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할 생각 하지 않는 윤석열 정부, 다른 목적 있는 듯"
"의사 저항 막아낸 정치적 효과와 대입 학부모 지지 염두에 둔 듯"
"젊은 의사들에 경쟁 격화하지 않을 구조적 변화 전망 제시해야"
"의협이나 대학병원 교수들과 합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 아냐"
의·정 갈등이 반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지난 18일 집단 휴진을 강행했듯이 해결 기미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상태다.
KPI뉴스는 1987년 창립된 이래 소외 계층과 함께해온 보건 의료 단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의 정형준 사무처장을 만나 현 상황에 대한 의견과 해법을 물었다. 현직 재활의학과 전문의인 정 처장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도 맡고 있다.
인터뷰는 24일 서울 종로 인의협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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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이 24일 서울 종로 사무실에서 KPI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
ㅡ정부와 의사 단체, 전공의 등의 갈등이 극심하다. 최근 상황을 어떻게 보나.
"정부가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정책을 입안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다른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사태 초기에 나는 거짓된 의료 개혁안, 정부의 무능함에 방점을 찍고 비판했는데, 요즘은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ㅡ다른 목적이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 건가.
"정부는 전공의 등의 저항이 예견되는 2000명 증원을 발표한 후 협상할 생각은 하지 않고 비타협적 태도를 취했다. 비타협적 조치로는 의사 증원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데도 그랬다. '수십 년간 못 늘린 의사, 우리가 늘렸다'는 선언을 우선시하는 것 아닌가 싶다.
내가 생각하는 다른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득권 카르텔인 의사 집단의 저항을 강경하게 진압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익이다. 다른 하나는 대입을 앞둔 자녀를 둔 학부모들과 사교육 시장의 지지다."
ㅡ집단 휴진 등 의협이 보인 모습은 어떻게 평가하나.
"의대 증원한다고 진료 거부하는 의사 집단은 유례가 없을 것이다. 환자를 볼모로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그것도 '한 명의 증원도 동의할 수 없다'고 하는 건 정말 기괴한 일이다.
의사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시장 경쟁에 대한 압박이 심한 것과 무관치 않다. 한국은 민간 의료 기관 비중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공공 의료 기관이 5% 정도밖에 안 된다. 2000년 의약 분업 사태 후 시장 경쟁 가속화 쪽으로 상황이 더 악화됐다. 인프라가 그렇게 구축되면서 시장주의 의료에 기형적으로 친화적인 한국 의사들의 잘못된 인식이 형성됐다고 본다."
ㅡ장기화된 의·정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양쪽 모두 비타협적 태도를 취하면서 '치킨 게임'이 전개되고 있다. 치킨 게임이 계속되면 파국으로 가는 수밖에 없는데, 그걸 막을 수 있는 타이밍이 많이 지나간 게 사실이다. 이대로 가면 사태가 1년 넘게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 의사 도입 주장이 있지만, 언어 장벽 등을 생각하면 허황된 얘기다.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의사를 양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그걸 명확히 알고 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 비타협적 태도를 철회할 수 있는 건 아쉽게도 정부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2000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ㅡ어떻게 다른가.
"의약 분업 사태 때는 개원의들이나 병원 등의 이해관계가 훨씬 크게 작용했다. 쉽게 말해 선배 의사들이 동원한 싸움의 성격이 강했다. 이번엔 10년 정도 후에 벌어질 경쟁 격화에 대한 반발이 주요 원인이다. 젊은 의사들이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안이다. 개원의 등은 전공의들의 진료 거부로 환자가 늘어나 경제적 이익을 보는 구조다.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젊은 의사들에게 경쟁을 격화하지 않을 구조적 변화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고 전공의 복귀를 설득해야 한다. 의협이나 대학병원 교수들과 합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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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 [이상훈 선임기자] |
ㅡ전공의를 설득할 구체적인 방안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내가 알아본 바로는, 정부가 행정 처분 유예 등을 제시한 후 돌아온 전공의는 대부분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형외과처럼 돈을 많이 버는 진료과 소속이다. 하지만 정부가 지역 의료와 필수 의료를 얘기하면서 강조한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쪽에선 돌아오지 않고 있다. 내과 등 4개 과 전공의 복귀를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했는데,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전공의 설득 방안으로 두 가지만 말하겠다.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건 수도권 대형 병원들의 병상 수를 줄이는 것이다. 수도권 대형 병원들은 그간 지방의 의료 수요를 빨아들이고, 1·2차 의료 생태계를 붕괴시킨 원흉 중 하나로 꼽혔다. 이 문제를 개혁하는 것은 개원을 꿈꾸는 전공의들에게 분명한 신호가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국립대 의대 전임 교원 증원이다. 정부가 발표한 1000명 증원 방안에서 700명은 비정규 교수들의 정규직화이고 신규 채용은 300명이다. 이와 관련해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에 대해 구체적인 증원 로드맵을 제시한다면 전공의들이 움직일 거라고 본다.
이처럼 전공의 복귀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입안해 당면 문제를 풀어가면서 다른 한편으로 의료 시스템을 천천히 공공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ㅡ공공 의료 확충이 장기적·구조적 해법이란 뜻인가.
"한국 의료 시스템의 총체적 난맥상은 2000년 의약 분업 사태 때 이미 다 드러났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해결된 게 없다.
문제의 본질은 의료 공급을 어떻게 공익화·공공화할 것인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시장주의에 치우친 틀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공공 의료 인프라 구축과 공공 의사 양성 프로그램을 병행해 공공적·공익적 의료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의료 수가를 올리든 외국 의사를 수입하든 다른 무엇을 하든 지금 같은 난장판이 반복될 것이다."
KPI뉴스 / 탐사보도부 김덕련 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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