씨' 김성훈 감독의 말들을 되짚어 본다. 앞으로 우리 곁에 오래 머물 것으로 예상하기에, 감독을 알면 작품이 더 잘 보이기에, 감독 김성훈이 싱가포르에 남긴 말 가운데 인상적인 몇 대목을 상기하고자 한다. 살짝 썰렁해서 더 웃음이 나는 유머도 종종 시도하는데, 그것까지 전하는 데엔 기자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게 심히 안타깝다.

▲ 9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배우 류승룡 주지훈, 작가 김은희, 감독 김성훈(왼쪽부터) [넷플릭스 제공]


# 작가님이니까 글로 쓰시면 되죠

9일 오전 9시30분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기자회견장. 김은희 작가에게 TV와 같은 기존 플랫폼을 통해 방송되기에는 너무 잔인해서 넷플릭스를 선택한 것이냐는 질문이 던져진 상황. 김 작가는 "잔인함을 의도했다기보다는 리얼리티, 개연성의 문제였다. TV에서 (잔인한 장면을 가리기 위해) 블러 처리를 하면 현실성이 깨지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어 무언가 더 설명을 붙이려고 하다 말문이 트이지 않는 듯 "아, 왜 이렇게 적절한 단어가 생각이 안 나죠,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에요"라고 말하며 난감해 했다.

이때 김성훈 감독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작가만 들을 정도의 작은 소리로 "작가님이니까 글로 쓰시면 되죠"라고 응원한 뒤 김 작가의 말을 이었다.

"잔인함을 과시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개연성 면에서 필요할 때 굳이 피할 필요는 없다는 선에서 표현했고요. 결코 잔인성을 과시하고 전시할 생각은 없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길어서 죄송해요, 굉장히 빨리 쓰시네요^^

글로벌기업 넷플릭스 시스템 안에서의 영상 작품 연출과 한국적 제작 상황에는 큰 차이가 존재할까. 이 질문은 봉준호 감독이 인터내셔널 오리저널 장편영화로서는 세계 최초로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옥자'를 연출할 때부터 받아온 질문이다. 김성훈 감독에게도 같은 질문이 주어졌다. 넷플릭스는 창작자에게 자유를 준다던데 사실인가요?

"넷플릭스는 창작의 자유 준다는 말, 저도 들었어요. 사실 안 믿었어요. (일동 웃음) 초반에 책을 쓸(작가의 시나리오 작업) 때 미국에 계신 분이 화상통화로 피드백을 주는데 정말 피드백일 뿐이더라고요. 다른 문화권에서는 이걸 이렇게 받아들이는구나 하는 걸 알게 되는 기회였을 뿐이에요. 영상을 다 만든 뒤에도 마찬가지였어요. 다른 문화권,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뿐 최종 선택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견도 없었습니다. 이건 내용적인 면이고, 기술적인 면을 말씀 드려 볼게요."

"제가 기술적인 면을 잘은 모르지만 CG 일부가 아니라 영상 전체를 4K로 작업하는 건 2~3배 이상의 공이 필요하다더라고요. CG라는 게 창작자의 의도와 맥락, 장면과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면 되는 것 아닌가 정도로 생각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넷플릭스에겐 매대에 상품이 나온다는 건 불량품이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더라고요, 보이지 않는 작은 흠이 있는 건 불량품인 거라는 인식이 있고요. '이것 조금 문제 있어요', '여기 조금 문제 있어요', 넷플릭스에서 중간 중간 계속 의견을 줬어요. 최소한 불량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자신감, 자긍감,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넷플릭스와의 작업은) 좋은 경험이 됐습니다. 창작자들은 창작에 집중할 수 있게 기술적 부분은 다 체크해서 알려주니까요. 결코 압박이 아니었어요, 창작에 집중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겁니다. (감독의 말을 받아 적느라 빠르게 타이핑하는 기자들이 눈에 보였는지) 아, 이야기 길어서 죄송해요. (놀랐다는 듯) 굉장히 빨리 쓰시네요^^."

# 본편 찍을 때는 아니었어요

동일한 질문이 류승룡에게 갔을 때 그는 "한국영화, 그것도 힘든 영화 3편을 몰아 찍는 느낌이었다는 것 외엔 큰 차이는 없었다"면서도 몇 가지 소소한 차이점을 전했다.

"다만 보안에선 굉장히 철저하더라고요. 포스터 찍은 것도 안 보여 줘, 티저 영상이나 편집본도 안 보여 줘, 후시녹음 할 때 잠깐 잠깐 본 게 다였어요. 아, 포스터는 일주일 동안 찍었어요. 도시락 먹으며...가 아니라 케이터링 식음료 깔고 꽃 놓고 음악 틀어놓고 찍었어요. 많이 다르구나, 느꼈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성훈 감독이 말을 잇는다. "본편 찍을 때는 (케이터링) 아니었어요". 아무도 본편 촬영 때도 그랬으리라 생각지 않았지만 감독의 작은 유머에 웃음지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이어지는 일정의 사막 속에서 만나는 조그마한 오아시스다.

# 답이 부족하더라도 양해해 주시고요

드라마 '킹덤'에는 역병환자라 불리는, 우리에게는 좀비라고 하면 더 익숙한 존재가 등장한다. 서구의 좀비를 우리의 조선시대로 데려간 이유는 무엇일까.

"답이 여러 가지가 나와야 할 것 같은데요, 답이 부족하더라도 양해해 주시고요."
먼저 겸양의 예부터 취하는 김성훈 감독.

"서구의 좀비와 사극의 역병환자는 다릅니다. 그냥 조선으로 보낸 좀비가 아니라 그 시대 상황 속에서 문화적·사회적 지위를 지니고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대물과 다른 사극에 넣었을 때 새로운 재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시대적 특수성도 관여합니다. 일례로, 당시 조선엔 화장이 허용되지 않는 시기였는데 어떻게 화장을 해야 하나 고민했죠. 또 (역병환자와 시대 상황이) 충돌하면 아이러니한 재미가 나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현재까지 좀비는 서구의 것이고 척결해야 해야 할 대상이었다면 '킹덤'에서 역병환자는 우리의 이웃이었고 배고픔의 결과물, (무조건 제거가 아니라) 어찌해야 하나를 고민해야 하는 결과물이 될 것 같습니다." 

▲ 왕조의 기품과 민초의 배고픔, 그 충돌을 그린 '킹덤' [넷플릭스 제공]


# 3 ·4부가 더 재미있어요(부끄부끄)​

하루 전인 8일 저녁 7시30분, 캐피탈 극장에서 '킹덤' 시사를 앞두고 로비에서 소규모 포토월 행사가 진행됐다. 넷플릭스 임원들과 '킹덤'의 주역들이 삼삼오오 마치 친구들 사진 찍듯 촬영하는 모습에 즐거움이 전이되어 화장실에 가다 말고 기자 몇몇이 지켜보고 서 있었다. 포토월이 끝나고 극장으로 입장할 때 기자들 쪽으로 걸어온 김성훈 감독이 목례를 했다.

"부끄럽습니다. 재미있게 봐 주세요. 사실 우리 드라마는 3·4부가 더 재미있는데요." 나직하고 겸손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깨알 우려를 드러내는 말에서 '이제 저는 제 역할 다했으니 관객께서 즐길 차례!'라고 말하는 자신감도 보이고, 처음으로 뚜껑을 여는 상황에서도 잊지 않는 유머도 느껴져 저절로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감독님'께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는데 무척 '귀엽게' 보였다.

그리고 상영 직전 무대인사. 김은희 작가, 류승룡 주지훈 배우와 무대에 선 김성훈 감독.

"국내에서는 모든 작업을 마친 상황인데요, 여기 보내져 오늘 보실 편집본엔 4군데 정도 CG가 입혀져 있지 않습니다. 관람에 방해가 될 거라 죄송하고 부디 양해해 주시는 마음으로 영화를 즐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8일 김민영 한국콘텐츠담당의 사회로 진행된 패널 토크 [넷플릭스 제공]


# 시간이 짧아 다른 배우 얘긴 못해 죄송해요

시사가 있기 4시간 정도 전.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에서 패널 토크가 열렸다. 이후 계속 함께 다닐 4명의 주역들이 자리를 한 가운데 김성훈 감독에게 주연 배우들 캐스팅 이유를 묻는 질문이 나왔다.

"보셔서 아시고 느껴서 아시겠지만 이분들을 캐스팅 안 한다, 안 할 이유가 없지요. 먼저 왕세차 이창은 외롭고 쓸쓸한 카리스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가 쓰고 감독이 연출하는 힘도 있지만 배우가 스스로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캐스팅했는데요. 생각했던 것 이상이더라고요. 이렇게 똑똑할 수가 있나, 지능이 키만큼 높더라고요. 높은 지능과 센스가 좋았습니다. 대부분 지능이 뛰어나면 열정적으로 나태한 경우가 많은데 부상을 당하는 순간까지도 한 번 더, 한 번 더 끊임없이 열정을 보여줬습니다. 훤칠한 외모와 지적 능력과 열정까지 갖춘 배우가 주지훈입니다."

"류승룡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최고의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이창을 위협하는 권력과 탐욕의 정점) 영의정 조학주는 작가와 고민을 많이 한 캐릭터인데요. 단선적으로 보여주면 안 되는데 싶어 걱정 많았던 캐릭터입니다. 첫 촬영 때, 카메라 앞에 오는 순간 저는 그냥 바라보고 찍기만 하면 됐어요. 무한한 편안함을 줬던 배우입니다"

"어찌 보면 배우라는 게 연기, 기, 기술로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진정이 무엇인지, 배두나는 진심이 무엇인지, 어찌해야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알고 있는 배우입니다. 두나씨는 현장에서 동료 배우와 감독, 스태프의 마음과 공감을 얻어내는 진심을 가진 배우고요. 최고의 진정성 가지고 있는 최고의 배우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짧아 다른 배우 분들 말씀 못 드린 것은 죄송합니다."

죄송은 대중에게 미처 다 소개하지 못한 배우들에게 전하는 마음처럼 느껴졌다. 끝인사에도 따뜻한 배려를 담았다.

▲ 김성훈 연출, 김은희 극본의 '킹덤'은 2019년 1월25일 넷플릭스를 통해 만날 수 있다. [넷플릭스 제공]


"기자 분들 아침부터 종일 의자에 앉아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상당히 지치셨을 텐데 편안한 마음과 너그러운 마음으로 충분히 즐기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내년 1월이면 그 실체를 확인하게 될 쇼(Show, '넷플릭스인'들은 영화나 드라마라는 장르 구분 대신 쇼라는 말을 썼다) '킹덤'은 김성훈 감독의 표현을 빌자면 15~16세기 극동아시아 조선에서 일어난 민초들의 투쟁사를 그린 작품으로, 좀비, 괴물이라기보다는 역병환자가 등장한다. 시대가 가지고 있는 고요하고 기품 있는 정적 아름다움이 끔찍한 역병환자들과 충동했을 때 어떤 긴장감을 만들어 낼 것이라 생각해서 연출을 맡았다는 김성훈 감독의 '킹덤'. 넷플릭스 관계자들의 기대와 예상처럼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인이 열광하는 콘텐츠가 되기를 응원한다.

싱가포르=KPI뉴스 / 홍종선 기자 dunasta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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