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칩거 끝에 성지순례 다녀와 그간의 소회 담아
평사리에서 지내는 침묵의 시간 '내 인생 화양연화'
"내가 틀렸다는 사실 인정하자니 피눈물이 났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을 믿었다. …마침내 나도 내 편향에 편향을 거듭하여 진실을 왜곡하는 온갖 언어를 쏟아내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내가 태극기부대 할머니와 무엇이 다를까. 꿈에서도 내가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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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 순례를 다녀와 새 산문집을 펴낸 소설가 공지영.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소설가 공지영이 세상과 소통의 문을 걸어 잠그고 칩거한 지 3년 만에 새 산문집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해냄)를 펴냈다. 경남 하동 평사리 들녘과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로 내려와 살면서 요르단 이스라엘로 성지 순례를 다녀온 기록을 담았다. 그가 진작 펴낸 '수도원 기행' 연장인 셈인데, 다녀오기 전후 과정과 하동에 내려오기 전 혼란스러웠던 기간의 삶에 대한 성찰을 함께 녹였다.
공지영은 '대가족의 막내로 태어나서 평생 혼자 있어본 일이 없었다'고 썼다. 서울에서 '환멸의 극점'에 놓였을 때 지인이 '당신이 이길 수 있겠느냐'고 물어 문득 깨달았다고 했다. 그 길로 모든 것을 접고 하동으로 내려와 침묵 속에 자신을 가두었다. 그는 이곳의 삶이 아주 행복해서 '내 인생의 화양연화' 같다고 했다.
ㅡ스스로 홀로 가둔 삶이 행복한가.
"일단 한걸음 물러나서 그런 것 아닐까. 여기 내려와서 불면증도 없어지고 수족냉증도 사라졌다. SNS 끊고 대문을 닫아 건 것도 크다. 정말 필요하거나 보고 싶은 사람 아니면 안 만나고 지낸 지 3년 넘었다. 너무 좋다. 내려오길 정말 잘했다."

ㅡ'반성' '사과' '피눈물' 같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것은 젊어서 가졌던 이념이나 시대착오적인 어떤 측면을 받아들여야 되는 거다. 예전에는 비교적 단순했는데 이제는 저쪽만 나쁜,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많이 아팠다. SNS 그만 두기를 참 잘했구나 싶고, 앞으로는 정치에 관해서 잘 모르면서 애기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내가 진실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다.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자니 피눈물이 났다."ㅡ이런 '반성'이 악용될 소지는 없을까.
"어떤 정파를 비판하면 곧바로 반대당을 지지하느냐는 반문이 이어진다. 진짜 어이가 없다. 어렸을 때 '박정희'를 비판하면, '그래서 너 김일성이냐'고 묻는 것과 똑같은 행태다. 왜 둘 다 비판하면 안되는가. 우리 마음속에는 아직 냉전이 지속되고 있는 거다. 단순히 운동권 마인드만 40년 이어진 게 아니라, 해방 이후 지겹게 극단에서 청백전을 하고 있다."
공지영은 모세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도달하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다 죽은 요르단의 느보산에서 이곳의 현실을 돌아보며 자문한다. '안 그래도 온갖 불평을 늘어놓는 구세대들, 당시 최고의 강대국이던 이집트의 물질의 번영을 몸에 익혔던 그들, 작은 틈이라도 보이면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숭배하여 자기들을 구한 신을 배신하던 그들이 새 땅에 들어간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길게 보았을 때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정확히는 여기 젊은이들과 아이들을 위해서 구세대들을 새 땅과 새 하늘로부터 떼어놓아야 한다는 것을 모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공지영은 '비단 그게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다.
이제 노년으로 접어든 우리 86세대들이 그처럼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우리 세대가 '태극기부대'라 폄하하는 사람들도 젊어서 가졌던 자신들의 기억을 업데이트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경직된 사고, 강요되는 편향들. 그러나 우리는 그들보다 나을까, 아니 나는 이미 여러 군데에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조짐들을 보고 있다. 변한다는 것, 그것도 올바로 사고를 업데이트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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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가족의 막내로 태어난 이래 혼자 살아본 적 없다는 공지영이 창밖으로 짙푸른 동백잎이 살랑이는 평사리 집에서 홀로 평화를 누리는 중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공지영이 예루살렘으로 떠나게 된 과정도 하동으로 내려올 결심을 하는 패턴과 비슷하다. 첼리스트였던 젊은 후배가 갑자기 죽었다는 부고를 받고,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 기도방에 들어가 문득 작심했다. 다녀와서 생각해보니 그것은 앞으로 계속 글을 써야 할지 말지 신에게 물어보는 여정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ㅡ작가 공지영에게 신앙은 단순한 차원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 신앙이 없었으면 정말 미쳐버리거나 죽었을 것 같다. 지금도 만약 그런 의미들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하루도 더 살아있고 싶지 않다.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는 없는 사람이니 어쨌든 살아 있는 한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죽어야 된다. 아픈 채로라도 나에게는 의미가 너무 중요하다. 신앙이 없는 이들이라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김구 선생이, 홍범도 장군이, 안중근 의사가 신앙 때문에 그리 살았는가. 의미가 없으면 막 살아진다."
ㅡ이번 산문집의 배경은 오랜 세월 반목하며 피를 불러온 종교의 현장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모든 일을 벌인 분은 하느님'인데 누가 더 나쁜지 아는 것일까, 물었다. 누가 더 나쁜가.
"너무 마음 아프다. 사실 나는 무조건 팔레스타인 편이었는데 이것도 다 맞을까, 이런 생각이 이제 조심스럽게 든다. 책임을 추궁해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아담은 누가 만들었는지 따질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그래서 예수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한 것 같다. 이 모든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길은 무조건 용서하는 수밖에 없다. 불교에서도 똑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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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영에게 신앙은 막강한 삶의 의미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공지영은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마치고 일행을 먼저 보낸 후 뒤에 남아 강력한 인상을 받았던 샤를 드 푸코 성인의 족적을 찾았다. 푸코 성인은 일찍이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아 온갖 쾌락과 환락에 젖었다가 어느 순간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와 고통과 처절한 죽음 자청한 이였다. 푸코 성인과 함께 공지영은 '십자가의 성 요한'과 프란치스코 성인을 각별히 언급한다.
그분들은 우리의 모든 세계를 뒤집어 엎어 전혀 다른 차원의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가난을 칭송했고 모욕을 열망했으며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영예로 삼았다. 인류가 태어난 이래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것이 혁명이 아니면 무엇이 혁명이라는 말일까. 권력자가 바뀌는 따위의 혁명은 이미 오래전에 실패하고 말지 않았던가. 그것이 내가 푸코의 자취를 찾는 이유였다.
ㅡ불현듯 예루살렘에 가야겠다고 작심했다.
"이곳에 내려온 후 매번 기도하면서 물었다. 인간들에게 들볶이면서 계속 써야 하느냐고. 응답이 없었다. 아마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어 떠났던 것 같다. 다녀오면서 다시 써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찬성을 바라지 않더라도, 팔리지 않더라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쓰면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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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영은 서울 생활을 청산한 뒤 평사리 들녘과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집에서 살고 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ㅡ이번 산문집은 작가 인생에 어떤 의미인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첫 작품인 것 같다. 이제 내 마음대로 더 자유로질 것이다. 구상해놓은 작품만 4~5권 있다. 예전처럼 이런저런 부담 안 느끼고 막 쓰려고 한다. 사실 이제 우리 세대의 시대는 어느 정도 간 거 같다. 그러니까 더 자유롭게 쓰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 이제는 정말 꾸준히 쓸 작정이다"
공지영은 고구마 모종을 사다 심어 정성을 기울였는데 겨우 '수삼' 뿌리만 한 덩어리만 몇 개 수확한 그 농사만 잘 됐어도 안 썼을 것이라고, 높은 청으로 웃었다. 써나가면서 여전히 '내 이성이 내 오지랖의 항복선언'을 받아도 '다시 외로워질 것'을 피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순례를 다녀온 뒤 일상으로 돌아와 남긴 서문의 말.
예루살렘. 샬롬, 평화라는 뜻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도시, 평화만 빼고 다 있는 그 도시. 그곳을 다녀와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그 무모한 살육을 멈추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새벽에 일어나 기도방 문을 열 때마다 나는 이곳의 평화에 소스라쳤다. 위험하기로 치면 우리 한반도도 그에 못지않은데 이 모든 고요와 평화가 실은 기적만 같아 나는 눈곱도 떼지 않은 채 늘 감사에 목이 메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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