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총리·이관섭 비서실장 등 사의 표명…인적 쇄신 시사
취임 후 한 번도 안 만난 민주 이재명과 만날지도 관심
與 비윤계 목소리 커지면서 당정관계도 재조정 불가피
범야권이 무려 192석을 차지한 22대 총선 결과는 여당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을 심판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윤 대통령의 일방적인 국정 운영 스타일에 성난 민심이 변화를 압박하는 레드카드를 던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총선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고 대통령실 이관섭 비서실장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이 실장을 포함한 용산 대통령실 고위 참모진은 이날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향후 대대적인 인적 개편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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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도시주택공급 점검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
윤 대통령은 주변에 "이번 총선은 정권의 운명과 직결된 것이기에 한 석이라도 야권보다 적게 나올 경우 정부를 이끌고 나가기가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고 한다.
그런 만큼 국민의힘이 108석을 얻는데 그쳐 사상 최대 격차의 '여소야대' 구도가 만들어진 것은 윤 대통령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임기 2년도 여소야대 탓에 힘들었는데, 앞으로 3년은 더 험난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공식 일정 없이 숙고의 시간을 가졌다. 국무회의는 한 총리가 대신 주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190석이 넘는 의석수를 확보하면서 주요 정부정책은 동력을 잃게 생겼다. "식물 대통령이 현실화됐다"(공론센터 장성철 소장)는 주장도 나온다.
당장 야권은 21대 국회에서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입법이 무산됐던 양곡관리법과 노란봉투법 등을 재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물론 윤 대통령은 헌법이 보장하는 거부권을 또다시 행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마이웨이식 불통'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총선에서 야권 손을 들어준 만큼 윤 대통령이 이를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관건 선거 논란을 일으키며 총 24회에 걸쳐 진행한 민생토론회에서 약속한 주요 총선용 공약도 상당부분 수정이 불가피하다. 야권은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이들 선심성 공약에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대겠다는 입장이다. 약 900조 원 예산이 투입되는 막대한 재정 정책에 야당이 호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국민의힘과의 관계 재설정도 불가피하다. 총선 전까지만 해도 윤 대통령은 "사실상 내 얼굴로 치르는 선거"라며 여당 대표를 무리하게 교체했다. "대통령실이 지나칠 정도로 여당을 함부로 대한다"는 비판이 높았으나 윤 대통령은 밀어붙였다.
하지만 남은 임기동안 대통령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전국단위 선거가 없다. '용산'이 행사할 수 있는 공천 관련 파워가 없어 말발이 먹히지 않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수직적 당정 관계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국회에 들어가는 의원들은 2027년 대선 이후인 2028년에 총선을 치르기에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내 활동할 공간은 이전보다 크게 줄었다.
이번 총선에서 윤 대통령과 가까운 친윤계 의원들이 많이 낙선하고 비윤계 의원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새로운 당정 관계를 예고하고 있다. 당내 대표적인 비윤계 인사인 안철수 경기 성남분당갑 후보는 당선 직후 YTN, CBS라디오 등에서 "윤석열 정부를 향한 국민들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정부도 앞으로 당과 건강한 관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난항이 이어지는 '의정갈등'과 관련해 정부의 정책 추진력도 크게 떨어지게 됐다. 총선 참패 요인 중 하나가 의정갈등 장기화에 따른 국민 불안과 윤 대통령의 독선·불통 스타일에 대한 반감이라는 여당 내 공감대가 만만치 않다.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정부가 기존 2000명 의대 증원 정책을 고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경기 성남분당갑에서 당선된 안철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의대 증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책임자들의 경질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의대 증원 문제를 둘러싼 의정 갈등과 관련해 '의대 증원 1년 유예' 등을 공개 건의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참모진과 내각 개편을 시작으로 국정기조 쇄신을 추진할 방침이다. 내각을 책임진 한 총리와 참모진 수장인 이 실장의 사의 표명은 윤 대통령 의중을 반영한 행보로 읽힌다. 대통령실에서는 국가안보실을 제외한 수석비서관급 이상 참모진 전원이 사의를 밝혔다. 내각에선 일부 부처 장관까지 사의를 표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윤태곤 정치분석시장은 "역대 선거처럼 이번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고 쌓여 있던 민심이 폭발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며 전면적인 국정쇄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야권 지도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도 관심이다. 윤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후 제1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을 한 차례도 갖지 않았다.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선 야당 협조가 필요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은 선거 시작 전부터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동안의 국정 수행에 대한 국민의 평가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야당과 긴밀한 협조와 소통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되느냐'는 기자 질문에는 "네, 그렇게 해석하면 (된다)"고 답했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 특유의 '고집' 때문에 태도 변화가 당분간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CBS라디오에서 "현재 21대 국회와 별 차이가 없기에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본인만의 스타일을 고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상돈 전 바른미래당 의원은 "윤 대통령은 협치를 원하겠지만, 이제 정국주도권을 쥔 이재명, 조국 대표가 윤 대통령 손을 잡겠는가"라며 "윤 정부 심판을 내세워 표를 얻은 적극적 지지층을 감안해서라도 대화는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KPI뉴스 / 송창섭 기자 realson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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