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경계인들의 삶으로 그려낸, 집으로 가는 점묘화"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4-03-22 14:09:22
이민자들 다양한 삶을 그린 문지혁 소설집 '고잉 홈'
정체성을 상실한, 공중에서 부유하는 존재들의 기록
도피, 이별, 가난, 고독, 그리움…어둠 속 찾아낸 희망
"무국적자의 정체성...우리는 모두 집으로 가는 중"

가야 할 곳은 정해져 있고 거기가 어딘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러니까 그 사이에서 우리가 집이라고, 고향이라고, 본토라고 부르고 믿는 모든 곳은 결국 길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길 위에 서 있고, 언젠가 이 여행이 끝나면 비로소 다 같이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모두에게 그 여행이 너무 고되지 않기를. 

 

▲세번째 소설집을 펴낸 문지혁. 경계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 이야기를 모아 점묘화를 그려냈다. [작가 제공]

 

문지혁이 세번째 소설집 '고잉 홈'(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경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모아 점묘화 형태의 큰 그림을 구성했다. 그가 소설집 말미에 진술한 것처럼 어디에 있든 인생을 걸어가는 모든 이들은 집을 향해 가는 경계인이라는 인식이 모자이크의 저변을 이루고 있다.

문지혁은 이국 땅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수업을 소설의 골격으로 가져온 오토픽션 '초급 한국어'을 필두로, 이 소설의 화자가 귀국해 국내에서 글쓰기 수업을 하는 '중급 한국어'를 펴낸 바 있다. 뉴욕에서 유학생활을 한 본인의 경험이 핍진하게 투영돼 있거니와, 자신의 실제 삶을 소설로 가져오되 평행우주의 그것처럼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는 소설쓰기의 관행을 이어오는 중이다.

이번 소설집은 그가 작심하고 모아놓은 '이민자 소설'이다. 9편의 단편들 중 첫머리에 배치한 '에어 메이드 바이오그래피'는 이 소설집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서 미국에 사는 외국인 사위가 아내와 함께 장인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한국으로 들어오는 이야기다. 비행기 안에서 아일랜드 사위가 장인의 삶을 기록하는데, 인천에 도착해서는 격리 수용됐다가 그 기간이 끝나자 마자 다시 돌아가야 하는 처지다. 아내는 그가 글을 이어나간 공간은 '홈'이 아니라 '에어'라고 상기시킨다. 공중에서 부유하는 정체성, 글쓰기인 것이다.

"이 단편을 쓰면서 중점을 두었던 점은 한국인이 아닌 화자를 등장시키는 것이었는데, 그가 쓰는 글은 대부분 공항이나 공중이라고 하는 누구의 영토도 아닌 곳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아내가 지적합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이야기들도 사실 홈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닌 그런 공간에서 쓰여진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경계가 모호한 공간은 글을 쓰는 장소의 문제만이 아니다. 쓰는 자의 정체성도 분명치 않다. 표제작 '고잉 홈'은 시카고에서 뉴욕까지 태워다 줄 뿐 아니라, 탑승 중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조건으로 현금 500달러까지 제공한다는 제안에 응한 화자의 사연이다. AI 실험 참가자를 모집한 경우인데, 실제로 AI에게 소설 200권을 학습시키고 차에 태워 여행을 떠나게 한 뒤 그 여정에서 기록된 영상을 토대로 써낸 문장들을 책으로 펴낸 사례가 있었다. 이 단편에서는 한걸음 나아가 직접 사람을 승차시켜 이야기를 나누게 함으로써 새로운 AI 소설을 도모한다는 발상이다.

이 실험에 참가한 자의 이름은 '현'. 현은 자신이 왜 미국에 왔는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먼저 미국에 온 누나와 조카 이야기까지 늘어놓는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갑자기 꿈을 꾼 듯한 낯선 풍경을 만난다. 차창 바깥에는 녹색 천만 보이고 옆자리에 타고 있던 진행자의 옷차림도 가벼운 복장으로 바뀌어 있다. 꿈인지 아닌지 다시 '현실'로 돌아와 무사히 뉴욕에 당도해 달러를 받고 차에서 내린 '현'은 내심 미소를 짓는다.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들은 얼마간 자신이 지어낸 허구이기 때문인데, 정작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 속 유니콘의 행방이 궁금해진다. 문지혁은 이 화자의의 성이 '구'라는 사실을 상기해보라고 했다. 과연 '구현'이라는 화자 또한 진짜 사람인지 AI인지 가늠해보라는 말이다.

'핑크 팰리스 러브'의 남녀는 서울 강남에서 서둘러 결혼식을 올린 뒤 미국 유학 길에 나란히 오른다. 그들이 각박한 생활에서 벗어나 크리스마스 연휴에 떠나온 플로리다 호텔에서 만난 헛것들은, 살아 있는 줄 알았는데 죽어서 나타난 전 여친과 자살한 줄 알았는데 살아 있는 전 남친이다. 장르 문법을 차용한 이 단편은 이승에서는 어디에서도 그들이 안식을 도모할 도피의 공간은 없다는 사실을 섬뜩하게 드러낸다.

'나이트 호크스'에도 각박한 유학생활을 하는 젊은 부부가 등장하거니와 이들은 연말에 사고를 당해 병원을 순례하고, 우여곡절 끝에 심야의 간이식당에서 접하게된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 속에서 고독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문지혁은 2010년 네이버 메인 화면에 걸린 '오늘의 장르문학'에 소설을 투고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유학 생활 중 펴낸 첫 소설집 '사자와의 이틀밤'을 두고 어떤 평자가 '무국적 소설'이라고 비판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그는 '국적 없는 세계'에서야말로 발견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고 믿었다. 본격 '이민자 소설'을 꾸려낸 이번 소설집이야말로 '무국적'의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낸 셈이다.

 

 

▲뉴욕 유학시절 첫 소설집을 받아들고 상념에 잠긴 문지혁. [작가 제공]

 

"어떤 의미에서는 명목상 국적은 있지만 기실 정체성은 상실한 그런 세계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점점 더 개인의 영역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자신을 점점 더 잃어가고 있는 세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경계인들 삶을 자세히 들여다봄으로써 결국에는 그 경계인이라는 거울 속에 들어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거꾸로 발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뜰 안의 볕'에는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화자가 겪는 이야기가 섬세하게 포진해 있다. '늘봄'은 '이제 곧 졸업이었고 남을 것인지 들어갈 것인지, 목회인지, 신학인지, 둘 다 아닌지' 선택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자상하게 도움을 주는 대형 교회 목사의 뒷모습을 목격한 늘봄의 허탈과 상실 사이에 다양한 그 세계의 그늘이 진열된다. 세밀한 이야기의 육질이 흥미를 돋운다.

아버지가 목사면 성골, 장로면 진골, 평신도면 육두품. 부모가 무교이거나 심지어 다른 종교라면 해골. 이런 계급 구분법은 날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다양해져서, 나중에는 아버지가 목사라도 개척교회 목사면 해골, 부모가 모두 번듯한 목회자 집안 출신이어야 성골, 부모가 무교여도 장인어른이 대형 교회 목사면 진골, 이런 식으로 업데이트가 되곤 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늘봄'은 희망을 놓치는 않는다. 그녀가 아파트 중정(中庭)에서 저녁에 만난 사람들과 반딧불이 속에서 지향하는 것은 그냥 '늘' 있는 봄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봄이었다. 늘봄과 함께 문지혁은 '무의미로 가득 찬, 무엇도 알 수 없고 누구도 볼 수 없는 이 칠흑 같은 우주에 보내는 고결한 모스부호' 를 느낀다.

 

▲유학 시절 뉴욕에서 만난 현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문지혁. 당시의 체험이 이번 소설집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작가 제공] 

 

'골드 브라스 세탁소'의 말미에서도 'GOD BLESS'라는 네온사인 불빛으로 귀결되는 희미한 희망이 싹튼다. '크리스마스 캐러셀'에는 버려진 것처럼 여겨졌던 열두 살 입양아가 기실 삶 쪽으로 던져진 아이였다는 사실이 느껍게 배어 있다. '우리들의 파이널 컷'은 지적 장애 아버지가 이국의 딸들을 그리워하며 품었던 수백 장의 전화카드들을 모티브로, 영상 편집 툴의 형식을 빌려 애틋한 온기를 전달한다. 죽은 자와 대면하는 서양식 장례 풍습 '뷰잉'(Viewing)에서는 그가 실제로 만났던, 팬데믹 국면에서 작고한 인물을 소설로 추모하는 형식으로 그렸거니와, 그 인물의 신산스러운 이국의 삶이 환등기 영상처럼 흘러간다.

10여년의 고독한 글쓰기 끝에 화제작으로 떠오른 '초급 한국어'(2020) 작가의 말에서 문지혁은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라거나, 소설은 삶을 반영한다는 말도 믿지 않는다"면서 "소설이 삶에 속한 게 아니라, 삶이야말로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쓰고 있는' 소설이라고 믿는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가 이른바 '오토픽션'을 지향해왔기에, 우리는 소설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저 말은 더 각별하다.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살고 있는 우리가 삶이라는 하나의 서사를 그 안에서 선택하는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이 세계의 본질은 삶이 아니라 소설(이야기)에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아주 단선적인 하나의 소설만을 겨우 붙잡고 삶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셈입니다. 소설이 삶보다 더 큽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삶밖에 살 수 없지만 소설은 수많은 삶들을 포괄하는 것이니 저렇게도 말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니 소설 속으로 기꺼이 망명해 평행우주 너머 더 많은 삶을 '다른 이름'으로 저장해볼 일이다. 저 우주 속 어딘가 영원한 '홈'의 입구를 찾을 때까지.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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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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