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에서부터 쿤데라가 거부한 '키치'의 의미까지
고전 작품을 밀착해서 해석하며 '총명한' 시민의 길 제시
"무던한 사회를 향한 타협의 정신이야말로 절실한 덕목"
원로 인문학자 유종호(90)가 묵직한 저서를 펴냈다. '고전과 키치의 거부'(서정시학)가 그것인데, 명징한 이성과 품위가 깃든 사려 깊은 책이어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80대 내내 공들여 준비했던, 네이버 '열린 연단' 강연 원고를 갈무리했다. 젊은이들에게 인문학의 깊이를 전달하면서 풍부한 교양을 바탕으로 총명한 시민의 길로 인도하는 자양분이 가득하다. 입말로 전개되는 글이어서 여느 평문과는 다른 가독성과 재미까지 확보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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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활자로 독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원로 석학 유종호. 그가 80대 내내 공을 들여 집필한 고전에 관한 담론을 책으로 묶어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그는 책머리에 "문학의 향수가 행복경험의 일환이요 인간이해와 세계이해에 필수적이란 생각으로 문학위기론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문학적 입장"이라면서 "행복 체험으로서의 작품 읽기가 세계이해와 인간이해에 막강하게 작용하여 인간 형성에 기여한다는 관점에서 문학의 여러 국면을 검토하고 텍스트 현장의 구체를 음미하려는 것이 이 책에 수록한 글들의 목적이요 취지"라고 밝혔다.
-'고전과 키치의 거부'는 어떤 의미를 함축하는가.
"고전을 많이 다루었는데, 밀란 쿤데라의 작품이 현대의 고전이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전체주의 체제라는 20세기의 정치적인 공룡, 이것을 정면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동시에 결말이 키치로 끝나지 않고 정말 현실대로 마무리기 되기 때문에 키치의 거부라는 말을 붙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고전 얘기이고 동시에 모든 고전이 키치를 거부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붙인 것이다."
-키치의 잣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키치란 쉽게 말하면 '허드레'다. 원 뜻은 음악 같은 것에서 고전적인 격조를 버리고 안이하게 현실을 낭만적으로 미화하고 달콤하게 만드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같은 것을 키치라고 본 것이다. 현실에서는 화해가 이루어질 수 없는데 영화에서는 적당한 선에서 봉합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런 게 키치이다. 옛날 비극은 그런 걸 거부한다."
-그리스 비극을 오늘의 의미에 맞게 해석하고 전달하는 내용이 특히 흥미롭다.
"미국 학생들에게 '안티고네'를 읽히고 작중인물에 대해 논평하라고 하면 '크레온'이 진짜 비극의 주인공이다. 그 학생들이 생각하는 (오빠의 시체를 거둔 안테고네를 처형할 것을 명한) 크레온의 논리는 집안의 반역자를 다스리지 않으면 집 밖의 반역자를 어떻게 다스리냐는 것이다. 이건 책임논리다. 심정논리로는 독재에 항거하니까 안티고네가 높아 보이지만, 사실 이 미국 학생들은 책임윤리가 강한 존재가 이상적 인간이라고 본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헤겔이 안티고네를 높이 평가한 이후 서구 지식인들은 안티고네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받아들였다."
-아테네에서 비극이 성행했던 이유 중 하나는 시민들이 끊임없이 참주(독재자)가 등장하는 걸 막아내려는, 민주주의를 유지하려는 시민 교육의 차원이기도 하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학자마다 다르지만, 비극 상연장은 일종의 법정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리스 재판에서 배심원은 동수를 피하기 위해 홀수로 선택했는데 소크라테스 사형 판결을 할 때도 1001명 배심원 중 한 사람도 결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민 중에서 배심원을 채택하기 때문에 이 시민들이야말로 총명하고 아주 합리적인 재판을 해야 되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하고, 비극은 그 교육의 한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리스 비극은 아테네 민주정치, 특히 법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문학작품에서 협의의 교훈을 도출하려는 기도는 미련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 비극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런 생각은 사실상 권력자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참주'를 열심히 혐오하고 거부했던 아테나이 시민 사이에서는 그랬을 것이다. 휴브리스 경계는 고대 그리스의 지혜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의 휴브리스는 인간 품성으로서의 오만함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 능력을 초월하는 것을 지향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행운을 누리는 것도 휴브리스이다. _ '서양의 고전-한 시험적 조망'
-인간의 한계를 넘는, 오만한 태도를 함축하는 '휴브리스' 개념은 작금의 현실에도 깊이 와 닿는다.
"휴브리스 개념이 복잡하다. 예컨대 너무 행운이 따르는 것도 휴브리스다. 우리가 생각하는 오만을 넘어서는 독특한 개념이다. 일개 검사가 갑자기 어떤 일 때문에 검찰총장이 되고, 대통령 후보로 나서 당선되었다는 것 자체가 휴브리스인데, 지금 저 결과는 당연한 것이다. 그리스 신화는 정말로 천재 민족이 아니면 발견할 수 없는 내용이다. 마르크스나 니체처럼 사상적으로 전혀 상반되는 사람들이 모두 그리스 예찬자들이다. 니체가 한 말이 플라톤의 저서에 그대로 나온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사상에 붙인 각주에 지나지 않는다는 화이트 헤드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20세기의 정치 사상가들이 너무 완벽해서 아득한 이상사회 대신 실현 가능한 '무던한 사회'를 구상하는 것은 이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령 배링튼 무어 2세는 전쟁과 가난과 극심한 부정의가 없는 '무던한 사회'를 거론하면서 그러한 사회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러한 사회의 개연성을 믿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넘어서는 비전을 추구한다. 과거의 역사적 경험에 기초해서 낭만적이랄 수밖에 없는 유토피아보다 훨씬 실현 가능한 것으로 '무던한 사회'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_ '정직, 자존감, 명예의식'
-'무던한 사회'에 대한 기대가 설득력 있다. 정의와 공정이 완벽하게 실현되는 유토피아는 불가능하기에, 최소한이라도 모욕을 주지 않는 품위 있는 사회를 향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맥락이다.
"'디센트 소사이어티(decent society)'를 '무던한 사회'로 옮겨본 것인데,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유토피아적인 사회는 있을 수 없다. 무던하다는 것은 결함도 있겠지만 그만하면 괜찮다는 의미이다. 사회주의의 유토피아도 완전한 것은 아니다. 역사에서 보듯 희생이 너무 많이 따른다. 이만하면 무던하다는 정도의 사회를 위해 노력해야지, 정말 완벽한 사회를 만들려고 하면 그야말로 전체주의가 나오고 휴브리스에 이르는 것이다. 이만하면 괜찮다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각성하고 총명해져야 된다. 총명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만드는 역할을 문학이 맡을 수 있다. 그것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학으로 시민적 덕목인 총명함을 구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고전을 읽고 그 속에 길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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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종호는 "타협의 정신이야말로 우리 같은 원리주의 지향 사회에서는 극단주의를 배격하는 데 필요한 덕목"이라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아돌프 히틀러를 선택 배출한 것도 그 나라의 시민이요 바츨라프 하벨을 선택 배출한 것도 그 나라의 시민이었다. 만약 우리의 정치인 대다수가 괴물이라면 그것은 국민 대다수가 괴물을 사모하고 그 동호인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들만의 잔치라고 비판하기 전에 시민으로서의 의무 태만도 반성해 보는 것이 정직한 일이 된다. 괴물의 탄생을 국민이 방조했다는 사실이 왕왕 치지도외되는 것은 민주정치의 역설일 것이다. _ '무던한 사회'
-괴물을 탄생시킨 시민들은 어떻게 반성을 해야 할까.
"각자가 총명해지는 수밖에 없다. 지도자가 군중을 활용해 자신의 이득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조용히 생각하고 토론을 하고 상대방의 의식을 알아주고 그래야 되는데, 이것이 안 되는 이유는 인간 본래의 문제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원리주의적인 극단화가 큰 문제다. 한국은 조선조에 주자학의 원리주의적 수용으로 주자를 낳은 송나라보다 더 주자학적인 사회가 됐다는 외국 학자의 분석이 있다. 무역이 활발한 지역에서 민주주의가 발달했던 것처럼, 흥정을 통해 타협을 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우리는 주자학의 원리주의라는 잣대로 백안시하는 꼴이다. 흥정(Compromise)이라는 말이 나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타협이야말로 극단주의를 배격하는, 우리 같은 원리주의 지향 사회에서는 필요한 덕목이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활기찬 목소리와 강건한 톤으로 말하는 그는 "컴프로마이즈가 중용을 지키는 좋은 하나의 방법"이라면서 "타협이라는 말에서 부정적 의미를 거두어내는 정신적인 풍토를 만들지 않는 한 우리나라의 극단 대결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도 탄핵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두워진 눈 때문에 독서 확대기를 붙들고 분투하면서도 여전히 독자들과 교류하고 있는 그이야말로, 이 책의 한 챕터 제목처럼 '정직, 자존감, 명예의식'을 기치로 일관되게 살아온 표본이라 할 만하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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