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해외 전시 활기…글로벌 시장서 'K-아트' 주목
'프리즈서울' '키아프' 성황리 개최…"대작부재" 볼멘소리도
미술시장은 경기에 매우 민감하다. 필수재가 아니니 더 그렇다. 미술시장은 경기 사이클에 따라 자금 이동이 널뛰기하기에 '호·불황'을 반복한다. 지난해 2분기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복합위기는 미술시장을 하향세로 방향타를 고정했다. 올해 미술시장도 최악의 침체기를 맞았던 지난해의 연장선상에 놓여 전반적으로 불황의 골은 더 깊어졌다. 올해 미술시장은 '판매'에만 포커싱하면 거래 부진과 경매 낙찰률 하락 등 그야말로 최근 한파 못지않게 '꽁꽁 얼어붙은 한해'였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나마 위안은 이런 극도의 침체 속에서도 한줄기 장밋빛 희망이 미술 업계를 위로했다. 'K-아트'에 대한 글로벌 컬렉터와 갤러리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으며, K-아트의 해외 진출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 9월 열린 글로벌 아트페어 '프리즈서울'과 대한민국 대표 아트페어 '키아프'는 대규모 관객몰이에 성공하면서 서울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로 안착하는 데 적잖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적잖은 부스 비용과 폐쇄적인 운영에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라는 참가 갤러리들의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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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9월6일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프리즈 서울'. [이상훈 선임기자] |
금융위기까지 소환한 미술시장의 역대급 침체
상반기엔 그야말로 최악의 침체기였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양대 경매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낙찰총액은 지난해 동기대비 무려 64%와 39%가량 쪼그라들었고 낙찰률도 지난 5년과 비교할 때 가장 낮았다.
하반기엔 경기 부진이 점차 완화되면서 다소 나아졌지만, 대세에 저항하기엔 역부족이었다. 3분기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낙찰총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16%, 약 14% 줄어들며 상반기 급락 장세를 탈출하면서 그나마 한숨을 돌리는 듯했다.
최근 수년간 호황을 누렸던 아트페어도 침체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국내 아트페어 시장 규모는 2021년 약 1900억 원에서 지난해 약 3000억 원으로 급증하며 국내 미술시장의 성장세를 견인했지만 그동안 경쟁적으로 실적을 냈던 아트페어들은 올해만큼은 자체 실적을 공개하지 않는 등 외견보다 실속이 줄어들었음을 '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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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9월6일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프리즈 서울'. [이상훈 선임기자] |
가능성 재확인한 프리즈서울과 키아프
역대급 미술시장의 불황 여파로 주요 아트페어의 실속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프리즈와 키아프는 국내외 많은 컬렉터의 관심을 끌어모으며 한국 미술시장의 저력을 세계에 각인했다.
지난 9월 열린 '2023프리즈서울(FRIEZE Seoul)'은 국내외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프리즈는 '미술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 3대 현대미술 아트페어로 매년 런던, 뉴욕, 베를린, 멕시코시티, 홍콩 등 세계주요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부턴 서울에도 간판을 걸며 아시아 시장의 견인차로 발돋움했다. 새내기를 벗어난 올해 프리즈서울엔 가고시안과 하우저앤워스 등 세계 최정상급 갤러리를 필두로 지난해보다 10여 곳 늘어난 120여 개 해외 갤러리가 참여하며 외연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시장 침체에도 불구, 약 8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은 점도 고무적이다. 또 국내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인 '제22회 키아프서울'는 프리즈와 같은 기간 열리며 미술시장의 열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했다. 쌍방의 시너지 효과는 지난해보다 15%가량 늘어난 방문객으로 증명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올해 프리즈와 키아프의 관람객 수는 늘었지만, 지난해보다 화제작이나 대작이 부족한 점은 아쉬운 대목으로 꼽혔다. '풍요속 빈곤'이란 평이 나온 이유다. 그나마 해외 정상급 갤러리부스에서 성능경, 홍순명, 정희민 등 한국 작가들을 집중 부각하며 K-아트의 달라진 위상을 입증한 것은 그나마 위안이었다.
표면상의 성공적 행사에도 불구하고 축제에 참가한 일부 갤러리들은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 " 수천만원에 달하는 참가비에 골병들 지경"이라며 "누구를 위한 축제인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또 해외의 한 언론사 기사는 "서울 프리즈의 폐쇄적인 언론 응대 방식은 올해 초 찾은 홍콩 아트바젤과 사뭇 다르다. 취재를 위해 사정을 해야하는 곳은 아마 서울프리즈가 유일할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갤러리스트는 "올해 주요 아트페어에서 박서보·하종현 등 단색화 거장뿐만 아니라 함경아, 양혜규, 강서경 등 여러 한국작가가 해외 여러 갤러리나 관객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만큼 한국미술의 다양성이나 능력이 존중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도 "고액의 참가비 등을 회수하기 위해 상당수의 갤러리들이 유명 작고 작가들의 고가 작품들을 천편일률적으로 전시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참가 업체의 부담이 줄어야 더 다양한 신진 작가의 작품이나 실험적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다. 그래야 서울프리즈도 단순한 장사가 아닌 특색 있는 아트페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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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9월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프리즈 서울'. [이상훈 선임기자] |
"세계는 넓다"…K-아트, 미국 등 해외 전시 활기
논란은 차치하고 글로벌 아트페어인 프리즈서울이 안착과 해외 메이저 갤러리들의 앞다툰 '서울행'은 K-아트 시장과 한국 작가들의 잠재력에 대한 글로벌 미술계의 '인정'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같은 흐름은 K-아트의 세계화에 그대로 이어져 올해 한국 작가들의 '봇물' 같은 해외 전시로 이어졌다. 특히 한국 작가의 해외 전시 장르도 현대미술을 비롯해 실험미술, 사진전, 기획전 등 매우 다양해졌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우선 미국 뉴욕의 솔로몬 R.구겐하임미술관에선 지난 9월 '한국실험미술 1960~1970년대' 전시가 열려 현지인 사이에 화제가 됐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이 전시회엔 60~70년대 한국 실험미술작가 29명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올해 한국실 개관 25주년을 맞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도 특별 기념 전시를 시작했다. 특히 이 미술관에는 올해 처음으로 한국미술 담당 큐레이터를 영구직으로 배치하는 등 한국관에 대한 예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주요 미술관 중 한 곳인 필라델피아 미술관도 한국미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미술관은 '1989년 이후 한국미술'을 주제로 한 특별 전시회를 지난 10월 개막했다. 한국계 미국 작가와 한국 작가 28명의 작품이 무대에 올라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또 샌디에이고미술관은 첫 한국미술 주제 기획전으로 '생의 찬미'전을 열며 K-Art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이불 작가에게 미술관 외관 설치 조각 작품을 의뢰하기도 했다. 매년 세계 유명 현대미술 작가들의 조각 작품으로 건물 외관을 장식하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한국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는 한국미술이 세계 주류 미술계에 안착을 시도하는 일종의 '사건'으로 불릴 만하다. 유럽 미술 중심지 중 하나인 독일에서도 낭보가 들려왔다. 독일 쾰른 동아시아미술관은 동양 문화 요소를 소재로 작업해 온 한국계 현대미술가 헬레나 파라다 김의 특별기획 전시를 이달 15일부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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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4월6일 '제14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서 참석 인사들이 박서보 예술상 첫 수상자인 엄정순 작가에게 시상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양우 비엔날레 재단 대표이사, 엄 작가, 박서보 작가, 강기정 광주광역시장[광주광역시 제공] |
문체부, K-Art 지원 물꼬 트기 시작…단색화 거장 박서보 별세
'풍요와 빈곤'의 한해로 기억될 올해 미술시장엔 40대 이하 젊은 세대가 핵심 작가와 컬렉터로 부상하는 세대교체의 분위기가 가속됐다. 이는 향후 K-아트의 성장에 있어 긍정적인 시그널로 평가된다. 이런 K-Art의 성장에 정부도 힘을 보탤 요량이다. K-아트가 장차 한국 문화예술산업의 한 축을 형성할 수 있는 유망 분야로 인식한 것이다. 이에 따라 문체부는 미술진흥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정책적 지원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 미술진흥 예산에 441억 원을 편성, K-아트의 성장세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이는 올해 대비 23.9% 증액한 규모로 역대 처음으로 400억 원을 돌파했다. 내년도 정부 예산이 극도의 긴축편성이란 것을 고려하면 고무적인 일로 풀이된다.
정부의 세부 예산안을 들여다보면 신진작가들의 아트페어 참가, 네트워킹, 마케팅 지원사업과 한국미술 쇼케이스에 총 60억 원을 투입한다. 한국 디지털미술 육성 기반에 10억 원을 신규 편성한다. 창작자 권리 보호와 저작권보호 및 침해 예방 활동을 위해선 39억 원(32.9% 증액)가 투입된다. 문체부는 이와는 별도로 기존 유사 지원사업들을 통합, 문화예술 전국 창·제작 유통 지원사업에 490억 원을 배정한다. 이는 지난해보다 31% 증액된 것이다. 지역대표예술단체 지원사업과 국립예술단체의 대형 공연 지역 개최에 각 90억 원과 80억 원의 예산도 신규 편성했다.
마리아 김 세이아트(SayArt) 발행인은 "올해 미술시장이 경기침체, 급성장에 따른 피로감, 가상자산시장의 폭락 등 복합적인 이유로 심한 부진을 겪은 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K-Art의 무한한 가능성도 볼 수 있었던 한해였다. 이런 생태계 확장과 세계화를 위해선 미술계 자체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예산지원과 꾸준한 행정 뒷받침이 수반되어야 한다. 또 미술시장이 불황이란 점은 어떤 면에선 "좋은 작품을 유리한 가격에 손에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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