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의무 사항 아냐"…보증금과 달리 보험료는 소모성
가스회사, 가입 수수료 받아…동의없이 개인정보 넘기기도
"정부 관심 밖 영역…관계부처가 실태파악·제도개선 나서야"
도시가스 공급업체와 민간 보증보험사가 자영업자 등 가입자에게 '가스비 보증보험'을 사실상 강매하는 행태가 만연한 것으로 파악됐다.
가입자에게 '보증금 예치는 의무사항'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뒤 보증금을 대체할 보증보험 상품을 가입하도록 유도하는 수법을 쓴다. 실제로는 그런 '의무'가 없다고 할 수 있으나 가입자가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려운 점을 악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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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GI서울보증보험연도별 도시가스 관련 보증보험 현황.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무소속 김종민 의원 제공] |
KPI뉴스가 25일 입수한 SGI서울보증보험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이후 판매된 가스요금 지급보증 상품은 31만5069건, 보증규모는 1조5918억 원에 달했다.
보증수수료는 계약자 신용도 등에 따라 다른데, 자영업자는 통상 3.5% 내외다. 올해 기준으로 1건당 평균 보증금액은 612만 원이다. 가입자 1명이 평균적으로 연 21만~22만 원의 수수료, 즉 보증상품 보험료를 납부하는 셈이다.
보증금은 나중에 법정이자와 함께 환급받을 수 있으나 보증보험료는 소모성 지출이다. 서울지역 5개 가스회사의 보증금 예치건수는 1596건에 불과하나 보증보험증권 제출은 18배나 많은 2만8239건에 이른다.
보증보험 판매 과정은 교묘하다. 우선 자영업자들에게 '보증금 예치 의무'를 고지한다. 올해 초 식당을 개업한 A씨는 최근 가스회사로부터 100만 원이 넘는 보증금을 내라는 전화를 받았다. 직원은 "서울시 도시가스 공급규정 제25조'에 따라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음 단계로 보증보험사가 보증금을 대신할 상품을 권유한다. '보증보험 등으로 보증금 예치를 갈음할 수 있다'는 보조적 문구를 활용한 것이다. A씨는 가스회사 직원과 통화를 끝내자마자 보증보험사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가스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며 보내준 가입서류를 작성해 사업자등록증, 신분증 사진과 함께 전송하라고 요구했다.
포털사이트 질문게시판이나 자영업자 커뮤니티에서는 A씨 같은 사례가 적잖다. 전국 자영업자들이 비슷한 일을 겪는다고 할 수 있다. '보증보험을 꼭 들어야 하느냐'는 질문이 많다. 공개된 게시물에는 '공급규정에 따른 의무'라는 답변이 꼼꼼하게 뒤따른다. 주된 작성자는 가스회사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도시가스협회다.
지난 5년간 이 상품의 사고율은 0.74%에 불과했다. 보험가입 혜택이 미미하다는 얘기다. 반면 회사로선 이 상품은 안정적인 수입원이다. 회사는 보증만료 시점에 '갱신하지 않을 경우 가스공급이 보류될 수 있다'는 안내문을 발송해 재계약을 종용한다. 자영업자에겐 '영업을 못 하게 만들겠다'는 협박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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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영업자들이 올린 도시가스 보증보험 관련 문의글(위)과 보증보험사에서 발송하는 만기 안내문. [포털사이트 자영업자 카페 게시물 갈무리] |
가스회사와 보증보험사가 내세우는 '도시가스 공급규정'은 법령이 아니다. 각 시·도의 승인을 거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일종의 표준약관에 가깝다. 가스회사와 보증보험사는 '주택용이 아닌 사용자에게 2개월분 요금을 보증금으로 예치할 수 있다'는 공급규정 문구를 근거로 예치 의무를 주장한다. 하지만 의무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서희석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간 주체들 사이에 맺는 사적인 계약에서 누가 누구에게 의무를 부과한다는 건 무리한 얘기"라며 "계약법적 관점에서는 소비자가 무리한 부담을 받아들이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권익센터 국장도 "공급규정 제25조는 공급자의 권리 내지 권한을 규정했을 뿐 가입자의 예치 의무로까지 해석할 수는 없다"며 "'의무'라는 안내는 잘못된 해석이자 강요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가스회사 고객센터 직원은 가입을 유도한 대가로 일종의 '보증보험 알선 수수료' 수입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경기지역 가스공급업체 D사 관계자는 "신규 전입·전출이 발생 시 고객센터에 보증보험을 받도록 업무처리를 위임하면서 수수료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취재가 시작되자 최근 서울시는 가스회사와 보증보험사의 유착을 방지하기 위해 관내 5개 가스회사에 공문을 발송했다.
이렇다 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가스회사 직원이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보증보험사에 동의 없이 넘기는 불법적 행위가 발생하기도 한다. 명백한 현행법(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실제 D사에서는 지난 5월 가입자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유출한 직원을 징계한 일이 있었다.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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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중구의 한 건물 외벽에 도시가스 계량기가 설치된 모습. [뉴시스] |
만약 보증금을 예치하지 않거나 보증보험을 제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가스공급이 끊기진 않는다. 복수의 가스공급업체에 문의해 공통적으로 받은 답변이다. 보증금은 '혹시 모를 미납'을 대비하는 것이지 평상시 공급 조건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의무사항이라고 안내하지만 실제 업무에서는 선택사항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도시가스 공급규정을 더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서 교수는 "회사의 사적 이익과 관련된 약관을 각 시·도가 승인한 탓에 법적 근거가 교묘하게 구성됐다"며 "여기에 어떤 불합리가 있는지 인식조차 못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사실상 민간 업체들의 자율규제 형태로 운영되다 보니 관리·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소속 김종민 의원은 "도시가스 소매판매는 중앙정부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영역"이라며 "자영업자의 불합리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가 실태를 파악해 제도상 미비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KPI뉴스 /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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