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시설은 차별 아냐" vs "남녀 구분은 차별"
호주·미국 등 해외서는 차별금지법 따라 벌금 물기도
2017년 12월 호주 시드니의 한 남성 전용 바버샵 주인은 여성 고객을 받지 않아 소송에 휘말렸다. 한 여성 고객이 이발사가 자신의 딸의 머리 손질을 거부하자 "여자라는 이유로 손님을 거절하는 것은 성차별"이라며 가게 주인을 고소한 것이다.
이들은 8개월간의 법정 공방 끝에 바버샵 주인이 여성 고객을 받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잘못을 시인하면서 합의에 성공했다. 바버샵은 앞으로 여성 손님도 환영한다는 입장을 전함으로써 사단이 일단락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호주에서는 민간 사업체가 성별을 이유로 고객을 거부할 권리가 있냐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바버샵이 여성을 받지 않는 것이 정당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4월 호주의 한 바버샵 직원들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남성들에게 안전하고 힐링 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우리 사업의 목적"이라며 특정 성별만을 위한 사업 시설들이 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이발소도 여성 안 받아…"전문분야 아냐"
우리나라 남성 전용 이발소 역시 여성 고객을 받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일대의 이발소 5곳에 방문해보니 모두 여성의 머리는 자르지 않는다고 했다.

대부분 전문성을 근거로 들었다. 한 이발소 관계자는 "남성 머리만 배웠고 그 분야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여성을 받을 수 없다"며 "가끔 여성분들이 와서 머리를 해달라고 하는데 내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돌려보낸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의 한 바버샵 직원 역시 "바버샵에서는 면도를 포함한 이발을 제공한다. 그러데이션, 명암이 보이는 커트처럼 미용실에서는 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전문성 있게 한다"며 "짧은 머리를 한다면 모르겠지만 여성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성차별이 아니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손님의 편의를 위한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바버샵 직원은 "남성 손님들이 미용실에는 대부분 여자 디자이너랑 스태프들이 많기 때문에 말도 많이 걸고 하는 게 눈치보이고 불편해서 남성 전용 이발소를 찾는다"며 "차별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이 바버샵은 남성 직원만 두고 있으며 고객들에게 불필요한 말을 걸지 않는다.
대학생 김 모(26) 씨는"남자 전문 이발소에서는 면도도 할 수 있고 남자 머리 깎는 기계도 전문화돼 있어 실력도 더 좋은 것 같다"면서 "미용실이 희소한 곳도 아니고 진입장벽이 있는 곳도 아니라서 전문화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성 전용 시설을 이용하고 싶으나 이용하지 못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직장인 장 모(50) 씨는 "앉아서 한참 기다렸는데 머리를 잘라주지 않아서 물어봤더니 남자만 받는다고 하더라”면서 “똑같은 가위질인데 여자 머리 라고 손질하는 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가격도 저렴해 이발소를 이용하고 싶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여성 전용 필라테스·헬스'…남성도 접근 안 돼
남성 역시 여성 전용 시설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에서 들어와 전국 200여 개 매장을 개점한 여성 전용 헬스클럽은 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남성 회원을 받지 않는다. 시설 관계자들은 남성의 불필요한 시선에서 벗어나 편하게 있고 싶어 하는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것으로 성별 갈등이나 페미니즘 논쟁과는 별개로 수익성을 노린 것이라고 말한다.

여성 전용 헬스클럽 독립문점 대표는 "보통의 헬스클럽은 남성들이 기구를 사용하고 여성들은 사이클만 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며 "기구를 사용해 운동하고 싶은 여성들을 타케팅한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또 여성들이 남성들과의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고자 여성 전용 운동 시설을 찾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최근 들어 남성 고객을 받기 시작한 노원구의 한 여성 전용 요가 전문시설 관계자 우(43) 씨도 "여성 전용은 여성 고객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면서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라며 "요가 업종에서는 여성 전용이 아니면 운영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수익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탈의실, 샤워실 등 시설들을 소수의 남성을 위해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미용 목적으로 이용하는 여성과 헬스클럽 등 대안이 존재하는 남성들을 모두 고려했을 때 사업적으로 여성 전용이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여성 전용 필라테스를 이용 중인 마 모(39) 씨 역시 "남성들의 시선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며 "성차별이 아니라 배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 남성들의 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것이 먼저"라며 "선진국과 같이 남성들의 성에 대한 인식이 자유롭고 이로부터 여성들이 편안함을 느낀다면, 굳이 여성 전용 시설 자체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특정 성별에 혜택이 제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차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헬스클럽 대표는 "여성 전용 운동 시설을 간다고 지원금 같은 혜택을 받는 것도 아니지 않냐"며 "여성들의 자발적인 선택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취준생 이 모(28) 씨는 "한쪽 성별만을 위한 헬스장이 굳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했다.
인권단체 "남녀 전용시설, 대체재 있어 차별 아냐"
국가인권위원회는 전용 시설 중 대체재가 있는 경우에는 성차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전용 업소의 경우 설립 목적과 대체재 여부가 주요 판단 기준"이라며 "여성 전용 시설이 남성을 차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여성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면 차별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답했다. 또 "차별 사례의 경우 수익사업 여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며 "케이스별로 차별 여부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권위 진정을 통해 판단을 받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특정 성별을 배제하는 시설에 대해 "합리적 사유인지 아닌지는 맥락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면서 "여성이 사는 곳에 대부분 바버샵밖에 없는데 여성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차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여성에 대한 폭력 등으로 인해 전용 시설에 대한 선호가 있다"며 "사회적 소수자라고 하는 여성들에 대한 이익을 옹호하는 시설로서의 여성 전용시설이 갖는 의미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남녀 간 차별을 인식하기보다는 차이를 존중하자는 문화가 남아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현수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외래 교수는 전용 시설에 대해 "사람이 아니라 남녀로 구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차별이긴 하다"면서도 "우리나라는 차별에 대한 금지 자체가 국민들의 인식이 높지 않고 성인지 프로그램 등을 통해 여성과 남성 차이점을 이해하고 차별을 최소화하자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별이라면? 해외는 위법, 우리나라는 차별금지법 없어
해외에서는 차별금지법에 따라 서비스를 제한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인종, 장애, 병력, 나이 등을 이유로 교육 및 고용 등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을 뜻한다.
호주의 차별금지법(Anti-Discrminiation Act) 제33조는 고객의 성별에 따라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위법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호주 퀸즐랜드 차별금지위원회에 따르면 여성 전용 헬스장 등은 예외적으로 허용된 사례도 있다.
미국에서는 바버샵과 여성 헬스장 모두 차별이라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 2015년 필라델피아 시에서는 여성 고객이 바버샵에서 손질을 거부당하자 경찰에 신고했고, 해당 가게는 차별금지법에 따라 벌금 75만 원을 부과받았다. 2005년 캘리포니아주의 산타로사에서는 여성 전용 헬스장에서 남성 고객을 받지 않자 인권단체가 고소했고, 그 결과 남성도 받도록 강제됐다.

우리나라는 현재 차별금지법이 없다. 2007년, 2010년, 2012년 등 3차례에 걸쳐 차별금지법 입법을 시도했으나 모두 무산됐다. 명숙 활동가는 "우리나라에서는 차별에 대해서는 법적 보호망은 없고 인권위에 진정을 넣고 차별일 경우 개선하도록 권고하는 제도만 존재한다"면서 "법이 제정된다면 시정 명령을 통해 차별 행위를 못 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법으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우리나라 법 감정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현수 교수는 "차별을 할 경우 벌금형을 주는 등 차별을 범죄화해서 최소화하겠다는 건 우리나라 법 감정에 반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처벌할 정도까지 차별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범죄화해서 형벌을 주는 것은 오히려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부연했다.
KPI뉴스 / 강혜영·장기현 기자 kh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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